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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음주/와인

쉽고 맛있는 가정식 술안주, 포테(potée)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2. 1. 1.

후배 집에서 맛있게 먹었던 와인 안주, 포테(potée). 뽀떼, 혹은 포떼, 뽀테... 표기는 내키는 대로 하는 것 같은데, 어쨌거나 돼지고기와 야채를 함께 넣어 끓인 프랑스의 가정식 스튜다. 재료를 다 때려 넣고 약불에 끌이기만 하면 되는데 그에 비해 맛은 상당히 좋기 때문에 집들이용 음식으로도 많이 사랑받는 듯. 일단 한 냄비 올려놓고 다른 음식을 준비하기도 수월하니까.

 

하지만 만드는 시간은 1시간 이상 소요되기 때문에 일찌감치 준비를 해 두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작은 감자 네 개(큰 감자면 두 개), 작은 당근 하나, 양배추 반 통 정도. 양배추가 맛의 핵심이기 때문에 넉넉히 사용하는 게 좋다.

 

소금 후추만으로 만드는 사람도 많은 것 같지만, 일단 집에 있는 향신료 몇 가지를 더 써 보았다. 바질은 다 만들고 나서 살짝만 뿌려주었고, 오레가노와 크러쉬드 레드 페퍼, 적후추는 끓일 때 넣어주었다. 소금과 후추는 고기를 15분 정도 전에 미리 마리네이드 해 두는 용도로 사용했다.

 

동물성 재료 등장. 도이칠란드 박의 킬바사를 두 개 사용했는데, 하나는 매운맛 나머지는 기본 맛.

 

고기는 보통 삼겹살을 쓰는 것 같은데, 집에 에어 프라이어 용 오겹살이 있어서 그걸 썼다. 기름이 좀 많아 보이지만 고기 요리는 기름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많은 게 나으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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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는 크게 깍둑썰기를 했다. 검색해 보니 넓적하게 써는 것보다는 깍둑썰기가 좋다고. 당근은 그냥 적당하게 1센티가 살짝 안 되는 두께로 썰어주었다.

 

일단 솥 바닥에 감자와 당근을 깔고,

 

킬바사 소시지를 넣어준다. 그리고 오레가노와 페페론치노, 레드 페퍼 적당량과 다진 마늘을 1스푼 정도 넣어 주었다.

 

그 위에 소금 후추를 뿌려 준 돼지고기를 얹고 물을 500ml 정도 부어준 후,

 

큼직하게 썬 양배추를 쌓는다. 양배추는 정말 최대한 많이 쌓는 것이 좋다. 그리고 중불로 가열하다가 물이 끓기 시작하면 약불로 줄여서 1시간 이상 끓여주면 된다. 1시간이면 보통 먹을만하게 익으며, 좀 더 부드럽게 먹고 싶다면 적당히 시간을 조절하면 된다. 보통 90분 이상 끓이면 감자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고 들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감자가 살아있는 게 좋으니 1시간 정도만 끓였다.

 

30분을 넘어서니 양배추가 익은 게 눈에 보인다. 

 

50분 넘어서 양배추를 살짝 들춰 보니 고기도 웬만큼 익었다. 그런데 양배추가 넘나 허물어지는 것 같아서 불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딱 1시간만 익혔다. 그런데 집에 적당한 사이즈의 무쇠솥이 없어서 일반 스텐 냄비에 끓였더니 먹기가 영 번거롭다. 어른들만 있으면 모르겠는데, 애들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접시에 썰어서 수육처럼 내기로 했다. 

 

와우, 고기 야들야들하게 익은 것 좀 보소. 자르다 보니 고깃결이 쭉쭉 찢긴다.

 

소지지와 양배추, 감자도 함께. 다 썰어낸 후에 촉촉함을 잃지 않도록 위에 양배추를 좀 덮어 줬다. 육즙이 촉촉하게 배어 있는 양배추와 감자에 고기와 소시지를 곁들여 먹으니 진짜 술도둑이다. 맛이 담백해서 술의 풍미를 가리지 않으면서도 아주 잘 어울린달까. 와인 안주뿐만 아니라 맥주나 위스키, 소주, 바이주 안주로도 좋을 듯.

