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니를 만드는 도중 맛도 보기 전에 확실히 느꼈다. 아, 이 진(Gin)은 찐이구나...
마틴 밀러스 진(Martin Miller's Gin). 영국에서 증류한 원액을 아이슬랜드로 가져가 청정수와 블렌딩 할 정도로 궁극의 맛을 추구하는 진이다. 진의 절반 이상은 물이니까, 맑고 깨끗한 물이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몇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두괄식으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영국산 밀 100% 사용해서 부드러운 질감과 단맛을 내고,
- 용존 고형물질 함량이 적은 아이슬란드 광천수를 사용해 밸런스가 오래 유지되며,
- 얼씨한 보태니컬과 시트러시한 보태니컬을 따로 증류해 풍미를 살렸다.
마틴 밀러스 진은 1999년 마틴 밀러와 두 명의 친구가 함께 만들었다. 한 마디로 자기 이름 붙여서 만든 자존심 쩌는 진. 재료는 주니퍼(Juniper), 안젤리카(Angelica), 오렌지, 아이리스(Iris), 고수(Coriander), 라임 껍질과 레몬 껍질(Lime & Lemon Peel), 감초(licuorice root) 등인데, 궁극의 진을 지향하기 때문에 물을 포함한 재료 또한 최상의 것만 선택한다.
중요한 포인트는 보태니컬을 증류할 때 시트러시(citrusy)한 재료와 토양 뉘앙스(earthy)한 재료를 별도로 증류한 후 나중에 블렌딩함으로써 다른 특성을 지닌 재료의 풍미를 모두 살린다는 것. 게다가 증류 시 사용하는 주정의 원료로는 100% 영국산 밀을 사용하는데, 이는 진이 부드러운 질감을 갖고 은은한 단맛을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증류한 원액을 굳이 아이슬랜드까지 가져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아이슬란드의 순수한 광천수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광천수는 용존 고형물질이 8PPM에 불과한 지구 상에서 가장 순수한 물이라고 한다. 보통의 광천수가 400PPM 수준이라니 정말 연수 중의 연수인 셈이다. 용존 고형물질이 적으면 물의 표면장력이 강해 알코올의 빠른 증발을 억제한다. 알코올이 빠르게 증발되면 술의 밸런스가 깨지고 향도 일찍 사라지는 문제가 있다. 그만큼 마틴 밀러 진은 맛과 향의 밸런스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병의 뒷면에 영국에서 아이슬란드까지의 긴 여정을 그려 넣은 것은 단순히 마케팅 요소만은 아닌 셈.
그 밀도높고 맑은 풍미는 마티니를 만드는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냉동실에 칠링해 둔 마틴 밀러 진을 꺼내 뚜껑을 여는 순간, 향긋한 시트러스와 주니퍼 베리, 그리고 은은한 오이 향기가 너무나 향긋하게 느껴졌기 때문.
기대감이 증폭된 가운데, 마티니에 취약한 나는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면 어떡할까 걱정했는데...
입에 닿는 순간부터 그 부드러움에 놀랐고, 그 순한 풍미에 다시 한번 놀랐다. 내가 마티니를 이렇게 부담 없이 넘긴 적이 있었던가.... 천천히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온도가 올라갔음에도 밸런스가 쉽게 깨지지 않는 느낌이다.
내일은 진 토닉을 만들어봐야겠다. 이렇게 맛있는 진이라면, 니트로도 마실 수 있는 진이라면 진 토닉은 얼마나 맛있을지...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일상의 음주 > 위스키·브랜디·리큐르·기타증류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면세점 코냑, 쿠르부아지에 VSOP 트리플 오크(Courvoisier, VSOP Triple Oak) (1) | 2021.04.30 |
---|---|
가성비 가심비를 모두 잡은 제주 면세점 코냑, 카뮤 보르데리 VSOP(Camus Cognac Borderies VSOP) (0) | 2021.04.18 |
추억의 사각 녹색 병 위스키, 패스포트(Passport) (0) | 2021.03.13 |
압생트 55(Absente 55),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압생트(Absinthe) (0) | 2021.03.11 |
페이쇼드 비터스(Peychaud's Bitters) - 사제락의, 사제락에 의한, 사제락을 위한 비터스 (0) | 2021.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