개인적으로는 들큰하지 않고 달콤하며 포근한 느낌의 에이지드 토니 포트를 가장 좋아하지만, 기념할 해를 위한 빈티지 포트나 칵테일용 화이트 포트 또한 매력적이다. '우리 집에서 포트 와인 한 잔 하고 갈래요?'만 잘 써먹어도 현재보다 훨씬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의 블로그 스크랩입니다.
“난 단 와인은 싫은데.” 포트 와인을 마시자고 하면 종종 돌아오는 대답이다. 맞다. 포트 와인은 달다. 하지만 그 달콤함(sweetness)은 들큰함(sugary)과는 다르다. 충분한 산미와 복합적인 풍미, 그리고 그 풍미를 화사하게 피워내는 알코올을 갖춘 포트 와인은 단맛을 미묘하게 드러낸다. 단맛을 중심으로 어필하는 와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단언컨대 단맛이 싫다는 이유로 포트와인을 외면한다면 와인의 큰 즐거움 중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전형적인 와인 애호가라면, 빈티지 포트
와인 애호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스타일은 당연히 빈티지 포트(Vintage Port)다. 빈티지 포트는 와인 전체를 통틀어도 대단히 클래식한 스타일이다. 작황이 좋은 해에만, 대략 10년에 3, 4번 정도 생산하는 빈티지 포트는 출시되기만 하면 와인 미디어와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이 쏟아진다. 게다가 최근엔 특별히 평가가 높았던 경우가 많았다. 다우 빈티지 포트(Dow’s Vintage Port) 2007년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았고, 뒤이은 2011년 빈티지는 99점이지만 ‘올해의 100대 와인’에서 영예의 1위에 올랐다. 최근 빈티지인 2016년엔 테일러 빈티지 포트(Taylor’s Vintage Port)가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으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았다. 최근 빈티지뿐만 아니라 오래된 빈티지 중에도 특급 대우를 받는 것들이 제법 있는데, 특히 1977년 빈티지를 주목할 만하다. 전 세계적 망빈(?!)으로 평가되는 1977년이지만, 빈티지 포트만큼은 세기의 빈티지 중 하나로 평가받으니까. 77년생에게는 한줄기 빛과도 같은 와인이다.
빈티지 포트는 최상급 포도밭에서 엄격히 선별한 포도로 양조한다. 나무통에서 2년 숙성 후 병입하는데, 이 묵직하고 농밀한 와인에 20년 정도 세월의 힘이 더해지면 우아하고 섬세한 와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농밀한 초기에도, 우아한 후기에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생산량이 제한적이라 가격이 다소 높은 편이지만, 보르도나 부르고뉴의 프리미엄 와인들과 비교하면 애교 수준이다. 그래도 좀 더 부담없이 즐기고 싶다면 ‘LBV’를 추천한다. LBV는 레이트 보틀드 빈티지 포트(Late Bottled Vintage Port), 그러니까 늦게 병입한 빈티지 포트인데 일반 빈티지 포트처럼 특별한 해에만 만들어지는 와인은 아니다. 대신 나무통 숙성 기간을 두 배 이상 길게 가져가 풍미를 보충한다. 전통적인 LBV는 오크에서 4년 숙성하여 빈티지 포트처럼 여과 없이 병입한 후 코르크로 마감한다. 당연히 추가 숙성이 가능하며, 오래 숙성한 와인이라면 침전물을 걸러내기 위해 디캔팅을 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크에서 6년 정도 숙성한 후 여과하여 병입하는 모던한 LBV가 대세다. 이 녀석은 추가 숙성도, 디캔팅도 필요 없다. 구매 후 바로 즐기면 되니 편리하다.
