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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음주/와인

마지막 디너 @프렙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17. 7. 30.



자주 들르진 못했지만 마음 만은 단골이라고 자부하는 프렙이 올 7월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오픈했을 때 부터 함께 했던 레스토랑인데... 아쉬움을 듬뿍 담아 마무리 모임을 가졌다. 좋은 사람들과 의미 있는 와인으로 마지막 수업디너.





오늘의 메뉴.





오늘의 와인들. 우선 샴페인부터.


Champagne Laherte Freres Ultradition Brut NV / 샴페인 라헤르트 프레르 울트라디시옹 브뤼 NV 

처음의 꿀 뉘앙스와 가벼운 이스티함, 시간이 지날 수록 살아나는 강한 산미. 라임과 가벼운 핵과 등 과일 풍미가 도드라지지는 않으며 은근한 유산향이 감돈다. 레이블이 바뀌었는데 예전 레이블보다 마음에 든다. 울트라디시옹은 샤르도네 100%로 양조.


1889년 설립한 가족 도멘으로 최근 7대손이 합류했다. 과거엔 네고시앙과 협동조합에 포도를 팔다가 5대 때부터 직접 샴페인을 양조하기 시작했다. 10헥타아르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5년부터 절반은 비오디나미, 나머지는 유기농으로 경작하고 있다. 3/4의 와인은 부르고뉴 오크를 사용하며 도자주는 최소화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 와인은 5g/l의 도자주를 했다. 한건섭 대표님 블로그 참고.





아뮤즈 부쉐. 달팽이, 치자 사바용 크림, 보리 샐러드, 크리스피 퀴노아. 마치 보리밥을 프렌치로 재해석한 느낌. 사바용 크림은 노른자와 설탕을 주 원료료 만들며 주로 포도주나 리큐르, 생크림 등을 첨가해서 사용한다고.





서비스로 내어 주신 족발 테린. 홍후추와 맛과 질감, 컬러가 매력적으로 어우러졌다.





소라와 새우를 넣은 차가운 토마토 콩소메. 선해장 후 음주.





먼저 화이트 와인들.





Herri Mina (Blanc) Irouleguy 2010 / 에리 미나 (블랑) 이룰레기 2010

마치 모과차 같은 옅은 앰버 컬러. 엄청난 미네랄감에 구운 너트 뉘앙스, 스모키 힌트.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과일 풍미가 드러나는데 ㅇㅅ쏨은 졸인 무화가 같다고 표현했다. 처음 경험해 보지만 생각보다 컬러가 많이 변화했고 산화 뉘앙스 또한 제법 많은 걸로 보아 과도한 숙성이 진행된 게 아닌가 싶다. 보관 상태가 안 좋았거나... etc.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적이고 복합적 뉘앙스의 풍미와 적절한 산미, 그리고 꼿꼿한 구조감과 쌉쌀한 여운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던 미디엄풀 바디 와인. 


에리 미나는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의 와인메이커였던 장 클로드 베루에(Jean-Claude Berrouet)가 고향인 바스크(Basque) 지역으로 돌아와 만드는 와인. 지역 품종인 그로 망상(Gros Manseng), 쁘띠 코르부(Petit Corbu), 쁘띠 망상(Petit Manseng)을 블렌딩하여 양조한다. 포도밭은 피레네 산맥 남향 기슭 해발 120m 이하에 위치하고 있다. 그 덕에 일조량이 많고 추운 북풍을 막아주며 온화한 대서양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 화이트 외에 카베르네 프랑 품종으로 만드는 레드 와인도 소량 생산한다. 바스크어로 Herri는 Country, Mina는 homesick이라는 뜻이라고. 이룰레기(Irouleguy)는 1970년 지정된 AOC로 100헥타아르 정도의 작은 재배 면적에 포도 재배자는 60여 팀이나 된다.




Domaine Antonin Guyon, Puligny-Montrachet 1er Cru Les Pucelles 2013

도멘 앙또냉 귀용, 퓔리니-몽라쉐 프르미에 크뤼 레 퓌셀르 2013

아직 많이 어린 듯 청포도 쥬스 같은 생생한 과일 향이 원초적으로 드러난다. 멜론, 푸른 열대 과일, 완숙 핵과 등 풍미의 밀도는 높아 보이는데 아직 단단하게 뭉쳐 있는 느낌. 가벼운 바닐라 뉘앙스에 알싸한 미네랄, 미디엄(풀) 바디에 적절한 산미. 몇 년은 더 있다가 열었으면 더욱 좋았을 텐데. 너무 어려서 안타까웠던.





