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오후 명동에 위치한 비스트로 수방(Bistro Souvent)에서 열린 코리안 와인즈 전문인 시음회. 일정이 있었지만 존경하는 선생님의 초청을 받았으니 방문하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 늦게나마 참석했다.
코리안와인즈는 내추럴 와인 전문 수입사다. 대표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추럴 와인을 교조적으로 추구한다기보다는 그저 옛날과 같이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만드는 와인을 전파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 인스타그램의 소개 문구에도 "맛과 향이 선명하고 직관적이며, 오픈하고 바로 마셔도 충분히 맛있는 와인을 선호"하신다고 밝혀 놓았고.
시음 리스트는 첨부파일 참고. 코리안와인즈 인스타그램(@koreanwines)에 들어가면 일부 와인들의 소개를 확인할 수 있다. 아래서 와이너리와 외인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의 상당수도 인스타그램에서 인용했다. 하지만 대표님 혼자 동분서주하시느라 모든 생산자와 와인의 자료를 빠르게 업데이트하지는 못하고 계신 듯.
시음회는 1부와 2부로 나누어 1시간 30분씩 진행했는데, 2부에 30분 정도 늦게 가는 바람에 토스카나와 피에몬테 지역의 와인들은 시음하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조만간 또 기회가 있을 것으로 믿으며 위안을...
알자스의 도멘 만(Domaine Mann)부터 시작. 내추럴 와인 생산지 중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 레드는 보졸레(Beaujolais), 화이트는 알자스(Alsace)다. 그러니 알자스 부스부터 시음할 수밖에.
Domaine Mann, Nuances de Pinots Blanc & Gris 2016 Alsace / 도멘 만, 뉘앙스 드 피노 블랑 앤 그리 2016 알자스
후지 사과, 서양 배 등 무겁지 않은 완숙 과일 풍미가 오묘한 숙성향과 짭짤한 미네랄과 어우러져 오묘한 뉘앙스를 남긴다. 그래서 이름에 '뉘앙스'라는 표현이 들어간 듯. 빈티지가 2016년이라 화이트 치고는 이례적이다 했더니 의도적으로 셀러에서 5년 이상 숙성해 출시한단다. 알자스 와인 애호가라면 한 번쯤 마셔 볼만한 와인.
Domain Mann, L'Oiseau Astral Gewurztraminer Super DRY 2018 Alsace / 도멘 만, 르와조 아스트랄 게뷔르츠트라미너 슈퍼드라이 2018 Alsace
게부르츠트라미너 특유의 리찌와 람부탄 껍질 같은 첫인상. 잘 익은 핵과와 향긋한 꽃향기가 더해진다. 그런데 입에서는 다른 게부르츠트라미너보다 가볍고 단맛이 정제된 느낌. 그래서 '수퍼드라이'라는 표현을 쓴 듯. 그런데 한국/일본인이라면 아사히 슈퍼드라이를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최소 12개월 이상 숙성해 병입한다고.
‘도멘 만’은 장-루이 & 파비앙 만(Jean-Louis & Fabienne Mann) 부부와 그들의 아들 세바스티엉(Sébastien)이 3대째 함께 운영하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장-루이는 아버지 앙리(Henri)의 뒤를 이어 1982년부터 에기스하임(Eguisheim)의 와인협동조합에 가입하여 와인을 만들었고, 1998년에는 도멘 만을 설립했다. 보유한 포도밭 면적은 13ha. 퍼시그스베르크(Pfersigsberg), 아이히베르크(Eichberg) 등 두 개의 그랑 크뤼와 알텐가르텐(Altengarten), 로젠베르크(Rosenberg), 오르텔(Ortel), 슈타인벡(Steinweg), 레첸베르크(Letzenberg) 등 여러 밭(Lieu-dit)에서 비오디나미(Biodynamie) 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이들은 2004년에는 모든 포도를 유기농 생산하기로 결정했고 2008년 AB 유로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이후 비교적 엄격한 비오디나미 인증인 바이오디뱅(Biodyvin) 인증을 받았다. 세바스티엉은 아티잔(Artisan) 샴페인 하우스 부에떼 에 소르베 (Vouette et Sorbée)에서 비오디나미 와인메이킹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별 밭의 떼루아(Terroir)를 정확히 표현하는 와인을 추구한다. 토양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미생물의 자연적인 생육을 위해 토양에 대한 지질학적 연구협회(Association Vignes Vivantes)에 가입할 정도로 열심이라고.
두 번째도 알자스의 와이너리, 도멘 드 랑볼(Domaine de l'Envol).
