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일요일 오후, 열심히 딴짓을 하고 있는데 소시지 굽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벌써 저녁 준비를 하는 건가...
급하게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안주 준비.
이마트 와인클럽 50% 할인할 때 쟁여 놓았던 치즈다. 왼쪽은 브라운 치즈인데 와인 테이스팅 행사 때 맛본 적이 있다. 제대로는 처음 먹어보는데, 완전 캐러멜 맛. 정확히는 메가톤바 맛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빵이나 크래커에 올려먹으면 핵존맛이다.
올리브유에 재운 방울토마토에 모짜렐라 치즈 곁들이고,
도이칠란드 박에서 사 온 소시지도 접시에 세팅한 후,
토종 효모 빵까지 구워놓으면, 간단한 저녁 식사 테이블 완성!
물론 술이 빠질 수 없지.
오랜만에 내추럴 와인을 꺼냈다. 한국에서도 제법 알려진 오스트리아 마인클랑(Meinklang)의 펫낫(Pet-Nat). 마인클랑은 비오디나미 농법을 적용하며 데메테르(Demeter) 인증을 받았다.
펫낫은 페티앙 나튀렐(Pétillant Naturel)의 줄임말로, 첨가물 없이 와인 자체의 잔당을 이용해 기포를 만드는 스파클링 와인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일반적인 스파클링 와인 생산의 경우 알코올 생성을 위한 1차 발효를 진행해 병입 한 후(혹은 탱크에 넣은 후) 거품을 만들기 위해 당분과 효모를 추가 투입한다. 하지만 펫낫은 발효 중인 와인을 추가 당분+효모 첨가 없이 그대로 병입한다. 그러면 발효 중인 와인이 그대로 추가 발효되면서 병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이산화탄소가 병 안에 남아 거품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탄산이 강하지 않은 부드러운 미감의 약발포성 스파클링 와인이 만들어진다. 또한 효모 찌꺼기를 걸러내지 않기 때문에 특유의 풍미가 강하게 드러나며, 잔여물로 인해 와인이 탁해진다. 독일의 바이젠(Weizen)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병 하단에 갈색 효모 찌꺼기들이 모여있는 게 명확히 보인다. 뚜껑은 일반 음료수 같은 크라운 캡.
독일어로 쓰여 있는 설명. 나는 제2외국어가 독일어였으니까... 는 개뿔;;; 역시 구글 느님의 힘은 위대하다.
A wine full of myth, an extinct volcano that rises majestically from the plain, sun-drenched slopes, barren rock, autochthonous vines that cling gracefully to magma columns, blown by cool winds - a place that was made for this slightly tingling PetNat, in its purist form without any additives. The cloudiness is deliberate, as the fine yeast, if not filtered or disgorged, offers natural protection against aging. Best: 2020-22 |
시원한 바람이 살랑 불어오는 일조량이 좋은 사화산 기슭의 척박한 바위에서 재배한 토착 품종으로 만든 펫낫이란다. 알코올 11.5%로 술술 마셔도 부담 없다. 그래서 한 병을 다 조져버림^^;;
캡을 따니 안쪽에 플라스틱 한 겹이 덧대어져 있다. 밀봉을 위한 배려이긴 한데... 내추럴 생산자이니 환경 이슈도 고려하면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Meinklang, Foam Vulkán NV / 마인클랑 폼 불칸 NV
사과주스처럼 진한 옐로 골드 컬러. 기포는 거칠고 강하지 않지만 나름 꾸준하게 피어오른다. 옆에서 아이가 향을 맡더니 꼭 술 탄 사과주스 같은 향이라고. 나에게는 알코올은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토스티한 뉘앙스가 더해져 마치 후렌치 파이 사과맛을 막 뜯은 느낌이었다. 거기에 완숙한 자두, 레몬 시트러스 풍미와 다양한 들꽃 향기가 더해진 느낌. 다양한 풍미가 생생한 신맛, 가벼운 단맛과 함께 입안에 가득 담긴다. 상당히 명확한 풍미가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펫낫.
야구 보며, 나중엔 애들과 카탄 하며 한 병을 다 비웠다. 사용한 품종을 검색해 보니 하르슬레벨루(Harslevelu), 주파르크(Juhfark)... 제대로 읽기도 어렵지만, 하르슬레벨루는 헝가리 토카이(Tokaj)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품종이었다는 게 기억난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인접해 있으니 서로 품종을 공유할 수도 있겠네.
마시다가 병 하단의 효모 찌꺼기들을 보니 아직도 기포가 생기고 있다. 너희... 아직도 살아있었구나.
마치 큰 가리비가 입을 천천히 벌리는 것 같다... 한참을 바라보았네. 새로운 컨셉의 버블멍이다.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