그릴한 관자, 조갯살, 그린 퓨레.





메인 디시는 뒤글레레 소스, 방아잎 퓨레, 레몬그라스 오일을 곁들인 민어 스테이크. 올 여름엔 민어 한 조각 맛보는구나.




그리고 오늘 와인의 중심,



Kongsgaard, The Judge Napa Valley Chardonnay 2006 / 콩스가드 더 저지 나파 밸리 샤르도네 2006

딱 잘 끓인 보리차 같은 컬러, 하지만 반질반질 반짝이는 질감. 코를 대면 마치 애나멜처럼 자극적으로 톡 쏘는 첫 향에 살짝 당황스럽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삼나무, 바닐라, 구수한 너트와 알싸한 미네랄이 섬세하게 피어나기 시작한다. 입에서는 모과와 잘 익은 핵과, 파인애플, 그리고 이국적인 스파이스와 은근한 허브티 뉘앙스까지... 대단한 풍미의 밀도다. 드라이한 와인이지만 꿀로 절인 과일과 시나몬 파우더 & 캬라멜 힌트 같은 달콤한 뉘앙스가 드러난다. 오크와 과일 양쪽에서 유래한 향기와 풍미들이 높은 곳에서 균형을 이룬다. 풀 바디에 엄청난 규모의 구조감. 아직 어리고 숙성 여력도 충분한 것 같지만 완숙함과 숙성 뉘앙스도 살짝 비치는 상태랄까.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대단한 밀도와 다층적인 레이어를 지닌 환상적인 와인이다. 단언컨대 위대한 와인. 


'더 저지'는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샤르도네로 평가받는다. The Judge라는 이름은 판사였던 아버지에게 헌정하는 의미라고. 콩스가드는 나파에서 5대를 이어 온 집안으로 존 콩스가드(John Kongsgaard)와 그의 아내가 1970년대부터 식재한 포도밭(The Judge Vineyard)을 기반으로 1996년부터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샤르도네 외에 시라와 카베르네 소비뇽도 양조하는 듯. 자가 소유 밭 외에 좋은 밭을 장기 임대하여 포도를 조달한다.





이 정도의 포스를 느낀 게 얼마만인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님에도 압도당했다.





모두 어디 하나 빠질 데 없는 와인들이었음. 하지만 콩스가르드가 워낙 압도적이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레드 와인 안주가 너무 부족할 것 같다며 역시 서비스로 내어 주신 소시지. 



그리고 때맞추어 등장한 레드. 첫 번째는 ㅇㅅ쏨이 블라인드로 서빙했다. 영롱한 컬러에 병모양과 ㅇㅅ쏨 재직 회사 등을 종합하여 이태리 산지오베제가 아닐까 예상했는데 맛을 보는 순간 '아, 이건 네비올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Bite Colte, Essenze Barolo 2012 / 비테 콜테 에쎈제 바롤로 2012

영롱한 붉은 컬러에 붉은 꽃, 붉은 베리, 검은 뉘앙스의 진득한 미네랄. 입에 넣으니 제법 깔깔한 탄닌에 미디엄풀 바디, 붉은 자두와 붉은 베리 풍미. 산미는 높은 편은 아니며 벨벳같은 질감에 정말 틀에 맞게 잘 짜여진 느낌이다. 이를테면 공산품이지만 잘 만들어 마음에 드는 소품 같달까. 여러 번 마셔봤지만 언제나 만족스러운 바롤로. 가격을 생각하면 더욱.  





그리고 특별한 레드 두 병. 





