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마시고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합니다.

wine·whisky·cocktail·beer

고냥의 취향/음식점

아지트가 되어가는 오마카세 스시야, 스시이젠(鮨 いぜん)

개인 척한 고냥이 2022. 6. 10. 13:00
728x90

만화 <바텐더>에서 그랬던가. 손님은 한 번만 와도 자기를 알아봐 주길 바라고, 두 번 이상 방문하면 단골이라고 생각한다고. 내가 딱 그런 상황ㅋㅋㅋ 두 번째 방문했지만 이젠 단골이 된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이다. 다음 방문 일정도 미리 잡아놨고 ㅎㅎㅎ

 

 

용산 오마카세 스시야, 스시이젠(鮨 いぜん)

용산역과 신용산역 사이에 위치한 오마카세 스시야 스시이젠(鮨 いぜん). 래미안 용산 더 센트럴 지하에 숨어있지만, 인기가 많아 이미 5월까지도 예약이 꽤 많이 차 있다고 한다. 난 회사 근처

wineys.tistory.com

한마디로 음식도, 조용하고 독립된  분위기도, 옆자리의 다른 손님들조차 두루 만족스러운 스시야랄까. 

 

시작.

 

사실 오늘은 모임 멤버들이 각자 구매한 도멘 로베르 드노정(Domaine Robert Denogent)의 두 와인을 비교해서 마시기로 한 자리였다.

오래전 마셔 보고 빅 팬이 된 로베르 드노정. 이름만 보면 도멘 설립자가 로베르 드노정인 것 같지만, 사실은 클로드 드노정(Claude Denogent)이 1922년 설립한 도멘이다. 그의 딸이 로베르 씨와 결혼하면서 도멘의 이름이 로베르 드노정이 되었고, 1988년 그들의 아들 장 자크(Jean-Jacques)가 대를 이었다. 현재는 장 자크의 아들인 니콜라(Nicolas)와 앙투완(Antoine)이 물려받은 듯. 

로베르 드노정은 간섭을 최소화해 테루아를 드러내는 와인을 추구하는데, 병입 전에 첨가하는 약간의 이산화황 외에는 어떤 첨가물도 사용하지 않는다. 양조 전에는 산소 접촉을 차단하지 않아 페놀 성분을 산화시켜 와인을 안정화한다고. 숙성은 재사용 오크에서 장기간 진행하는 대신 바토나주(batonnage)를 하지 않아 구조감을 살리면서도 오크 뉘앙스는 과하지 않고 과일의 신선함 또한 살린다. 니콜라와 앙투안 대에 이르러서는 비오디나미(Biodynamie) 농법도 도입했으며, 지구 온난화에 따라 수확 시기를 앞당겨 신선하면서도 섬세한 와인을 만들고 있다. 

 

장어 마끼로 스타트. 식감이 사랑스럽다. 계란 노른자 소스가 신의 한 수. 

 

전복.

 

먹고 마시느라 바빠서 참돔 사시미는 두 점 먹고 나서 찍었다. 여기 오면 진짜 정줄 놓게 됨.

 

Domaine Robert Denogent, Saint Veran Vieilles Vignes 'Les Pommards' 2018

처음 향을 맡았을 때 뭔가 자연스러운(?!) 느낌이 난다 했는데, 생산자에 대해 검색해 보니 왜 그런지 감이 온다. 상큼한 신맛이 깔끔한 첫인상을 선사하며, 시간이 갈수록 완숙 핵과를 넘어 열대 과일 같은 잘 익은 과일 풍미가 드러난다. 그렇다고 구조까지 마구 풀어지는 느낌은 아니며, 섬세한 풍미가 부드러운 텍스쳐와 시트러스 산미를 타고 매력적으로 드러나는 느낌. 역시 훌륭한 와인이다.

 

2018 빈티지인데 23개월 동안 숙성해 2020년 8월 19일에 병입했다. 어떤 개입도 하지 않고 효모 첨가 없이 올드 배럴과 드미-뮈(demi-muid, 600L)에서 숙성해 여과 없이 병입했다. 다바예(Davayé)의 점토와 이회토가 섞인 석회질 토양의 0.75ha 포도밭에 식재된 40년 수령의 포도밭의 샤르도네(Chardonnay)로 양조.

 

와인 참 좋다... 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 자리에서 사케가 날아왔다.

이, 이것은.... 주욘다이(十四代)!! 한창 사케에 빠져 있을 때 이름만 들어 본 지자케다. 당시 일본 여행 다녀오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구해 보려 했지만, 시중에서는 쉽게 보이질 않아 구입에 실패했었던... 게다가 레이블의 있어빌리티가 상당해여서 검색해 보니, 주욘다이 중에도 상급 라인업인 모양. 이런 술을 듬뿍 나눠주신 옆 테이블 손님들은 도대체 어떤 분들인가... ㄷㄷㄷ 감사합니다!!!