 

와인도 한 잔 곁들였다. 마쎄리아 팔보 1727 그라네타(Masseria Falvo 1727 Graneta).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 지역에서 토착 품종으로 만드는 풀 바디 레드 와인이다. 4일 전에 마시다가 막아 놓은 녀석인데 아직도 쌩쌩하다.

 

마쎄리아 팔보 1727은 에르마노 & 피에르 지오르지오 팔보(Ermanno & Pier Giorgio Falvo) 형제가 2001년 설립한 와이너리다. 와이너리 건물은 1727년 건립한 유서 깊은 저택으로, 칼라브리아 북부 폴리노 산(Monte Pollino) 남동쪽에 위치한 사라체나(Saracena) 마을에 있다. 그들은 칼라브리아의 와인 양조 전통을 지키며 다양한 토착 품종을 사용해 와인을 만들고 있다. 조상 대대로 한 번도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한 포도밭에서 간섭을 최소화한 자연스러운 양조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며, 무수아황산 사용 또한 최소화한다. 내추럴 와인이 주목받기 이전부터 내추럴한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폴리노 산기슭에 자리 잡은 26ha 포도밭에서 말리오코(Magliocco), 과르나차(Guarnaccia) 등 다양한 토착 품종을 재배한다. 점토, 석회석, 화산토, 철분이 많은 비옥토 등 다양한 토양이 섞여 있기 때문에 품종 별로 적합한 테루아를 선택할 수 있다. 300년이 넘은 와이너리 안에는 첨단 설비와 다양한 숙성용 통들이 가득하다. 이는 품종 특성과 지역의 스타일을 고스란히 와인에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와인 양조 및 숙성 시 인위적인 개입은 최소화한다. 

 

Masseria Falvo 1727, Graneta 2012 Terre di Cosenza Riserva DOC
마쎄리아 팔보 1727 그라네타 2012 테레 디 콘센자 리제르바 DOC

보랏빛 감도는 짙은 루비 컬러. 와일드한 야생화와 완숙한 검은 과일 풍미가 마른 허브, 이국적인 스파이스 뉘앙스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10년이 지났는데도 촘촘한 타닌이 완연히 느껴지, 적지 않은 산미와 알코올과 어우러져 탄탄한 구조를 형성한다

완숙 정도와 바디감은 다르지만, 왠지 이태리 북동부의 토착 품종과 유사한 인상을 느낀 게 참 특이하다. 어쨌거나 10년이 지났는데도 이런 포스라니... 대단한 와인이다. 짙은 소스를 곁들인 메인 요리나 모둠 바비큐와 즐겨도 절대 밀리지 않을 듯.

폴리노 산기슭의 모래질 토양에서 재배해 손 수확한 말리오코 품종을 100% 사용해 온도 조절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긴 시간 침용해 컬러와 풍미를 충분히 뽑아낸 후 발효한다. 이후 프렌치 오크 토노(tonneaux)에서 6개월,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12개월, 병입 후 6개월 이상 숙성해 출시한다. 단단한 구조를 가진 와인으로 지금부터 10년은 더 숙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말리오코 품종은 말리오코 돌체(Magliocco Dolce)라고도 부르며, 오직 칼라브리아(Calabria) 지방에서만 재배한다만생종으로 껍질이 두껍고 타닌이 풍부해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질감의 풀바디 와인을 만들 수 있다. 과거에는 다른 토착 품종들과 필드 블렌딩으로 재배하는 경우가 많아 갈리오포(Gaglioppo), 네렐로 마스칼레제(Nerello Mascalese) 등과 혼동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유전자 검사 결과 관계없는 품종으로 확인됐다.

 

갑분 와인 포스팅이 되었지만, 결론은 버킹검 포테 맛있다는 거. 술안주로 최고라는 거. 한여름에는 잘 모르겠지만 찬바람 부는 봄, 가을, 겨울에는 자주 해 먹을 것 같다. 쉽고 맛있고 술과 잘 어울리는 세 가지 미덕을 고루 갖추었으니.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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