Domaine de l'Envol, Trait D'Union 2019 Alsace / 도멘 드 랑볼, 트레 뒤니옹 2019 알자스
은은한 시트러스, 음성적인 허브와 습한 미네랄 느낌이 왠지 이끼가 연상됐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오묘한 인상을 남기는 와인이라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시장의 반응은 어떨까. 실바너(Sylvaner) 65%, 리슬링(Riesling) 30%, 게부르츠트라미너 5% 블렌딩
Domaine de l'Envol, Pinot Gris Steinweg 2018 Alsace / 도멘 드 랑볼, 피노 그리 슈타인베그 2018 알자스
달콤한 사과와 서양배, 백도 등 완숙했으면서도 깔끔한 과일 풍미에 은은한 꽃 향기가 감돈다. 들뜨지 않는 매끈한 질감에 미세한 단맛이 신맛과 절묘한 밸런스를 이룬다. 대중적으로 선호도가 높을 것 같다. 밭 이름이 명기된 피노 그리(Pinot Gris) 100%로 양조한 화이트 와인.
Domaine de l'Envol, Bulles de Muscat NV / 도멘 드 랑볼, 불 드 뮈스까 NV 알자스
뮈스카(Muscat) 답게 화사한 머스크 향과 달콤한 핵과, 청포도 풍미. 입에 넣으면 잔잔한 버블을 타고 은은한 진저 스파이스 힌트와 함께 가벼운 쌉쌀함이 말끔한 미감을 선사한다. 100%로 양조한 펫낫(Petillant Naturel).
도멘 드 랑볼은 2016년 카테린 & 다니엘 이싱어(Catherine & Daniel HIRSINGER) 남매와 라파엘 프뢰덴리시(Raphaël Freudenreich) 등 젊은 와인메이커 세명이 모여 시작한 와이너리다. 그들은 알자스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던 부모님들 아래서 자연히 와인을 접한 사람들로, 와이너리 이름인 Envol은 의미는 둥지에서 나와 첫 번째 비행(take off)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들은 알자스 그랑 크뤼 3개를 포함한 여러 포도밭(Lieux-Dits) 총 20ha에서 손으로 수확한 포도만 사용해 효모 첨가 없이 와인을 만든다.
그들은 자연의 존재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려는 철학을 바탕으로 와인을 만든다. 데메테르(Demeter) 비오디나미 인증과 에코서트(ECO-Cert)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양조한 와인은 대부분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10개월 이상 발효하며 양조 과정에서 SO2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랑그독 루시옹(Languedoc-Roussillon)의 도멘 리카르델 드 로트렉(Domaine Ricardelle de Lautrec). 시음회에서 오랜만에 만난 모 대표님이 강추하는 바람에 맛을 안 볼 수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성공적.
레이블이 상당히 매력적인데, Packaging of the world라는 완성도 높은 패키지 디자인들을 소개하는 유명 웹진에도 소개가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레이블에 등장하는 무당벌레는 리카르델 드 로트렉의 포도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곤충으로 해충을 퇴치하는 등 포도 농사에 상당히 유용한 존재라 레이블에 넣었다고 한다.
도멘 리카드델 드 로트렉은 4대를 이어 오며 현재 50ha의 포도밭에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와인메이커 리오넬 부티(Lionel Boutie)가 20여 년 전부터 유기농으로 포도를 재배한다. 1999년 에코서트 인증을 받았으며 현재는 비오디나미 농법을 적용해 포도를 재배하며 내추럴 와인을 만들고 있다. 토양은 주로 점토, 석회질이며 암석과 자갈이 일부 섞여 있다.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덥고 건조하며 여름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기 때문에 포도나무는 몇 미터 아래까지 뿌리를 깊게 내려 수분이 충분한 석회질을 만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부드럽고 신선한 맛의 와인이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 와이너리에서 만드는 여러 와인 중 Nature라인은 콘크리트 탱크에서 탄산 침용(Carbonic maceration) 과정을 거치며, 그 양조과정에서 SO2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루아르 내추럴 와인 메이커 자크 카호제(Jacques Carroget)가 이끄는 내추럴 와인조합의 뱅 메소드 나뛰루(Vin Méthode Nature) 인증을 받아 백라벨에 사용한다.
스타트는 펫낫으로.
Domaine Ricardelle de Lautrec, Pet Nat 2021 / 도멘 리카르델 드 로트렉, 리카르델 펫낫 2021
샤르도네(Chardonnay) 100%로 만든 펫낫. 첫인상은 마치 사이다처럼 상큼한데 '자연스러운 꿈꿈함'이 살짝 감돈다. 펫낫 치고는 약간의 볼륨감이 느껴지며 상큼한 신맛에 드라이하지만 약간의 단맛이 피니시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이날 가장 마음에 들었던 펫낫. 그리고 리카르델 드 로트렉의 와인 중에서도 가장 취저.
Domaine Ricardelle de Lautrec, Nature Pinot Noir 2020 / 도멘 리카르델 드 로트렉, 나뛰르 피노누아 2020
드라이하고 짭조름한 미감, 감초 스파이스, 흑연과 함께 나무 뉘앙스가 상당히 강하게 드러난다. 이건 오크.. 라기보다는 진짜 나무줄기 같은 인상인데, 아마 제경을 하지 않고 양조한 것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너무 씁쓰름한 맛이 강하다고 느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붉은 작은 베리 풍미가 예쁘게 살아나기 시작한다. 피노 누아(Pinot Noir) 100%를 줄기를 제거하지 않고 탄산 침용해서 만든다. 레이블에 쓰여 있듯, 이산화황 무첨가(sans sulfites ajoutes).
