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위스키 동호회의 첫 번째 시음회에서 만난 위스키, 옐로우 로즈(Yellow Rose).
옐로우 로즈는 같은 이름의 증류소 옐로우 로즈 디스틸링(Yellow Rose Distilling)에서 만드는 스몰 배치 위스키(Small Batch Whiskey)다. '스몰 배치 위스키'란 보통 마스터 블렌더가 엄선한 10개에서 50개 정도의 배럴로 소량 생산하는 위스키로, 비교적 품질이 좋거나 개성적인 위스키가 많다. 그런데 명확한 규정이 없다 보니 마케팅적으로 사용하는 무늬만 스몰 배치인 위스키들도 종종 있다고.
하지만 옐로우 로즈는 모든 보틀에 손으로 직접 배치 넘버와 보틀 넘버를 써넣을 정도로 찐 스몰 배치 위스키다. 넘버뿐만 아니라 재료의 소싱부터 증류, 병입, 레이블링까지 직접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생산량이 레알 적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다.
옐로우 로즈는 2010년 설립해 2012년 첫 위스키를 생산한 비교적 신생 증류소다. 나이로 치면 초딩 증류소^^;; 증류소를 설립한 사람들은 원래 주류 애호가였던 세 친구라고. 증류소가 위치한 곳은 버번 위스키로 유명한 켄터키가 아닌 남쪽 텍사스의 휴스턴 도심. 때문에 증류소 투어나 유통 등에는 상당히 유리하다고 한다. 옥수수, 맥아, 밀 등 모든 곡물은 텍사스산만을 사용하며, 증류기 또한 일반적으로 미국 위스키에서 많이 사용하는 연속식이 아닌 단식 증류기를 사용해 풍미를 극대화한다.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든 진짜 크래프트 위스키라고 할 만하다.
꼭 기억해야 할 점은 증류소가 위치한 텍사스는 무더운 지역이기 때문에 엔젤스 셰어(angel's share)라고 하는 통 숙성 중 증발량이 상당히 많다는 것. 1년 동안의 엔젤스 셰어가 스코틀랜드는 2%, 켄터키는 4~10% 정도인 반면 텍사스는 15%에 육박한다. 증류소로서는 비용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는데, 그 때문에 일반적인 위스키에 비해 알코올 도수를 낮춰서 통입 한다고. 하지만 장점도 있다. 무더운 데다 일교차, 연교차가 커서 온도 변화에 따라 오크통이 위스키를 많이 빨아들였다가 많이 내뿜기 때문에 숙성이 빠르게 잘 진행된다.
그런데 옐로우 로즈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일까? 옐로우 로즈는 텍사스가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기여한 에밀리 웨스트(Emily D. West)라는 여성의 별명에서 따온 것이다. 텍사스 논개 전설;;; 사실 그 얘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은데 썰과 전설이 더해지면서 텍사스에서는 관련 민요도 있는 등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 설립자들은 에밀리 웨스트처럼 텍사스만의 개성을 듬뿍 담은 독립적인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아 이 이름을 붙였다고. 참고로 이 여성은 위스키 제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수입사는 디엔피 스피리츠(DnP Spirits Inc.). 위스키 애호가라면 모를 수 없는 맥캘란(Macallan)을 비롯해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 글렌로시스(Glenrothes), 뇌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페이머스 그라우즈(Famouse Grouse) 등 유명한 스카치 위스키를 다수 보유한 수입사다. 볼스(Bols), 담락(Damrak), 갈리아노(Galliano) 같은 다른 스피릿과 리큐르도 수입한다.
이날 옐로우 로즈 위스키를 소개해 주신 분은 이세용 브랜드 앰버서더. 사실 이 분은 옐로우 로즈의 브랜드 앰버서더가 아니라 맥캘란의 브랜드 앰버서더다. 더 부럽;;; 하지만 가끔 이렇게 다른 브랜드를 위해서 외도(?)를 할 때도 있다고.
참고로 맥캘란의 전 세계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하나로 통합해 버렸기 때문에 한국의 맥캘란 관련 공식 소식을 빠르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인스타 계정(@themacallanryan)을 팔로우하는 게 좋다... 고 본인이 직접 말씀하셨닼ㅋㅋㅋㅋ 그래서 팔로우함 ㅇㅇ
이제 시음할 시간.
프리미엄 아메리칸 위스키, 해리스 카운티 버번 위스키, 라이 위스키, 아웃로 버번 위스키 등 국내에 수입된 4종의 위스키를 모두 시음했다. 홈페이지를 보면 이 4개가 오피셜 라인업의 전부인 듯.
준비된 글라스는 휴대용 플라스틱 와인잔. 글렌캐런을 사용하면 더 좋았겠지만 참석자가 많아서 어쩔 수가 없었던 듯. 그래도 종이컵이나 소주잔 형태의 일회용 잔이 아니라 향을 피워낼 수 있는 와인잔 형태를 준비해 준 수입사의 센스에 감동.
컬러부터 각각의 개성이 느껴진다.
Yellow Rose, Premium American Whiskey (알코올 40%)
제법 짙은 찐 골드 컬러. 가볍게 톡 쏘는 스파이스가 스친 후 향긋한 꽃향기와 잘 익은 사과, 서양배, 흰 자두 같은 달콤한 과일 풍미가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유질감이 적어 가볍고 산뜻한 느낌. 알코올 부즈가 튀는 느낌은 아닌데 생 알코올 뉘앙스가 오묘하게 살짝 드러나는 게 특이하다. 외려 이런 느낌이 노란 과일 풍미, 싱그러운 레몬 뉘앙스와 어우러져 매력을 더하는 듯. 넘나 부담이 없어서 술술 넘어간다.
