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구매한 봄베이 사파이어(Bombay Sapphire) + 하이볼 글라스 팩. 보통 봄베이 사파이어 750ml 정가가 3만 원 중후반인데, 요건 하이볼용 머그잔이 하나 붙은 상태로 2만 원대 후반이다.
그런데 사실 하이볼(Highball) 글라스가 아니라 진토닉(Gin & Tonic) 글라스라고 써야 맞다. 봄베이 사파이어는 위스키가 아니고 진(Gin)이니까. 요즘 하이볼이 유행이고 일반 대중들 사이에 널리 통용되다 보니 그냥 하이볼이라고 표기한 것 같다.
뒷면의 봄베이 진토닉 레시피에는 진토닉이라고 제대로 써 놨다. 봄베이 하이볼이라고 하기엔 좀 거식했나...ㅋㅋ
역시 요즘 혼술 & 홈술 붐이 무섭긴 한가 보다. 소주(& 맥주) 매출은 확실히 줄고 와인과 위스키, 기타 주류 관련 매출이 늘고 있다고 하니까. 솔까 집에서까지 깡소주 마시고 싶진 않을 것 같다. 소맥도 매일 말아먹긴 지겨울 거고.
개봉. 독특한 하늘색 컬러의 보틀이 참 예쁘다.
잔도 제법 잘 만들었다.
그립감도 참 좋고. 물론 나는 이런 형태의 잔을 좋아하지 않아서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두툼한 머그 형태의 잔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제법 탐낼 만한 디자인이다. 중저가형 글라스 메이커 중에서는 제법 알려져 있는 오션 글라스에서 만든 제품.
어쨌거나 내 관심사는 봄베이 사파이어 런던 드라이 진, 그 자체.
레이블 상단에는 웬 아줌마(?) 사진이 붙어 있는데, 영국 빅토리아 여왕-_-;; 이다. 원래 상업적인 제품에 왕실 인물의 사진을 쓰는 것은 영국에서는 금지되어 있다는데, 어찌 된 일인지 봄베이 사파이어 진에는 떡하니 여왕의 사진이 붙어 있다. 이게 머선 129?
하단에는 1761년 레시피로 만들었던 표기가 있다. 그런데 상단 사진의 빅토리아 여왕은 19세기 사람인데... 이는 토마스 다킨(Thomas Dakin)이라는 인물이 1761년에 만든 레시피를 사용했다는 얘기다.
그는 1761년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에 있는 워링턴(Warrington)이라는 곳에 증류소를 세우고, 봄베이 사파이어가 아니라 '워링턴 진'을 생산했다. 그가 만든 진은 품질이 좋아서 그의 자손에 이르기까지 판매를 이어오다가, 그의 손자 대에서 물려줄 후손이 없어 그린올(Greenall)이라는 회사에 인수된다. 하지만 원래 판매가 잘 되던 진이었기 때문에 레시피는 손대지 않고 이름만 바꿔서 계속 제품을 출시했다고.
그러다가 1950년대 시그램(Seagram)에서 미국 시장에 출시할 진을 개발하다가, 그린올과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진의 컨셉을 영국이 잘 나가던 대영제국 시절로 잡고, 패키지와 네이밍을 개발했다. 그래서 빅토리아 여왕의 사진을 레이블에 쓰게 되었고, 이름도 '봄베이 드라이 진'이라고 붙였다. 그때까지는 아직 '봄베이 사파이어'가 아니다.
1980년대에 다시 IDV(International Distillers & Vintners)에서 봄베이 드라이 진 브랜드를 인수했는데, IDV는 거대 주류기업 디아지오(Diageo)의 전신이다. 브랜드만 인수한 것이기 때문에 생산은 계속 그린올에서 담당했고 레시피는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그러다가 IDV에서 봄베이 스피리트 컴패니(The Bombay Spirits Company Ltd.)라는 자회사를 만들면서 봄베이 진의 고급화를 추진했고, 기존의 레시피를 기반으로 두 가지 재료를 추가해서 개발한 것이 바로 '봄베이 사파이어'다.
왼쪽이 기존의 레시피에 사용하던 향신료, 오른쪽이 봄베이 사파이어의 향신료다. 기존 8개의 향신료에 그레인스 오브 파라다이스(Grains of Paradise)와 큐베브 베리(Cubeb Berries)라는 두 가지 열매가 추가되었다. 그레인스 오브 파라다이스는 멜레게타(Melegueta)라고도 부르는데, 카다멈과 친척 관계인 향신료로 후추와 비슷하게 쓰인다고 한다. 큐베브는 후추속에 속하는 향신료로, 수마트라 섬과 자바 섬에서 많이 재배하기 때문에 자바 후추라고도 불린다. 풍미는 흑후추와 올스파이스의 중간 정도라고 표현한다.