Domaine Ricardelle de Lautrec, Nature Syrah 2020 / 도멘 리카르델 드 로트렉, 나뛰르 시라 2020
보랏빛 감도는 루비 컬러부터 시라시라한 느낌. 바이올렛 향과 검붉은 베리, 자두 풍미가 실키한 질감과 산미를 타고 매끈하게 표현된다. 시라(Syrah) 100%를 콘크리트 탱크에서 발효. 이산화황 무첨가.
Domaine Ricardelle de Lautrec, Nature Robert 2019 / 도멘 리카르델 드 로트렉, 나뛰르 로베르 2019
내추럴 특유의 '자연스러운' 뉘앙스가 확연히 드러난다. 약간의 환원취가 있어서 디캔팅으로 충분히 에어레이션을 했으면 어떻까 싶었다. 잔에서 빡세게 스월링을 하니 완숙 라즈베리와 블루베리 풍미가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충분한 타닌에 바디감도 좋고 구조도 탄탄하다. 몇 년 정도 후에 더욱 맛있게 마실 수 있을 듯. 칼라독(Caladoc) 100%을 배럴에서 발효하고 11개월 숙성했다. 여기서 다시 이 품종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어쨌거나 로베르는 현재 소유주의 할아버지 이름이라고.
이번에는 이탈리아로 넘어왔다. 코리안 와인즈 이성희 대표님은 이탈리아가 프랑스에 비해 품종과 양조의 자유도가 높아서 내추럴 와인 쪽에서는 더 좋은 것 같다는 얘기를 하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라인업이 더 많아졌다고.
첫 이탈리아 부스는 칸티나 마르티넬리(Cantina Martinelli). 유명한 베네토(Veneto)의 피타(Fitta)지역에 위치한 와이너리다. 프란체스코 마르티넬리(Francesco Martinelli)와, 아버지 다리오(Dario Martinelli), 그리고 젊고 열정적인 농학자 안토니오 자폴리(Antonio Zappoli)가 함께 내추럴 와인을 만들고 있다. 그들의 포도밭은 1.2ha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들의 포도밭은 소아베 클라시코(Soave Classico) 존 안에 있는 경사지의 화산토양에 식재된 50년 이상 수령의 올드 바인이다. 소아베 클라시코에서도 가장 좋은 포도밭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포도를 재배하며, 모든 포도는 손으로 수확해 효모 첨가 없이 자연 발효로 양조한다.
Cantina Martinelli, Il Gigante G Soave 2019 / 칸티나 마르티넬리, 일 지간테 지 소아베 2019
처음엔 뭔가 살짝 묵은(?) 느낌이 났는데, 시간이 지나니 서양배와 시트러스 등 싱싱한 과일 향이 화사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처음의 그 오묘한 느낌 때문에 호불호가 살짝 갈릴 것 같다. 지칸테는 거인(giant)이라는 뜻으로, 웅장하고 압도적인 인상의 와인을 만들고 싶어서 붙인 이름이라고.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입안에 넣었을 때 강하게 드러나는 산미. 원래 소아베가 신맛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마르티넬리의 와인들은 전반적으로 산미가 높은 것 같다. 그리고 모두 가르가네가(Garganega) 100%로 양조한다..
Cantina Martinelli, Pantagruele Soave 2018 / 칸티나 마르티넬리, 판타그루엘레 소아베 2018
소아베끼리 비교해 보고 싶어서 요 와인을 먼저 맛보았다. 얘는 밝은 과일 풍미가 처음부터 직선적으로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시트러스 풍미와 함께 쨍한 산미가 미네랄과 함께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밑에 깔리는 은은한 (흰) 허브 향도 매력적. 개취는 요쪽이다. 옆에서 같이 시음하던 분도 판타그루엘레의 손을 들어주었음.
Cantina Martinelli, Leviatano 2020 / 칸티나 마르티넬리, 리비아탄 2020
청사과와 레몬, 그리고 예의 그 쨍한 산미. 식전주로 입맛을 돋우는 용도로 제격일 것 같다. 얘는 소아베 지역에서 재배한 가르가네가에 산도가 좋은 두렐라(Durella)라는 품종을 블렌딩해 만든다.
다음은 마르코 루도비코(Marco Ludovico). 부스로 넘어오긴 했는데 시간 부족으로 제대로 맛을 보지 못했다. 3종은 입에 넣어 보기는 했는데 마음이 급해서인지 제대로 느껴지질 않더라는.
화이트는 베르데카(Verdeca), 로제는 미누 톨로(Minutolo) 등 들어본 적 없는 특이한 품종을 사용해서 상당히 궁금하다. 레이블도 신경을 많이 쓴 듯싶고. 다음에 꼭 제대로 맛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연히, 급하게 참여하게 됐지만 그래도 보람 있었던 시음회. 자신의 식견과 취향을 갖고 나름대로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가는 이런 수입사가 많아진다는 게 참 고무적이다. 오래오래 번창하시길.
20220815 @ 비스트로 수방(명동)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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