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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음주/와인

블라인드로 마신 부르고뉴 와인 3종 @끌리마(Climat)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2. 8. 7.

지난 부산 방문 때 끌리마에서 마신 와인들. 모두 블라인드로 제공되어 삽질에 삽질을 반복해야만 했다. 사실상 내 역량을 벗어나는 와인들이었지만, 기억을 위해 간단히 메모.

 

광안대교 남단 복합와인문화공간, 끌리마(Climat)

부산 핫 플레이스 광안대교 남단 W스퀘어에 위치한 와인샵, 끌리마(Climat). 이승훈-이수정 소믈리에 부부가 운영하는 복합와인문화공간이다. 일반 와인샵처럼 와인을 구매할 수도 있고, 구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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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잔. 일단 컬러부터 피노 누아일 가능성이 넘나 높아 보인다. 하지만 나는 여지없이 삽질을 했지. 뭔가 모를 단단한 인상이 살짝 rustic 하게 느껴졌는지 갑자기 쥐라(Jura)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 품종조차 혹시 피노가 아닌 건 아닌가 싶었다.

답은...

Fanny Sabre, Morey-Saint-Denis 2008

페일 가넷 컬러에 오렌지 림이 제법 넓게 드러난다. 빈티지는 10년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오래된 오크 뉘앙스에 낙엽, 부엽토, 스위트 스파이스, 말린 토마토에 새콤한 작은 붉은 베리 풍미가 제법 밀도 높게 드러난다. 가벼운 떫은맛에 피 같은 철분 뉘앙스가 살짝 드러난다. 산미만큼은 섬세하고 명확하게 드러나며 길게 이어져 뛰어난 생산자가 제법 잘 만든 와인임을 짐작케 했다. 여기까지가 레이블 공개 전까지의 인상인데... 뭔가 풍미가 확 드러나지 않고 살짝 거친 느낌까지 받아서는 꼬뜨 드 뉘의 빌라주 급 와인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 것.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고혹적인 꽃향이 향긋하게  피어나며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매력이 물씬 드러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또 감초 같은 뉘앙스에 얼시함이...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Fanny Sabre, Bourgogne Blanc 2016 / 파니 사브르 부르고뉴 블랑 2016

주말 오후의 음주 준비. 더운데 시원한 음식들로 가볍게 먹고 싶어서. 미니 살루미, 호두와 함께 준비한 치즈는 브리야 사바랭(Brillat-Savarin). 미식가의 이름이 붙은 트리플 크림 치즈의 대표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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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부르고뉴 블랑을 마실 때도 마실 때마다 변화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었던 기억이 났다. 이런 와인은 퍼마시는 자리에서 마시면 안 된다. 와인이 주제가 되는 곳에서 마셔야지.

도멘 파니 사브흐(Domaine Fanny Sabre)는 여성 와인메이커 파니 사브흐가 뽀마르(Pommard)에 설립한 도멘이다. 도멘을 시작하기 전 필립 파칼레(Philipe Pacalet)와 함께 일하며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배양 효모를 사용하지 않는 등 자연주의적 농법/양조법을 적용한다. 포도밭을 잘 관리해서 땅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두며, 매년의 기후 조건에 맞게 일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비오디나미 농법을 적용하는데, 최근에는 좀 더 내추럴한 양조법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것 자체가 기본 철학은 아니라고. 단지 마셨을 때 몸이 편안하고, 소비자들이 메이커 자신이 추구한 바를 느낄 수 있도록 언제 어디서 마셔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한다. 

도멘이 추구하는 와인은 미네랄의 순수함과 과일의 신선함이 길게 이어지는 은은하고 우아한 스타일이다. 화이트 와인은 올드 배럴에서 발효하며, 레드는 우드 또는 콘크리트 통에서 세미 카르보닉 마세라시옹을 진행한다. 모든 와인은 올드 배럴에서 최소 12개월 이상 숙성한 다음 병입 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 각각의 배럴을 블랜딩해 3-4개월 안정화한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병입하며, 정제와 여과는 하지 않는다. SO2는 극소량만 사용한다.

 

두 번째 와인은 무려 1988년 보틀. 88올림픽 빈티지의 부르고뉴 피노 누아를 만나게 될 줄이야...

요건 꼬뜨 드 본의 빌라주 급 피노 누아라고 답했다. 마을은 당근 특정 못함;;;.. 빈티지는 오래된 것 같긴 했는데 설마 88빈일지는 몰랐다. 2000년 전후의 것이 아닐까 했었음.

