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임승수 지음
'슬기로운 방구석 와인 생활'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 이과를 전공한 마르크스 주의 전업 작가가 쓴 와인 실용서라니, 조금 낯설긴 하지만 어찌 보면 딱 맞는다. 그다지 밖에 나갈 일 없이 집에서 일하는 수입이 불안정한 전업 작가가 와인을 즐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니까. 헷갈리는 와인 품종이나 와인 산지의 특징을 소개하는 불필요한(?) 내용은 생략하고, 실제로 와인을 구입하고 보관하고 즐기는 방법을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했다. 와인서처(wine-searcher.com)를 이용해 가격을 확인하고 호구잡히지 않는 법을 알려주거나, 와인의 온도를 맞추고 적당한 글라스를 추천하는 등 매우 실용적인 내용들이다. 마트나 동네 와인샵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와인으로 테마 별 추천 리스트를 구성한 것도 매우 유용해 보인다. 처음 와인에 빠져들기 시작했을 무렵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좋아했던 와인이나 자주 추천하는 와인들이 많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서 묘한 즐거움도 느꼈다. 또한 아직 와인 직구를 해 본 적이 없는데, 한 번 시도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날이 좀 시원해지면 특히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생년 빈티지 포트로 시도해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옥의 티를 몇 가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와인서처 가격은 구매 시 유용한 레퍼런스이긴 하지만, 특정 비율 (예를 들어 저자가 거론하는 1.4배)를 모든 와인에 일률적으로 적용하긴 어렵다. 대량 생산 와인이야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희소한 와인이거나 생산량이 많아도 수입량이 적은 와인의 경우 통관 및 유통, 수입사 마진 등의 문제로 가격은 훨씬 상승할 수 있다. 이런 경우 국내 가격이 와인서처 가격에 비해 2~3배 올라갈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바가지'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수입량에 따라 단가가 바뀔 수도 있고, 저자도 거론한 세금 문제가 있으며, 통관 시 검사 비용도 추가될 뿐더러, 유통 구조도 다르니까. 수입사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프라이싱만 해도 해외가보다는 2배 이상 올라갈 수 있다는 얘기다. 수입사 쉴드를 치려는 게 아니다. 나도 누구 못지않게 가격에 민감한 사람이지만 현실은 현실이니까. 물론 인기 있는 와인들은 희소성에 의한 가격 상승 프리미엄도 분명히 있다. 저자의 말처럼 대량 유통 채널 등에서 모르는 사람 호구 잡으려고 악독하게 가격을 매긴 제품들도 분명 존재하고.
푸드 페어링도 저자의 입맛에 따라 너무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있어 조금 아쉬웠다. 예를 들어 '생선회와 오크 숙성 화이트 와인을 페어링하면 비린내가 증폭돼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어떤 일류 소믈리에는 민어회와 오크 숙성 샤르도네를 베스트 페어링으로 추천하기도 했고, 주변에서도 선어회와 오크 숙성 와인들을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오히려 너무 가벼운 품종, 혹은 오크 숙성을 하지 않은 화이트의 경우 회와 곁들일 때 풍미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거나 따로 놀아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자주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그 의견에 상당히 동의한다.) 어떤 생선이냐에 따라, 어떤 와인이냐에 따라 생선회와 오크 숙성 화이트의 조합도 충분히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도 얼마 전에 오크 숙성 화이트와 생선 세비체, 시메사바, 모듬 생선회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몇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이제 막 시작하는 애호가들에게 추천하기 매우 적절하다. 실제로 주변인들에게 많이 추천했고, 이 책을 선물용으로 구입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본 제대로 된 와인 실용서랄까.
다른 두 권의 와인 서적과 함께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을 추천한 위 기사도 참고.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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