이외에 한 포도원에서 재배한 포도로만 양조하는 싱글 퀸타 빈티지 포트(Single Quinta Vintage Port)도 있다. 일종의 싱글 빈야드 와인인데, 더 고급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포트에서는 여러 포도원에서 생산된 포도를 블렌딩함으로써 더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빈티지 포트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이런 경향이 변화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싱글 퀸타 빈티지 포트는 생산자에 따라 빈티지 포트 생산을 선언(declaration)하지 않는 해에만 만들거나, 대표적인 포도원을 중심으로 일반 빈티지 포트처럼 작황이 좋은 해를 중심으로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넉넉한 취향의 애주가라면, 장기 숙성 토니 포트
두 번째로 추천하는 스타일은 숙성 기간이 명기된 장기 숙성 토니 포트(Aged Tawny Port)다. 이 스타일은 와인 애호가 뿐만 아니라 위스키나 코냑을 즐기는 분께도 강력 추천한다. 오랜 오크 숙성에서 유래한 풍미가 위스키, 꼬냑의 그것과 제법 닮아 있기 때문이다. 숙성 기간이 길 수록 은은한 갈색 빛이 도드라지는 장기숙성 토니 포트는 기본적으로 구수한 견과류와 달콤한 캬라멜, 벌꿀 뉘앙스 등 원숙한 풍미를 은은하게 드러낸다. 10년 숙성 토니 포트엔 붉은 과일의 기운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면, 30년 이상 숙성한 토니 포트에서는 과일 풍미가 잦아든 대신 말린 꽃다발처럼 섬세하고 복합적인 부케가 화려하게 드러난다. 20년 숙성은 과일 풍미와 부케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편. 강한 알코올 기운은 느끼기 어려우며 그저 꿈결 같은 부드러움만이 남는다. 포트 와인 중 가장 섬세한 스타일로 섭씨 12-14도 정도로 차게 마셔야 그 매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추가 숙성이나 디캔팅 없이 구입 후 바로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 오픈 후에도 1개월 이상 거뜬히 견딘다.
장기 숙성 토니 포트와 빈티지 포트를 양조하는 포도를 처음부터 구분하지는 않는다. 생리적 숙성이 완벽히 이루어졌을 때 수확한 포도를 일단 동일한 방식으로 양조한다. 숙성 과정을 확인하며 빈티지 포트를 만들지 장기숙성 토니 포트를 만들 지 결정한다. 물론 경험적으로 어떤 밭의 어떤 구획에서 빈티지 포트가 자주 만들어지는지는 안다고 한다. 그러나 빈티지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 루비 포트(Ruby Port)나 일반적인 토니 포트(Tawny Port), 화이트 포트(White Port) 등도 있다. 이런 스타일들은 나무통에서 충분히 숙성한 후 필터링하여 병입하므로 추가 숙성 없이 바로 즐길 수 있다. 부담 없는 가격도 장점. 참고로 추가 숙성 없이 바로 즐길 수 있는 스타일의 포트 와인들은 위스키와 같은 T톱 마개를 사용한다. 가급적 최근에 병입한 것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어떻게 만들까
포트 와인 양조에는 수십 가지가 넘는 품종이 허용된다. 과거에는 여러 품종들이 함께 재배되다 보니 주인들조차 자신의 포도밭의 품종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세 기후와 토양의 성격에 따라 최적의 품종을 심으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주로 선호되는 품종은 틴타 로리즈(Tinta Roriz), 토우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 토우리가 프랑카(Touriga Franca), 틴타 까웅(Tinta Cão), 틴타 바로카(Tinta Barroca) 등 다섯 가지다. 그 중 토우리가 나시오날은 포도알이 작아 진한 맛과 풍부한 향을 지닌 최고급 품종으로 취급된다. 재배가 어렵고 수확량이 적지만 품질은 최고이기 때문에 최상급 포트에 주로 사용된다. 틴타 로리즈는 스페인의 템프라니요(Tempranillo)와 같은 품종으로 포트에서는 가벼운 스타일로 평가된다.
포트 와인은 발효 기간이 짧기 때문에 색과 탄닌을 빠른 시간 내에 추출해야 한다. 따라서 전통적으로는 라가레스(lagares)라고 하는 넓고 얕은 화강암 탱크에 포도를 넣고 12시간 정도 발로 밟는다. 부드러운 맨발은 포도를 완벽히 파쇄하면서도 씨는 부수지 않아 씨 속에 함유된 쓴맛이 와인에 새어 나오지 않는 장점이 있다. 최근에는 로보틱 라가르스(robotic lagares)와 매커니컬 펀칭 다운(mechanical punching down)과 같은 기계적인 방식으로 대체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포트 하우스에서는 프리미엄 포트를 만들기 위해 포도를 발로 밟는 전통적이고 로맨틱한 방식을 선호한다. 좀 더 대중적인 포트를 만들 때는 오토비니파이어(autovinifier)라는 장비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 장비는 밀폐된 통에 파쇄된 포도를 넣고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의 압력을 이용해 포도 껍질 아래의 포도즙을 파이프를 통해 위로 올려준다. 포도즙은 파쇄된 포도가 형성한 캡(cap) 위로 지속적으로 뿌려져 색과 탄닌을 흡수한다.
