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칠성음료에서 SBS 팟캐스트 말술남녀와 함께 온라인으로 진행한 글렌고인(GlenGoyne) 시음회. 사전 신청을 통해 100명을 선발했는데 운 좋게 선정됐다.
여담이지만 '피트에 오염되지 않은(untainted by peat smoke)'라는 카피가 사전 선발 단계에서부터 큰 논란을 일으켰었다. 소위 스스로를 '피트충'이라고 표현하는 피트 마니아들은 반 고인 연합을 결성할 분위기였달까. 개인적으로도 조금 과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솔까 무관심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이런 식으로라도 관심을 끄는 게 마케팅 관점에서는 맞는 것 같다. 실제로 어떤 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피트'라는 얘기만 들으면 글렌고인이 떠오른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으니까. 어그로의 승리-_-;;;
시음회 일주일 전에 도착한 테이스팅 키트. 케이스부터 신경 쓴 티가 난다.
박스를 여니 가장 먼저 보이는 테이스팅 매트. 시음주들의 숙성 캐스크와 그에 따른 풍미가 이미지와 함께 제시되어 있는 게 상당히 좋았다. 그 아래 테이스팅 노트를 간단히 적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놓았다.
뒷면에는 테이스팅 순서와 함께 위스키 아로마 휠이 있다.
어찌 보면 표현을 제약하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가이드라도 없으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애매한 경우도 있으니까. 특히 입문자라면 위스키에서 이런 향이 날 수 있다는 참고용으로 자세히 살펴볼 만하다.
메인인 위스키 미니어처 3개. 라인업이 좀 특이한 게 10년, 12년, 18년이다. 보통 3개면 12, 15, 18년으로 구성하는 게 일반적인데. 나중에 시음회에서 들은 얘기인데, 아직 10년은 공식 수입되지 않았고, 이번 시음회에서 반응을 보고 수입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라고 한다. 50ml라 용량은 넉넉하다.
그 옆에는 안주용 피칸.
그리고 부샤르 캐러멜 씨 솔트 초콜릿이 함께 들어 있다. 제법 신경 써서 준비한 느낌.
위스키 글라스도 세 개 들어있다.
글렌고인 로고도 똭! 전용잔 성애자들 중 좋아할 사람들 많을 것 같다.
사이즈와 모양은 전형적인 셰리용 코피타(copita) 글라스.
메이드 인 차이나인 게 조금 아쉽다. 실제로도 기포나 흠집 등이 좀 있어서 디테일이 아쉬웠고, 베이스가 좀 작아서 안정감이 떨어진다. 한 번 시음용으로 사용하기엔 충분했지만...
요렇게 세워놓고 시음 준비 완료!
...였지만, 저녁 식사 준비를 해야 해서 급하게 장소를 방으로 옮겼다ㅋㅋㅋㅋ
그리고 미리 위스키를 따라 놓고 에어레이션을 하며 시음회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피어오르는 향긋한 위스키 향기 때문에 더 이상 참기 어려워지려는 순간 시음회가 시작됐다능ㅋㅋㅋㅋ
말술남녀 진행자 5인의 인사와 오프닝이 끝나고, 우선 글렌고인을 소개하는 동영상 시청.
글렌고인(GlenGoyne) 증류소는 19세기 초반부터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덤고인(Dumgoyne)에서 밀주를 생산하다가 1823년 주세법 개정으로 합법적인 영리를 추구할 수 있게 되면서 1833년 번풋(Burnfoot) 증류소라는 이름으로 공식 설립되었다. 이후 1876년 랭 브라더스(Lang brothers)가 증류소를 사들이고 이름을 변경했는데, 이때 착오로 인해 이름이 글렌귄(Glenguin)으로 잘못 표기되는 바람에 한동안 글렌귄으로 불리다가 1907년에야 오늘날의 이름인 글렌고인이 되었다. 현재는 100% 가족 소유 기업인 이언 맥클라우드 디스틸러스(Ian Macleod Distillers Ltd)가 소유하고 있다.
글렌고인이 위치한 계곡의 경치는 정말 빼어나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증류소'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은 정도라고. 실제 증류소 방문객도 년 70만 명이나 된다고 하니, 관광 명소로서도 확실히 자리 잡은 듯. 대도시인 글래스고에서 차로 3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주말 나들이 장소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고인은 기러기라는 뜻으로 글렌고인은 '기러기 계곡'이라는 의미가 된다. 증류소의 바로 앞에 있는 길이 하이랜드와 로우랜드의 경계인데, 증류소는 하이랜드에 저장고는 로우랜드에 속한다고. 그래서 미드랜드(Midland) 위스키라는 농담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실제로 글렌고인은 분류상 하이랜드 위스키이지만 로우랜드 위스키의 깔끔하고 경쾌한 특징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한다.
글렌고인의 특징은 앞서 말한 피트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바람으로만 건조하여 몰트 본연의 맛을 이끌어낸다는 것 외에도 서두르지 않는 양조 및 증류방식을 꼽을 수 있다. 최소 52시간에서 최대 110시간까지 느리게 발효한 워시(wash)를 1개의 커다란 워시 스틸과 2개의 작은 스피릿 스틸에서 2번에 걸쳐 증류하는데, 최대 가열 온도는 섭씨 78도를 넘지 않는다.
