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러스 풍미를 강화한 프리미엄 진, 텐커레이 넘버 텐(Tanqueray No. 10). 코블러 셰이커를 닮은 녹색 보틀의 형태부터 아주 매력적인 진(Gin)이다. 병 아래 펀트의 모양이 마치 레몬이나 라임을 짤 때 쓰는 스퀴저를 닮은 것 같은데, 텐커레이 넘버 텐 특유의 시트러스 풍미를 연상시키기 위해 의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표기하기가 좀 어렵다. 텐커레이, 탠커레이, 탱커레이, 텡커레이... 수입사의 공식 표기는 '텐커레이'다. 편하게 발음하면 탱커레이가 되는 것 같고. 원재료는 정제수, 주정, 설탕, 글리세린으로 간단히 표기돼 있는데, 주니퍼를 비롯해 다양한 허브와 향신료, 시트러스를 사용했다.
보통 대형마트에서 3만 원대 중후반 정도에 팔리는데,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종종 행사가로 2.8만 원 정도에 나온다. 구입 계획이 있다면 기회를 잘 노려보는 게 좋다. 그나저나 뚜껑의 저 로고는 무엇을 표현한 걸까? 멋있긴 한데...
23년 9월 3일 수정) 최근에는 보통 4만 원대에 팔리고 있다. 할인해도 3만원 중반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뚜껑 옆면에는 창립자의 사인이 있다. 텐커레이는 1830년 찰스 텐커레이(Charles Tanqueray)가 설립했다. 도전정신이 투철하고 완벽주의자였던 그는 서민의 술이었던 진의 완성도를 상당히 향상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는 조악한 진의 품질을 감추고자 약간 단맛이 도는 올드 톰 진(Old Tom Gin)이 대세였던 시기였는데, 그는 당시 개발된 연속식 증류기를 사용해 깔끔한 맛의 드라이 진을 만들었던 것. 재료 또한 주니퍼(Juniper), 코리앤더(coriander), 안젤리카(angelica), 감초(liquorice) 등 네 가지만 사용해 균형잡힌 풍미를 이루어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들 찰스 워 텐커레이(Charles Wough Tanqueray)가 회사를 월드 클래스로 키우게 되는데, 1893년에는 더욱 시세를 확장하기 위해 고든스(Gordon's)와 합병됐다. 고든스는 왕실의 인증을 받은 진으로, 현재도 세계 판매량 1위를 달리고 있다. 텐커레이는 3위. 현재 둘 모두 디아지오(Diageo) 소속이니 대단하다...
텐커레이 넘버 텐은 2000년 출시했다. 탱커레이 런던 드라이 진(Tanqueray London Dry Gin)의 프리미엄 버전. 생산할 때 사용하는 작은 증류기 번호가 10번이었고, 별명이 타이니 텐(Tiny Ten)이었기 때문에 이름을 '넘버 텐'으로 지었다.
프리미엄 버전이지만, 비슷한 스타일로 품질만 올린 것이 아니라 스타일 자체가 많이 다르다. 텐커레이 런던 드라이 진은 주니퍼 중심의 풋풋하면서도 묵직한 스타일이라면, 텐커레이 넘버 텐은 시트러스와 플로럴 허브 중심의 향긋하고 산뜻한 스타일이다.
레이블에도 'FRESH CITRUS AND BOTANICALS'라고 쓰여 있다. 이를 위해 세심히 선별한 보타니컬(botanicals)과 플로리다 오렌지와 멕시칸 오렌지, 자몽 등을 밀을 사용해 만든 중성적인 스피릿과 함께 증류해 에센스를 추출한다. 시트러스 껍질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과일 자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텐커레이 넘버 텐 만의 독특한 시트러시함이 부각되는 것이다. 또한 텐커레이 런던 드라이 진과 같은 주니퍼, 코리앤더, 안젤리카, 감초 등의 주재료를 사용하지만 그 비율이 상당히 다르다.
또한 증류 중 헤드(head)와 테일(tail)을 40% 이상 제거하고 가운데 60%만 사용한다. 일반 드라이 진을 증류할 때 90% 이상을 남기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적은 부분만을 사용하는 것. 이 역시 시트러스 풍미가 풍성하게 드러나는 부문만을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텐커레이 넘버 텐의 개성을 강화하기 위한 작업이다.
한 잔(30ml)이 80kcal다. 술만 먹어도 살이 찌긴 하겠네....
일단 첫 잔은 진토닉으로. 니트로 마셔 볼까 하다가 시원한 게 땡겨서 진토닉으로 변경했다. 어차피 8할 이상 진토닉으로 소비할 예정이니... 나머지는 아마 네그로니로. 마티니는 나에게 너무나 먼 존재다.
진과 잔은 미리 시원하게 칠링해 두었다.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라임도 시판 주스가 아닌 생 라임을 썼다. 라임이든 레몬이든 겉과 속껍질에서 나오는 향이 풍미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큰 듯.
뚜껑을 열었을 때, 그리고 지거에 따랐을 때 향을 맡아봤는데, 상큼한 시트러스 향이 전면에 드러나면서도 진 특유의 주니퍼 향과 음습한 허브의 느낌, 약간의 씁쓰름한 뉘앙스가 명확히 살아있었다. 헨드릭스 진처럼 향긋하고 가볍게 떠오르는 게 다가 아니라 아래쪽에서 지긋이 중심을 눌러주는 풍미가 상당히 있달까.
진토닉으로 마셔 봐도 비슷한 느낌이다. 플로럴 & 시트러시한 풍미 뒤로 무거운 진의 느낌이 남는다. 일반 텐커레이 런던 드라이 진을 마시면 아마 그 묵직한 느낌이 훨씬 강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큰 틀에서 균형이 잘 잡힌 진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 좋은 올 라운드 플레이어의 느낌. 물론 개인적으로는 마틴 밀러 진(Martin Miller's Gin)처럼 더 맑고 산뜻한 진을 선호하긴 하지만.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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