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와인을 좀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재미있게 소개해 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쓴 글인데, 생각만큼은 잘 되지 않은 것 같다. 더블 다이아몬드는 컬트 와인 반열에 근접한 슈레이더 셀라스의 보급형 와인인데, 요 와인만 마셔봐도 윗급이 어떤 품질일지 미루어 짐작할 만 했다. 물론, 진정한 맛은 마셔 봐야 알 수 있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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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클래식 카베르네 소비뇽, 슈레이더 셀라스
친구 : “나 시험 완전히 망했어...ㅠㅠ”
나 : “답안지 밀려썼니? 몇 점이나 받았길래 그래?”
친구 : “96점.”
나 : “......??”
학창 시절 전교에 이런 녀석 한 몇 쯤은 있었다. 올백이 일상이었던 천재 같은 친구. 그러다가 한 문제쯤 틀리면 큰일 난 것처럼 구는 얄미운 친구. '올백러'인 녀석이 이런 얘기를 하면 평범했던 우리는 벌레 보는 듯한 표정으로 녀석의 등짝에 스매싱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 그 친구는 벌레가 맞다. 공부벌레. 노력 없이 그런 점수가 쉽게 나올 리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소싯적에 그런 미드도 있었다.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고.
와인에도 그런 친구가 있다. 주인공은 미국 나파 밸리의 슈레이더 셀라스(Schrader Cellars). 오직 최고의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으로만 와인을 만드는 '카베르네 소비뇽 스페셜리스트'다. 1998년 와이너리 설립 후 처음으로 출시한 벡스토프 토 칼론 카베르네 소비뇽(Schrader Cellars Beckstoffer To Kalon Cabernet Sauvignon) 2001년 빈티지가 로버트 파커(Robert M. Parker Jr.)로부터 99점을 받아 몸을 풀더니, 다음 해에는 올드 스파키 카베르네 소비뇽(Schrader Cellars Old Sparky Cabernet Sauvignon) 2002년 빈티지가 덜컥 100점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올드 스파키 카베르네 소비뇽과 CCS 카베르네 소비뇽(Schrader Cellars CCS Cabernet Sauvignon) 두 와인은 2005 빈티지부터 2008 빈티지까지 4년 연속으로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까지 <와인 애드버킷(Wine Advocate>을 비롯해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 등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와인 평론으로부터 100점 만점을 받은 횟수만 자그마치 27회. 슈레이더 셀라스는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아메리칸 클래식 와인으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위대한 와인이 탄생하려면 특별한 테루아는 물론 그 개성을 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 실력 있는 와인메이커가 필요한데, 슈레이더 셀라스는 이를 완벽하게 갖췄다.
최고를 지향하는 소유주가 찾은 극상의 떼루아
프레이더 셀라스의 소유주 프레드 슈레이더(Fred Schrader)는 원래 전 세계의 귀중한 예술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딜러였다. 그런데 1988년 나파 밸리 와인 자선 경매 행사에 참석했다가 와인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된다. 자신만의 와이너리를 설립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후, 그의 관심은 초지일관 세계 최고의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빼어난 포도를 생산하는 포도밭이 필요했다. 꼼꼼하게 포도밭을 검토하던 그는 2000년 나파밸리 중부 오크빌(Oakville)에서 운명적인 포도밭을 만난다. 폭발적인 과일 풍미, 타닌과 신맛의 환상적인 밸런스를 모두 갖춘 카베르네 소비뇽을 생산하는 벡스토퍼 토 칼론 포도밭(Beckstoffer To Kalon Vineyard)이다. 오크빌 서쪽 마야카마스 산맥과 29번 국도 사이에 있는 토 칼론 포도밭은 '극상의 아름다움(the highest beauty)'라는 이름의 의미대로 명실상부 나파밸리 최고의 포도밭 중 하나로 손꼽힌다. 1868년 처음 조성된 이래, 1994년 현대식 수형을 적용한 포도나무를 더욱 촘촘하게 식재해 토 칼론 포도밭의 개성을 더욱 확실하게 드러낸다. 배수가 잘 되는 자갈 토양으로 포도나무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토 칼론 빈야드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비농업 개발을 영원히 금지하는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식스 센스를 지닌 준비된 와인메이커
빼어난 포도밭을 찾았으니 훌륭한 와인을 만들어 줄 빼어난 와인메이커가 필요했다. 소유주 프레드 슈레이더와 와인메이커 토마스 리버스 브라운(Thomas Rivers Brown)의 만남은 마치 유비가 은거 중이던 제갈량을 얻은 것과 같았다. 2000년 당시 토마스 리버스 브라운은 4년 전에 나파 밸리에 정착한 무명의 신인이었고, 나이는 29세에 불과했다. 원래 그는 버지니아 대학에서 경제와 문학을 전공하고 월스트리트에 취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자 친구 아버지의 셀러에서 만난 한 병의 와인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1996년 나파 밸리로 이주할 당시 그가 품은 생각은 와인에 대한 원대한 꿈이라기보다는 순진한 호기심에 가까웠지만, 나파의 와인숍과 와인바에서 일하며 여러 와인 관계자들과 와인광들을 만나면서 그의 꿈은 점점 구체화되었다. 그는 헬렌 튤리(Helen Turley) 등 유명 와인메이커의 와이너리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았고, 2000년 어느 날 그가 일하던 칼리스토가(Calistoga)의 와인숍으로 프레드 슈레이더가 찾아왔다. “자네, 나와 함께 일하지 않겠는가?”