이틀 정도 발효가 진행된 후 알코올이 6-9% 정도 생성되면 알코올 77% 정도의 포도 브랜디를 1:4의 비율로 첨가하여 강화한다. 주정 강화 이후엔 갑작스럽게 올라간 알코올 농도로 인해 탄닌이 거칠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바로 나무통으로 옮겨져 숙성한다. 이렇게 알코올을 첨가하여 강화하는 방법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17세기 말부터 급격히 증가한 영국으로의 수출과 관련이 있다. 오랜 운송기간 동안 와인들의 변질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 마데이라도 그렇지만 포트 또한 강화된 알코올이 긴 항해 동안 와인의 안전을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덕분에 현재의 우리는 다양한 스타일의 와인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도오루 밸리의 포도밭 전경 (출처:www.dows-port.com)]
어디서 생산되나
포트 생산지인 도오루 밸리(Douro Valley)는 산악에 조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포도밭이다. 스페인에서 시작된 도오루 강(스페인에서는 두에로[Duero] 강)은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와 토로(Toro) 같은 와인 산지를 지나 양국의 국경을 형성하며 포르투갈로 넘어온다. 도오루 밸리의 토양은 주로 편암과 화강암으로 구성되며 강수량은 적은 편이다. 여름엔 아주 덥고 겨울엔 매우 추운 극단적인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한여름엔 섭씨 40도, 수확철에도 30도까지 올라가는데 강수량 또한 적으므로 땅이 식을 틈이 없다. 게다가 심한 경우 경사가 60도에 육박하는 깎아지른 절벽이라 기계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포도 재배를 위해서는 노동 집약적으로 일하는 수밖에 없다. 양질의 포도를 얻기에는 최적, 일하는 사람에게는 최악의 환경이라 할 만하다. 도오루 밸리는 1756년 공식적으로 포도 재배 지역의 경계가 정해졌는데 이는 최초의 ‘원산지 통제 명칭’이다.
포도 재배 및 양조는 도오루 밸리에서 하지만 와인 숙성은 주로 도오루 강 하구 빌라 노바 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 마을에서 이루어진다. 도오루 밸리의 무더운 날씨로부터 와인들을 지키기 위해서인데, 최근에는 도오루 현지 창고에 냉방장치를 갖추고 숙성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한다. 빌라 노바 드 가이아의 북쪽 강 건너편엔 포르투(Porto, 영어로는 Oporto)가 위치하고 있다. 영국으로 포트 와인을 실어 나르던 배가 가득했던 이 도시에서 ‘포트(Port)’라는 이름이 유래했다.
어떻게 즐길까
포트 와인은 식사를 마무리할 무렵 후식과 함께 즐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타일에 따라 치즈, 과일, 케익이나 타르트, 브라우니, 초콜릿, 크림 브륄레 등 다양한 디저트와 매칭할 수 있다. 풍미가 워낙 복합적이라 와인 자체만 천천히 즐겨도 디저트로 손색이 없다. 가벼운 포트들은 섭씨 10도 정도로 약간 차게 칠링해서 식전주로 즐기기도 한다. 기다란 유리잔에 얼음 몇 덩어리를 넣고 화이트 포트를 따른 후 토닉과 섞으면 시원한 칵테일이 된다. 최근엔 정찬 코스에 매칭하는 경우도 있다. 스타일에 따라 풍미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기 때문에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취향에 맞게 즐기면 된다.
포트를 ‘명상을 위한 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 꺼진 거실이나 조용한 서재에서 가볍게 한 잔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기 좋은 술이라는 의미다. 반면 “우리 집에서 포트 와인이나 한 잔 할래요?”라는 말이 한국의 “라면 먹고 갈래요?”와 같은 의미라는 얘기도 있다. 포트 와인과 함께 고독을 즐기든 라면 대신 활용(?)하든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어쨌거나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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