Alter Ego 2012 Margaux / 알터 에고 2012

대단히 유명한 샤토 팔머의 세컨드 와인, 알터 에고. 하지만 나는 처음 마셔본다. 매콤한 스파이스와 바이올렛, 붉은 꽃잎, 블랙커런트, 블랙베리 등 농밀한 과일 풍미에 발사믹 힌트. 향을 맡았는데 질감이 느껴질 정도랄까. 입에 넣으면 예상대로 단정한 첫 인상. 매끈한 질감에 벨벳 같은 탄닌, 여백이 없는 탄탄한 구조감, 우아한 스타일. 왠만한 그랑 크뤼는 찜쪄 먹은 후 육수까지 내고도 남을 정도의 퍼포먼스다. 왠지 모르게 카베르네 소비뇽의 영향력이 강하게 느껴졌는데 실제 비율은 메를로 51%, 카베르네 소비뇽 40%, 쁘띠 베르도 9%. 훌륭하다. 좋은 가격에 보인다면 무조건 구매해야 한다. 그런데 좋은 가격에 잘 안 보여ㅠ





식사는 그릴한 가지와 페타 치즈를 곁들인 감태 리조토. 요소들이 오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디저트는 샴페인-과일 테린과 바닐라 글라세. 그리고 에스프레소 한 잔.




그리고 흔히 보기 힘든 디저트 와인.



Kobalt Wines, 41.08N 08.40W Port Styled Wine 2010 Napa Valley / 코발트 와인즈 41.08N 08.40W 포트 스타일 와인 2010

병을 오픈한 후 병목에 코를 대니 스윗 스파이스와 시나몬 캔디, 은은한 허브 향이 달콤하게 올라오는 것이 전형적인 포트의 느낌. 하지만 잔에 따르니 진한 커런트와 민트 향기가 전형적인 카베르네 소비뇽 같은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붉은 자두와 검붉은 베리, 다크 체리 풍미. 구수하게 볶은 커피와 강냉이 뉘앙스와 약간의 너티 힌트가 더해진다. 마치 풀 바디에 좋은 구조감을 지닌 살짝 jammy한 까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마시는 기분. 탄닌은 깔깔하고 골격이 좋으며 단맛은 과일 풍미의 단 여운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알코올 또한 20%이지만 15% 정도로 비교적 가볍게 느껴진다. 한 마디로 농익은 과일 풍미를 뽐내는 일반 스틸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으로 착각할 정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붉은 과일 풍미 사이로 잔당감이 촘촘하게 드러나기는 한다. 신기한 경험. 


카베르네 소비뇽 100%로 만드는 이 특별한 포트 스타일 와인은 포르투갈 전통 양조 방식을 따른다고 되어 있다. 4일의 저온 침용(cold soaking) 이후 야생 이스트로 발효한다. 잔당이 10% 정도 남았을 때 비오니에로 증류한 오드비를 첨가해 발효를 중지하며 추가적인 풍미와 컬러를 뽑아내기 위해 2일 동안 추가로 스킨 컨택을 진행한다. 뚜껑을 닫지 않은 오크에서 36개월 숙성하며 병입 후 추가 1년 숙성하여 출시한다.


코발트 와인즈는 케빈 캐리커(Kevin Carriker)와 와인메이커 마크 헤롤드(Mark Herold)가 2001년 나파 밸리 쿰스빌(Coomsville)의 작은 포도밭으로 시작한 와이너리다. 케빈 캐리커는 1974년 처음 보리유 빈야드(Beaulieu Vineyards)의 카베르네 소비뇽을 통해 와인을 접하고 와인에 빠졌다. 샌프란시스코의 와인숍과 나파의 작은 가족 경영 와이너리에서 경력을 쌓은 후 보르도로 건너가 다양한 와인메이커로부터 떼루아의 중요성을 배웠다.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1990-91년 글기치 힐스(Grgich Hills)에서 일했으며 이후 지인들과 함께 가라지에서 와인 양조 경험을 쌓았다. 1998년 오직 카베르네 소비뇽에 집중해 자신만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밭을 물색하던 중 마크 헤롤드의 도움을 받아 쿰스빌의 포도밭을 발견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코발트 카베르네 소비뇽 생산량은 20배럴 밖에 되지 않는다고.


요 와인은 '더 저지'와 함께 ㅈㅇㅅ님이 미국에서 직접 공수했다. 좋은 와인 경험하게 해 주셔서 감사!





다시 봐도 ㅎㄷㄷ한 라인업. 간만에 호강했다. 음식들도 와인의 격에 잘 맞았음... 프렙의 스완 송ㅠㅠ





이제 지도는 의미가 없지만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으로. 조만간 다른 곳에 새로운 레스토랑을 연다고 하니 그때 꼬옥 다시 방문해야지.



20170728 @ 프렙(부암동)

개인 척한 고냥이의 [와인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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