쥬욘다이는 일본 사케 중에서 독보적 1위로 꼽히는 브랜드다. 일본 동북부 야마가타현(山形県)에서 1615년에 창업한 타카기슈조(高木酒造)에서 만든다. 원래 이 양조장에서는 아사히타카(朝日鷹)라는 사케를 제조하고 있었는데, 14대 타카기 타츠고로(高木辰五郎)가 본인이 가업을 물려받은 주욘다이(14대)를 상표로 등록한 것이다. 하지만 주욘다이를 성장시킨 사람은 15대인 타카기 아키츠나(高木顕統)다. 그는 도쿄농업대학 양조학과를 졸업하고 대형 백화점의 사케 판매점을 맡아서 일을 하며 사람들이 어떤 술을 찾는지 경험을 쌓고 있었는데, 25세 때 양조장 토우지가 갑자기 은퇴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가업을 잇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쌀을 씻는 공정을 초단위로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사진작가와 협업해 본인의 사케 양조 모습을 찍어 잡지에 내는 등 마케팅에도 능했다고. (@yoo_sazzo 인스타그램에서 퍼옴)

술 이름은 쥬욘다이 준마이다이긴죠 하쿠츠루니시키 벳센(十四代 純米大吟醸 白鶴錦 別撰). 하쿠츠루니시키가 주조호적미 이름인 것 같은데 처음 들어본다. 검색해 보니 2007년 야마다니시키(山田錦) 품종의 부모 품종인 야마다보(山田穂)와 와타리부네(渡船)를 교배시켜서 만든 품종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야마다니시키의 어린 형제 품종인 셈. 

맛을 보니 일단 주질이 너무나 섬세하고 부드럽다. 좋은 술은 주질부터가 다른데, 이 사케가 딱 그런 느낌. 입에 머금었을 때의 향긋함이 이루 말할 수 없고, 단맛이 제법 감도는 느낌인데 밸런스가 좋아서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너무나도 복합적이면서도 조화롭고 온화한 사케. 내가 딱 좋아하는 사케인데... 좀 자세히 느낌을 적어놓을 걸 그랬나 보다.

 

참치 뱃살과 해수 우니. 맛있졍~

 

북방조개. 긍정적인 의미에서 오징어 같은 진한 감칠맛이 쫄깃한 식감에 잘 담겨 있다.

 

활전갱이. 2~3 젓가락에 나누어서 술안주로 먹기에 딱 좋았다.

 

Domaine Robert Denogent, Pouilly-Fuisse Vieliles Vignes 'Les Cras' Cuvee Claude Denogent 2018

설립자이자 현재 운영자들의 할아버지 클로드 드노장에게 헌정하는 퀴베. 놀랍게도 앞서 마신 Saint Veran 'Les Pommards'와는 완전히 다른 타입이다. 확연하게 도드라지는 연기 미네랄에 아주 은은한 그린 허브, 흰 꽃 향기와 백도, 오렌지, 자몽 같은 신맛이 매력적으로 어우러진다. 시간이 갈수록 달콤한 파인애플 같은 노란 과일 풍미가 강해지지만, 기본적으로 선이 얇으면서도 명확한 구조를 지닌 와인이다.

개인적으로 아주 선호하는 스타일의 화이트. 하지만 동행한 2인은 모두 생 베랑 쪽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것이 바로 취향 차이고 와인이 흥미로운 부분.

 

역시  23개월 숙성해 2020년 8월 18일 병입. 어떤 개입도 하지 않고 효모 첨가 없이 올드 배럴과 드미-뮈, 그리고 계란형 탱크(cuve ovoïde de Béton)에서 숙성해 여과 없이 병입했다. 백악질 석회석 토양에서 생성된 자갈 섞인 갈색 점토질 토양의 레 크라 포도밭에 식재된 80년 수령 포도밭의 샤르도네(Chardonnay)로 양조. 80년 수령이면 할아버지 때 심은 나무란 얘긴데, 그래서 할아버지께 헌정하는 퀴베가 되었나 보다.

 

도가니. 중간 해장용으로 딱이다.

 

참돔 뱃살.

 

요건 이름을 까먹었.... 줄무늬 전갱이?

 

시소를 더해서 다소 심심한 한치의 풍미를 업그레이드했다.

 

관자가 살살 녹는데도 탱글하니 씹는 맛이 있는 아이러니.

 

참치 아까미.

 

참치 뱃살.

 

그리고 옆 테이블에서 다시 고오급 사케가 넘어왔다.