섭씨 78도는 알코올이 기화하기 시작하는 온도다. 온도를 낮게 유지하면 증류 시간은 당연히 길어지는데, 다른 증류소는 1분당 평균 15리터의 증류 원액을 얻는 데 비해 글렌고인은 1/3인 5리터 정도밖에 얻지 못한다고 한다. 이렇게 증류 시간이 길어지면 스피릿 자체에서도 가볍고 정제된 요소들만 얻을 수 있을뿐더러 증류기의 구리와의 접촉 시간도 길어짐에 따라 황 냄새 등 잡내가 거의 다 제거되어 더욱 순수한 원액을 얻을 수 있다.
글렌고인 위스키 레이블에도 'Unhurried Since 1833'이라는 문구로 이런 특징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고 있다.
글렌고인에서는 퍼스트 필 셰리 오크와 세심하게 선별 및 관리한 리필 캐스크를 사용해 위스키를 숙성한다.
드디어 시음 시간.
GlenGoyne aged 10 years Highland Single Malt Scotch Whisky
글렌고인 10년 숙성 하이랜드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맑고 투명한 골드 컬러. 은은한 바닐라와 달콤한 스파이스 힌트, 은은한 청사과, 노란 과일과 시트러스 풍미. 달콤함, 신선함, 산뜻함, 가벼움 등의 키워드가 떠오른다. 처음 입에 닿는 순간부터 목 넘김 후에 이르기까지 부드럽고 편안한 스타일이라 2-3명 모이면 가벼운 안주만 있어도 쉽게 완병이 가능할 것 같은 스타일이다.
숙성에는 퍼스트 필 유러피안 셰리 캐스크(1st fill European sherry casks)와 퍼스트 필 아메리칸 셰리 캐스크(1st fill American sherry casks)를 각 15% 사용하고, 나머지 70%는 리필 캐스크(hand selected quality oak casks)를 사용했다. 공식적인 테이스팅 노트는 막 자른 풀, 그린 애플, 토피, 팝콘, 브라질 넛, 소프트 오크, 감초.
GlenGoyne aged 12 years Highland Single Malt Scotch Whisky
글렌고인 12년 숙성 하이랜드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10년보다는 조금 더 짙은 골드 컬러. 역시 달콤한 바닐라와 상큼한 레몬 시트러스, 사과 아로마가 대세를 형성하지만 조금 더 톡 쏘는 스파이스가 있고, 노란 과일 풍미 또한 조금 더 완숙하고 밀도 높은 느낌. 특히 차이가 나는 것은 입안에서의 질감인데, 역시 가볍긴 하지만 조금 더 무게감이 느껴지며 약간의 꿀 뉘앙스 또한 감도는 것 같다.
퍼스트 필 유러피안 셰리 오크와 퍼스트 필 아메리칸 오크를 각 20% 사용하고, 나머지 60%는 리필 캐스크를 사용했다. 공식 테이스팅 노트는 토피, 애플, 바닐라, 코코넛, 숏브래드, 셰리 힌트, 레몬 제스트, 생강.
그냥 슥- 보면 컬러 차이를 잘 못 느끼지만 비교해서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12년 쪽이 조금 더 짙은 옐로 골드 컬러.
GlenGoyne aged 18 years Highland Single Malt Scotch Whisky
글렌고인 18년 숙성 하이랜드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일단 컬러부터 이전 위스키들과는 톤이 다른 브라운 앰버 컬러. 코를 대면 의외의 구운 고기 같은 스모키함과 자키자키 같은 구수함이 감돈다. 여기에 시나몬 스틱 같은 부드럽고 달콤하며 따뜻한 스파이스와 약간 와인 같은 풍미가 더해지니 이건 크리스마스에 즐기기 좋은 겨울용 위스키 같은 느낌이다. 전반적으로 구수하고 복합적인 인상.
숙성에는 퍼스트 필 유러피안 셰리 오크를 35%, 퍼스트 필 아메리칸 오크를 15% 사용하고, 나머지 50%는 리필 캐스크를 사용했다. 공식적인 테이스팅 노트는 브라운 슈가, 레드 애플, 마지팬, 잘 익은 멜론, 코코아, 마말레이드, 웜 스파이스.
시음이 끝날 때쯤엔 말술남녀 팀들은 제법 취해서 신나는 분위기가 되어 있었는데... 사진을 못 찍었네^^;; 조만간 유튜브 채널에 동영상이 올라올 것 같으니, 글렌고인을 마실 때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총평을 남기자면 글렌고인은 그들이 지향하는 잡미 없이 순수하고 지나치게 무겁지 않은 스타일을 잘 구현한 위스키다. 일단 술술 넘어가는 게 음용성이 너무나 뛰어나다. 커뮤니케이션만 잘 한다면 유통이 강한 롯데칠성에서 수입하는 만큼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강세를 보일 만한 위스키.
게다가 수익의 일부는 WWT(Wildlife and Wetlands Trust)에 기부해 그들의 상징인 기러기를 지키는 일을 돕고 있다. 모든 포장지는 재활용품만으로 제작해 환경 오염도 최소화하고 있다고. 환경을 생각하며 슬로 라이프를 지향하는 위스키라니, 철학이 넘나 맘에 드는 것... 앞으로 또 만날 기회가 생기길.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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