 

Maison Roche de Bellene, Chambolle-Musigny Premier Cru 'Derriere la Grange' 1988

비교적 짙은 가넷 컬러에 페일 림이 살짝 비친다. 피칸 파이 같은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토스티함에 검은 체리 풍미가 잘 살아있다. 세이버리한 토양 뉘앙스와 감초, 스위트 스파이스와 허브, 풍미가 깐깐하고 촘촘한 타닌과 만나니 책으로 부르고뉴를 배운 나는 꼬뜨 드 본의 레드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내공 깊은 후배의 말을 들어보니 오래 전의 샹볼 뮈지니는 상당히 터프한 면이 있었다고. <신의 물방울> 때문에 자꾸 '꽃밭에서 과일바구니를 든 여인이 뒤를 돌아보는...' 같은 연상을 하게 되지만 의외의 면이 있었다는 거다. 

 

로쉬 드 벨렌(Maison Roche de Bellene)은 올드 바인(vieilles vignes)에 비오디나미 농법을 적용해 빼어난 와인을 만드는 니꼴라 뽀뗄(Nicolas Potel)이 2008년 설립한 메종이다. 원래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메종 니꼴라 뽀뗄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2005년 라부레 루아(Labouré-Roi)를 보유한 코탱 프레르(Cottin Freres)에 매각했다. 비슷한 시기 그는 도멘 드 벨렌(Domaine de Bellene)을 설립하고 3년 후 다시 로쉬 드 벨렌을 설립한 것.

그런데 2008년에 설립한 메종에 웬 1988년 빈티지일까? 이는 올드 빈티지에 관심이 많았던 니꼴라 뽀뗄이 엄선한 최고의 크뤼와 뀌베 2500여 종을 테이스팅 해서 1959년부터 2006년까지 빈티지를 콜렉팅 한 것이라고 한다.

 

Derriere la Grange 1er Cru는 샹볼 뮈지니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크뤼다. 사이즈가 상당히 작은 편이라 생산량이 많지는 않을 듯.

 

세 번째는 화이트. 처음 만나는 PYCM의 빌라주 와인이다.

 

 

@보라초(망원)

망원동 스페인 음식 전문점 보라초. 인당 1병까지 콜키지 프리 이벤트 중이다.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도 굿.  첫 선수는 부르고뉴 블랑. 샤르도네가 아니라 알리고떼로 양조한 와인인데 하얀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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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YCM의 와인이 처음은 아닌데 3년 전에 알리고테(Aligote) 품종 와인을 맛본 적이 있다. 그때 이 와인 들고 온 사람이 이날 테이스팅을 같이 한 멤버 중 하나 ㅋㅋㅋ 보통 노블 품종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알리고테를 밀랍으로 마감한 것이 참 특이하다 했는데, 그게 바로 PYCM의 의 특징인데 조기 산화(premature oxidation)를 막으려는 목적이라고.

PYCM의 풀 네임은 피에르 이브 콜랭 모레(Pierre-Yves Colin-Morey)인데 워낙 길다 보니 다들 이니셜로 줄여 부르는 듯하다. 도멘은 생 또방(Saint Aubin)의 명가 도멘 마르크 콜랭(Domaine Marc Colin)의 장남 피에르 이브가 샤샤뉴 몽라셰(Chassagne-Montrachet)의 장 마르크 모레(Jean-Marc Morey)의 딸과 결혼 후 독립해 세운 와이너리다. 피에르 이브는 아버지의 도멘에서 2005년까지 함께 일하며 와인을 양조했다. 2001년에 네고시앙을 설립한 후 2005년 독립하여 2006년 자신의 첫 빈티지를 생산했다. 신선한 과실 풍미를 살리기 위해 부르고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오크통보다 큰 350L의 오크(30%-50% new)를 사용한다고.

사실 와이너의 VIP들만 구입할 수 있는, 시중에서는 보기 힘든 와인이다. 이 귀한 와인을 열어주신 분께 깊은 감사를...

 

Pierre-Yves Colin-Morey, Chassagne-Montrachet 'Les Ancegnieres' 2019

은은한 연둣빛이 감도는 옐로 컬러. 깨 볶는 향기 살짝 드러난 후 달콤한 바닐라 오크와 열대과일, 흰 자두, 백도, 사과 등 다양한 과일 풍미가 신선하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명확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산미에 부드럽고 크리미 한 질감이 인상적이다. 확실히 좋은 와인은 주질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준 와인.

 

좋은 사람들과 좋은 와인을 마시니 감동이 제곱으로 올라간다. 와인에 집중하면서도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

 

좋은 와인을 열어 준 세 분께 심심한 감사를. 덕분에 호강했네.

 

20220723 @ 끌리마(부산 용호동)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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