하나아비 준마이다이긴죠 야마다니시키 빈카코이 무로카나마겐슈(花陽浴 純米大吟醸 山田錦 瓶囲 無濾過生原酒). 이름부터 어마무시하다. 하나아비는 도쿄도 바로 북쪽 사이타마현(埼玉県)에 위치한 양조장으로 주욘다이에 뒤지지 않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검색해 보니 가격도 상당하다;;; 귀인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그런데 이 녀석은 달콤한 노란 과일 풍미가 밝고 화사하게 드러나는 것이 왠지 바이주를 연상시킨다. 물론 입안에서는 드라이한 입맛에 깔끔한 피니시, 균형 잡힌 미감으로 알코올이 전혀 튀지 않는다. 어쨌거나 주욘다이 벳센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 아주 맛있는 사케이지만 나는 이미 주욘다이 벳센에 마음을 빼앗긴 터라. ㅎㅎㅎ

 

무로카나마겐슈(無濾過生原酒)는 여과 및 열처리를 하지 않은 생주라는 뜻. 빈카코이(瓶囲)는 처음 들어봤는데 1.8L짜리 커다란 병에 숙성 및 저장해 놓는 방식을 뜻한다고. 뭔가 매그넘에 숙성한 와인처럼 좀 더 천천히 균형 잡힌 형태로 숙성이 되는 걸까.

 

그리고 또 한 병, 와카나미 준마이다이긴죠 야마다니시키(若波 純米大吟醸 山田錦), 요건 닷사이와 하나아비의 중간 정도 타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정도 화려하면서도 확 퍼지는 느낌 없이 차분하다. 앞의 두 사케에 비해 주질은 조금 아쉬웠지만, 이날의 스시 코스와 함께 즐기기엔 두 번째 사케보다는 개인 취향에 잘 맞았다. 

 

앞의 두 병은 직구를 하신 거라고 들었는데, 이번 병은 백 레이블이 붙어 있다. 아, 스시이젠에서 구매하신 건지도. 와카나미는 후쿠오카현(福岡県)에 위치한 양조장으로 규슈 최초의 여성 토우지 이마무라 유카(今村友香)가 이끌고 있다. 양조장은 1922년 설립했고 그녀는 양조장의 3대인데, 여자들의 양조장 출입을 꺼리는 옛날의 정서 상 어릴 때부터 양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고. 교토에서 대학을 나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는데 2001년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되며 1년만 양조장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사케 양조에 빠져 2006년 규슈 최초의 여성 토우지가 되었고, 현재는 젊은 스텝들과 함께 사케의 혁신을 주도하는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와, 이 고급진 사케를 아낌없이 나누어주신 옆 테이블에 진심으로 감사를. 우리가 준비한 와인도 맛 보여 드리긴 했지만... 다음번에 또 만날 때는(?!) 더 좋은 와인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행인 1의 최애 픽 새우튀김. 진으로 맛있다.

 

전갱이. 

 

아마에비.

 

금태. 취저.

 

결국이 아니라 당연히 샴팡 한 병이 더 나왔다.

 

Champagne Henri Giraud, Esprit Brut NV

놀랍게도 앙리 지로를 처음 마셔 본다. 기회는 몇 번 있었는데 이상하게 다른 것에 밀려 구매를 안 하거나, 망설이다가 못 사거나 등등... 은근한 미네랄리티와 너무 구수하지 않은 단정한 이스트, 흰 꽃. 입에 넣으면 시원한 배와 왠지 보리수가 연상되는 맛이다. 주질이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기회 될 때마다 마시고 싶다.

 

포도밭에 살충제나 제초제 등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이산화황 사용도 최소화한다. 양조 시에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하지 않고 작은 오크 배럴만 사용한다고. 

앙리 지로는 로버트 파커, 잰시스 로빈슨 등 여러 와인 전문가들이 최고의 샴페인 하우스 중 하나로 손꼽는 생산자다. 상급 뀌베들은 내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라 아니라 아쉽다. 그나마 잘 보이지도 않아서 살 기회 자체가 거의 없긴 하다. 다행인가? 

 

소면.

 

우나기.

 

안주로 참돔회를 더 내어주셨다. 이미 배가 터질 상황이지만 술술 잘도 들어간다.

 

오늘의 원픽은 주욘다이 벳센. 이건 정말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은 술이다. 일본에 갈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가게 되면 이걸 찾아서 사 와야 할 듯.

언제나 즐거운 자리. 술 얘기도 공장 얘기도 사는 얘기도 술이 들어가는 만큼 잘도 나온다. 이미 다음 예약 완료.

 

20220607 @ 스시이젠(용산)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