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칵테일을 만들려니 대학 시절이 떠오른다. 뭔지도 모르는 칵테일을 마시겠다고 학교 근처의 바에 들어가면, 코팅된 메뉴판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칵테일, 오르가슴(Orgasm). 섹스 온 더 비치(Sex on the Beach)와 함께 야한(?) 칵테일의 대명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데, 그땐 이런 거 가지고 엄청 낄낄댔었지.
요 사이트에서 오르가슴 칵테일의 다양한 버전들을 소개하고 있다. 과거에는 오르가즘 칵테일이 IBA 공식 칵테일일 때도 있었는데, 2011년 삭제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애매한 이름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런데 IBA 공식 레시피는 디사론노와 칼루아 대신 그랑 마니에르(Grand Marnier)와 쿠엥트로(Cointreau)를 쓰는데, 이렇게 되면 B-52 칵테일 레시피와 상당히 유사해진다. 온 더 락으로 낸다는 것만 다를 뿐. 보드카를 추가하는 스크리밍 오르가슴(Screaming)이라는 버전도 있는데, 크림이나 우유 등을 추가해서 롱 드링크 형태로 내기도 하는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얼음을 넣은 온 더 락 잔에 칼루아(Kahlua), 베일리스(Bailly's), 디사론노(Disaronno)를 각각 1 파트씩 넣는 가장 표준적인 레시피를 사용했다. 레시피만 봐도 얼마나 들큼할지... 하지만 이 칵테일을 만들기로 결심한 데는, 세 가지 재료가 내가 가장 사용하지 않는 리큐르들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나 생사를 확인해야지 언제 또 확인하겠노.
디사론노 뚜껑에 먼지 앉은 것만 봐도-_-
잔은 최근에 새로 구입한 루이지 보르미올리(Luigi Bormioli) 글라스를 사용했다. 그런데 사진 초점이 리큐르에 맞았네;;;
아래쪽의 자잘한 커팅이 참 고급스럽게 들어갔다. 반짝이는 액체를 채우면 정말 예쁠 듯.
크림 리큐르인 베일리스가 혹시 상하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멀쩡해 보인다.
베일리스, 칼루아, 디사론노를 차례로 투입. 일부러 베일리스를 가장 먼저 넣었는데도 맨 아래엔 깔루아가 있다. 중간에는 디사론노가 떠다니고 있고. 할 수 없이 바 스푼을 꺼내 휘휘 저어준다.
완성. 햐... 만들 때부터 달다 달아. 그런데 알코올 향도 제법 치고 올라온다. 그래, 알코올 도수가 그래도 소주보다는 훨씬 높으니까. 입에 넣으니 크리미 한 질감을 타고 달콤한 살구 향과 커피 뉘앙스가 오묘하게 어우러진다. 문제는 목 넘김 이후까지 진한 단맛이 끈적하게 이어진다는 것. 으... 이거 달아도 넘나 달다. 상큼함이 배제된 단맛이라니, 참기 어려운 느낌.
요 칵테일이 왜 오르가슴일까. 뭔가 짜릿하기보다는 마시면 마실 수록 질리는 느낌이라 힘들기만 한데. 아, 오르가슴이라는 게 원래 반복될수록 느끼기 어려운 것이라 그럴까? 그런 의미라면 인정...
디사론노야 가끔 갓 파더와 프렌치 커넥션, 플레이밍 닥터 페퍼 같은 거에 사용한다 쳐도, 줄어들지 않는 칼루아와 베일리스는 어쩔....ㅠㅠ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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