3년 이상 숙성한 콘 위스키, 버번 위스키, 라이트 위스키를 블렌딩해 만들었다. 콘 위스키는 옥수수 함량이 81% 이상인 위스키이고 라이트 위스키는 재사용 오크통이나 태우지 않은 새 오크통에서 제한적으로 숙성해 오크 풍미가 강하게 드러나지 않는 가벼운 풍미의 위스키다. 이런 세 위스키의 조화로 인해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밸런스가 좋은 위스키가 탄생한 것.
그냥 마셔도 좋지만 하이볼용으로 최적일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넣어서 위스키 아포가토를 만들어 먹으면 아주 맛있다고 한다. 남아서 2차를 하신 분들이 실제로 해 봤는데 넘나 맛있어서 아이스크림 한 통이 5분 순삭컷이었다고.
Yellow Rose, Harris County Straight Bourbon Whiskey (알코올 46%)
로즈 골드빛 감도는 브라운 앰버 컬러. 처음엔 너티한 향과 구수한 옥수수 가루 같은 풍미와 함께 톡 쏘는 스파이스, 우디한 뉘앙스가 먼저 고개를 내민다. 좀 더 스월링을 하면 붉은 베리와 체리 아로마가 드러나며, 비누 같은 인상과 함께 고급 홍차나 우롱차 같은 발효 찻잎 뉘앙스가 고혹적으로 감돌기 시작한다. 입에 넣어도 그 뉘앙스가 이어지는데 이게 완전 취저다. 다른 버번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개성적인 풍미. 전반적으로 바디감은 가벼운 편이고 밸런스가 좋아 역시나 마시기 좋지만, 직전의 아메리칸 위스키에 비해서는 확실히 타격감이 있다. 매시빌 비율은 옥수수 67% 호밀 25%, 맥아 8%로 호밀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단식 증류기를 사용해 풍미를 제대로 살린 버번 위스키.
그냥 즐겨도 아주 좋을 것 같고 맨해튼 같은 칵테일의 기주로 사용하면 색다른 풍미를 더해 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오늘의 1픽.
Yellow Rose, Rye Whiskey (알코올 45%)
아메리칸 위스키와 유사한 컬러인데 붉은 뉘앙스가 조금 진하게 더 감도는 듯한 골드 앰버 컬러. 완숙한 노란 과일향 아래로 풋풋하고 화-한 라이 특유의 허브 스파이스 뉘앙스가 은은하게 드러난다. 호밀 함량 95% 이상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라이 특유의 스파이시함을 잘 제어했는데, 그렇다고 또 라이 위스키의 개성이 안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날렵하며 균형감이 좋은 라이 위스키다.
요거 올드 패션드나 사제락 기주로 쓰기 딱 좋을 것 같은데... 이것도 사야 하나;;;
Yellow Rose, Outlaw Bourbon Whiskey (알코올 40%)
제법 진한 마호가니 빛 감도는 브라운 앰버 컬러. 바닐라와 토스티한 뉘앙스, 구수한 갓 구운 과자, 붉은 과일, 톡 쏘는 스파이스, 은은하게 감도는 꽃향기와 이국적인 스파이스 등 다양한 풍미가 조화롭게 공존한다. 왠지 라이 위스키 같은 풋풋한 허브 스파이스도 느껴졌는데 옥수수 100%라는 얘기를 듣고 털썩...ㅠㅠ (하지만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역시나 바디는 날렵한 편이며, 맛은 드라이하지만 캐러멜 같이 달콤한 인상이 피니시까지 길게 이어진다. 일반적인 버번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개성적인 프리미엄 버번 위스키. 목에 초크를 끼우고 T톱 마개 위에 동전을 얹은 이유가 있었네... 동전 사진 못 찍은 거 아쉽;;;
그도 그럴 것이 옥수수 100%로 양조한 후 단식 증류기로 증류해 작은 아메리칸 오크 배럴에 숙성해 특별한 풍미를 완성했다. 이름이 무법자 버번(Outlaw Bourbon)인 이유가 이와 같이 다른 버번과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위스키 제조를 시작할 때 켄터키 쪽 증류업자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그렇게는 제대로 된 위스키가 안 나온다. 우리가 해봐서 아는데...' 등등의 조언 아닌 참견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다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만든 위스키라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나중에 동호회 회장님한테 추가로 들은 이야기인데, 이 위스키에서 드러나는 의외의 스파이시한 풍미는 옥수수의 당화를 위해 일부 옥수수를 발아시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옥수수가 대세를 이루는 위스키에서 드러나지 않는 스파이시함이 생성되는 거라고. 가격은 살짝 있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비싸지도 않다. 다른 버번에서 느끼기 어려운 개성적인 맛이라 버번 애호가라면 한 번은 꼭 마셔볼 만하다.
전반적으로 네 위스키 모두 유질감이 강하지 않고 가볍고 날렵한 바디감이 인상적이었다. 꼭 마음에 드는 스타일.
간만에 흥미로운 아메리칸 위스키를 만나 기분이 업업.
그리고 정확히 저녁 식사 시간대에 진행된 시음회라 배가 좀 고팠었는데,
이렇게 양질의 케이터링 박스까지 준비해 주셨다. 무료 시음회 퀄리티가 이렇게 높아도 되는지 살짝 미안할 정도.
시음회를 기획한 동호회 운영진, 그리고 수입사 담당자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20220905 @ 옐로우 로즈 시음회(한강대로32^^)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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