둘 다 기존의 진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던 향신료라고 한다. 또한 두 개 모두 '후추'가 중요한 풍미의 표현으로 쓰이는 만큼, 상당히 스파이시한 진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실제로 '봄베이 사파이어는 스파이시한 풍미가 특징'이라는 설명을 많이 보았고, 다른 진과는 상당히 다른 성격을 보여서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경험담을 많이 들었다. 흠, 하지만 세계 판매 2위인 진을 호불호가 갈린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는....
어쨌거나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이름에 '사파이어'라는 보석을 사용했고, 보틀에도 영롱한 스카이 블루 컬러를 적용했다. '봄베이 사파이어'라는 이름의 진이 출시된 해는 1986년으로, 사실상 현재 레시피가 형성된 것은 1986년이라고 보는 게 맞다. 기존 레시피로 만든 제품은 '봄베이 드라이 진'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팔리고 있으니까.
봄베이 사파이어 브랜드는 1997년 다시 바카디(Bacardi)에 매각된다. 너무 덩치가 커진 디아지오에서는 독과점 규제 등을 피하기 위해 브랜드를 정리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고육책으로 봄베이 사파이어를 매각하게 된 것. 현재 디아지오는 세계 판매 1위인 고든스(Gordon's) 진과 탱커레이(Tanqueray) 진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봄베이 사파이어까지 보유하고 있었다면 세계 판매 1, 2, 3위를 모두 보유한 회사가 될 뻔했다.
어쨌거나, 이후 2005년엔 봄베이 사파이어를 생산하던 증류소에 대형 화재가 발생해 생산시설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는다. 이에 바카디는 런던 서쪽으로 80~90km 떨어진 위트처치에 위치한 라버스토크 밀(Laverstoke Mill)이라는 유서 깊은 건물을 사들여 기존의 설비를 재현해 증류소를 재건한다. 2014년 드디어 봄베이 사파이어 증류소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증류소를 오픈했는데, 대형 비지터 센터와 봄베이 사파이어에 사용되는 식물들의 샘플을 재배하는 유리 식물원이 포함되어 있다고.
백 레이블. 싱그러운 시트러스와 주니퍼 풍미가 우아하고 가벼운 스파이시 피니시와 함께 부드럽고 복합적으로, 감질맛 나게 드러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손으로 선별한 보타니컬들은 배이퍼 인퓨전(Vapour Infusion) 프로세스로 섬세하게 추출했다. 100% 곡물로 만들어진 스피릿만 사용한다.
사용된 보타니컬 10가지가 보틀의 옆면에 예쁘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투명한 병이다 보니 사진을 찍기 어려운 것이 함정;;; 앞서 언급한 그레인스 오브 파라다이스, 큐베브 베리 외에 기본이 되는 주니퍼 베리(juniper berries), 아몬드, 레몬 필(lemon peel), 감초(liquorice), 흰 붓꽃 뿌리(orris root), 안젤리카(angelica), 코리앤더(coriander), 계피(cassia) 등.
리델 비늄 스피릿(Riedel Vinum Spirits) 글라스에 따라 맛을 보았다.
뚜껑을 오픈하자마자 향긋한 시트러스와 주니퍼 풍미가 상쾌하게 드러나는 게 상당히 마음에 든다. 후추같이 톡 쏘는 스파이스는 잔에 코를 대는 순간 본격적으로 드러나는데, 그렇다고 매콤한 수준은 아니고 시트러스 풍미에 포인트를 주는 수준의 밸런스가 좋은 토핑이다. 입에서는 솔 향과 함께 시트러스 껍질, 고수 등의 풍미가 부드럽게 드러난다. 목 넘김 후엔 상당히 깔끔하고, 스파이시한 여운이 잔잔하게 남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나는 '호' 구나ㅋㅋ
그럼 하이볼도 말아 봐야지. 생라임과 초정 토닉워터를 썼다.
하이볼에서도 주가 되는 것은 스파이스가 아니라 시트러스 쪽이다. 하지만 톡 쏘는 스파이시함은 확실하게 더해진다. 와이프는 조금 부담스럽다고. 알코올 향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다. '불호'쪽의 분들에게는 알코올 부즈의 증폭 효과를 일으키는 게 아닌가 싶기도. 어쨌거나 나는 좋으니 앞으로도 종종 구매할 듯.
윗급인 별베이(Star of Bombay)도 마셔 보고 싶군.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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