당시까지 토마스 리버스 브라운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와인이 한 병도 없었다. 하지만 프레드 슈레이더는 그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덕분에 물 만난 물고기처럼 그의 재능은 첫 해부터 드러날 수 있었다. 토마스 리버스 브라운이 양조를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은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했다. 그는 스스로 필요한 것을 공부하고 동료들을 관찰해서 배운 것들을 습득해 자신만의 양조 철학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관찰력과 직관력이 뛰어났던 그는 포도밭과 양조장에서 어떤 시기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본능적으로 깨달았고 위대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하지만 슈레이더와 브라운 모두 과도한 개입은 선호하지 않는다. 좀 더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와인을 만들기를 원하며, 효소 첨가, 색과 풍미 강화, 역삼투, 저온 진공 증류기(spinning cone) 등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무거운 와인이 되지 않도록 과일 풍미와 타닌의 숙성도가 적절히 균형을 맞추도록 신경을 쓴다. 덕분에 바로 마셔도 맛있고, 10년 이상 숙성한 후에는 고급스러운 부케를 드러내는 빼어난 와인이 탄생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7종의 슈레이더 셀라스 와인을 만날 수 있다(하단 리스트 참고). 특히 로버트 파커로부터 무려 아홉 번이나 백점을 받으며 슈레이더 셀라스의 명성을 확립한 올드 스파키 카베르네 소비뇽은 매그넘(1,500ml) 사이즈로 딱 60병만 선보인다. 가장 많이 판매되는 더블 다이아몬드 카베르네 소비뇽은 슈레이더 셀라스가 왜 '아메리칸 클래식'이라고 불리는지 짐작할 수 있는 탄탄한 품질을 갖췄다. 나파 카베르네 소비뇽의 진수를 느끼고 싶다면 반드시 마셔 보아야 할 와인이다.
슈레이더 더블 다이아몬드 카베르네 소비뇽 Schrader Double Diamond Cabernet Sauvignon 2018
검보랏빛이 감도는 진한 루비 컬러. 은은한 바이올렛, 시원한 민트, 고혹적인 흑연 뉘앙스와 함께 블랙베리, 블루베리, 검붉은 자두, 블랙커런트 아로마가 밀도 높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의외로 섬세한 첫인상. 촘촘하지만 부드러운 타닌은 벨벳 같은 질감을 선사하며, 생생한 산미와 함께 탄탄한 구조감을 형성한다. 농익은 과일 풍미와 발사믹 뉘앙스, 토스티한 오크, 은은한 바닐라, 감초, 정향, 시나몬 같은 스위트 스파이스, 다크 초콜릿 등이 만들어내는 복합적이고 긴 여운. 커다랗고 투박한 근육이 아니라 잔근육이 촘촘하게 디벨롭된 아름다운 보디빌더 같은 와인이다. 토 칼론 빈야드 포함 오크빌에서 재배한 카베르네 소비뇽 100%로 양조해 프렌치 오크(50% new)에서 16개월 숙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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