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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냥의 취향/책·영화·음악·여행

음식의 언어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1. 8. 1.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어에 반영된 음식 이야기와 역사, 한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변화되는 양상 등을 흥미진진하게 엮어낸 책. 여러 나라말이 섞이면서 읽기 좀 어려운 면이 있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제법 어려운 내용을 상당히 쉽게 풀어낸 책이다.

케첩과 덴뿌라, 피시 & 칩스가 중국식 피시 소스에서 기원했다는 신기한 사실부터 건배의 토스트가 빵 토스트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칠면조의 이름이 지중해 연안 국가의 이름과 같은 터키가 된 이유, 프랑스 요리의 앙트레(entrée)가 코스 요리의 첫 순서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닌 이유 등 책 전체에 상식을 넓힐 수 있는 흥미로운 얘기들이 가득하다. 세비체의 유래, 프랑스의 마카롱과 이탈리아의 마카로니의 표기/발음이 왜 비슷한지 등등도.

하지만 가장 관심이 갔던 내용은 아래 세 가지와 관련된 이야기다.

1. 예를 들어 고급 식당일수록 메뉴 설명이 간결해지는 경향이 있다. 고급 스시집에서 '셰프 오마카세'를 하는 것처럼, '주방장 특선'이나 '셰프 추천'처럼 고객에게 선택권을 주거나 구체적인 정보를 노출하지 않고, 식당과 셰프에게 맡기라는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꼭 써야 할 표현에 대해서는 장황하고(서양 단어에서는 간결한 것보다는 긴 것이 격식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므로), 이국적이며, 섹시한 표현을 선호한다. 이는 뭔가 자세히 설명하며 설득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고객이 맛과 품질을 의심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맛과 품질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애초에 우리 식당은 그런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반면에 고급 감자칩 봉지에서 재료의 원산지와 조리법,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을 대해 상세하게 상술하는 이유는 감자칩 자체가 프리미엄 제품 카테고리가 아니기 때문이며, 고객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설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 맥주나 와인, 맛집을 리뷰할 때 악평에 대해서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다양한 어휘들이 동원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호평에 대해서는 대부분 사용하는 용어들이 유사하다. 불편하게 느끼는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양하지만, 좋다고 느끼는 포인트는 유사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3. 음 자체에 의미가 담길 수 있다는 본성주의. 일반적으로 언어의 형식과 의미는 자의적으로 연결된다는 형식주의적 관점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인간은 특정한 음과 특정한 의미를 본원적으로 연결시켜 받아들인다는 경험적 증거들도 여럿 발견되고 있다는 것. 예를 들어 i와 같은 전설 모음은 작고 얇고 가벼운 사물을 가리키는 단어에, o와 같은 후설 모음은 크고 뚱뚱하고 무거운 사물을 가리키는 단어에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특정 물질을 지시하는 일반 명사, 혹은 브랜드 네임 등에 폭넓게 반영되어 있다. 

 

이외에도 소재로 삼은 대부분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식음료 관련 직업에 종사하거나 식음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한번 쭉 읽은 후 원하는 부분만 다시 한번 집중해서 읽어도 좋을 책.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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