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실비에서 진행한 와이니 모임.
9호선 선유도역 2번 출구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있다. 한우를 파는 정육 식당인데,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콜키지도 프리라 와인 모임 하기 딱 좋다. 고기 질이 엄청 좋은 편은 아니지만, 꽃등심+차돌박이 400g으로 구성된 한우 한상차림이 79,000원으로 가성비가 좋은 편. 차돌박이 한 점씩 천천히 구워서 와인 한 모금 하다가 등심으로 배 채우고, 부족하면 다른 고기나 육회를 추가로 시켜서 먹으면 된다. 다 먹고 나면 고기 굽던 무쇠판에 된장찌개를 끓여주시니 해장까지 OK.
그런데 와인 사진도, 고기 사진도 하나도 안 찍었다-_-;; 먹느라 진행하느라 바빠서... 그래도 기억을 위해 가볍게 메모. 와인 리스트는 전부 아르헨티나 와인으로 구성했다. 그중 4종은 엘 에네미고, 나머지 하나는 멘델 와이너리에서 생산했다.
엘 에네미고(El Enemigo)는 자타공인 아르헨티나 최고의 와이너리 카테나 자파타의 소유주 니콜라스 카테나의 막내딸 아드리안나 카테나(Adrianna Catena)와 카테나 자파타의 수석 와인메이커 알레한드로 비질(Alejandro Vigil)이 합작해 세운 프로젝트 와이너리다. 에네미고는 'enemy'라는 뜻으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고, 이 싸움이 우리의 인생을 정의하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넘나 심오한 것... 하지만 우리는 마실 뿐!)
우리가 마신 와인들은 엘 에네미고의 엔트리급 와인으로, 멘도자 지역 중에서도 떠오르는 산지 우코 밸리(Uco Valley) 아래 세부 산지 투풍가토(Tupungato) > 괄탈라리(Gualtallary)에서 재배한 포도를 사용했다. 모두 로버트 파커, 제임스 서클링 등 유명 평론지로부터 고르게 90점대 초중반의 높은 평가를 얻었다는 것이 포인트.
El Enemigo, Syrah Viognier 2018
시라의 향긋한 붉은 꽃 향기에 비오니에의 화사함이 더해져 상당히 방순한 느낌이다. 오크 뉘앙스는 상당히 절제돼 있고 과일 또한 영롱한 붉은 과일 중심. 그러면서도 탄탄한 구조는 살아있다. 무겁지 않은 신세계 시라를 찾는다면 요 와인이 대안이 될 것 같다. 해발 1500m에서 재배한 시라 92%와 해발 1400m에서 재배한 비오니에 8%를 효모 첨가 없이 발효해 100년 된 커다란 오크통(foudre)에서 7개월 숙성했다. 원래 시라에 비오니에를 약간 블렌딩 하는 것은 북부 론의 고오급 와인 코트 로티(Cote-Rotie)를 만들던 스타일로, 아로마틱 하고 유질감 있는 품종인 비오니에가 부드럽고 우아한 질감과 향긋한 뉘앙스를 더해 준다.
El Enemigo, Cabernet Franc 2018
풋풋한 허브보다는 고혹적인 정향 허브를 중심으로 시나몬이 은은하게 감돈다. 붉은 자두와 베리류의 풍미가 둥글둥글한 타닌과 정제된 신맛을 타고 편안하게 드러난다. 카베르네 프랑 특유의 길들여지지 않은 인상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잘 다듬어져 부드러운 스타일이다. 상당히 잘 만든 건 알겠는데 개인적으로는 너무 둥근 느낌이라 외려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해발 1500m에서 재배한 카베르네 프랑을 효모 첨가 없이 발효해 28일의 긴 침용을 통해 풍미와 컬러를 충분히 뽑아냈다. 이후 100년 된 커다란 오크통에서 15개월 숙성. 수확기간이 5주나 걸렸을 정도로 잘 익은 포도만을 섬세하게 선별해 양조했으며, 말벡을 10% 블렌딩 했다.
El Enemigo, Malbec 2018
말벡 특유의 풋풋한 허브와 스파이스가 검(붉)은 베리 풍미, 적당한 오크 뉘앙스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상당히 맛있는, 말벡 품종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사람도 좋아할 만한 와인이다. 해발 1500m에서 재배한 말벡을 효모 첨가 없이 발효해 30일의 긴 침용을 통해 풍미와 컬러를 충분히 뽑아냈다. 이후 100년 된 커다란 오크통에서 15개월 숙성. 풍미의 밀도가 높고 진하면서도 신맛이 잘 살아있는 신선한 느낌의 와인이다. 카베르네 프랑을 8% 블렌딩했다.
El Enemigo, Chardonnay 2019
해발 1500m에서 재배한 샤르도네를 프랜치 오크 배럴(35% new)에서 효모 첨가 없이 발효해 9개월 숙성했다. 독특한 점은 와인메이커가 피노 셰리(Fino Sherry)처럼 약간의 플로르(flor) 아래서 숙성했다고 언급했다는 점. 그래서 신선한 과일, 꿀 같은 뉘앙스와 함께 약간 짭조름하면서도 스파이시한 힌트가 곁들여진다고 하는데, 사실 마실 때는 그렇게 강하게 느끼진 못했다. 칠링이 덜 되어 마지막에 마시는 바람에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완숙한 핵과 풍미, 은은한 오크 뉘앙스와 함께 세이버리 한 뉘앙스가 제법 드러났던 듯. 곁들인 육회와도 그럭저럭 잘 어울렸다.
엘 에네미고와 비교군으로 선택한 와인은 보데가 멘델(Bodega Mendel)의 말벡. 전체를 비교할 수는 없기에 대표 품종인 말벡만 선택했다. 멘델은 아르헨티나 말벡의 고향이라고 하는 루한 데 꾸요(Lujan de Cuyo) 지역에 위치한 와이너리다. 와인메이커 로베르토 데 라 모타(Roberto de la Mota)는 샤토 슈발 블랑(Chateau Cheval Blanc)에서 경력을 쌓은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와인 메이커 중 한 명으로, 아르헨티나의 테루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와인을 추구한다고.
Bodega Mendel, Malbec 2018
뭔가, 내가 알던 말벡에 조금 더 가까운 느낌. 빈티지가 같은데도 엘 에네미고보다 조금 더 숙성한 느낌에 오크 뉘앙스도 살짝 강하며 복합적인 인상이다. 품질에 상관없이 이쪽이 더 개취에 가깝달까. 다음에 보면 다시 살 것 같다. 해발 1000m에 식재된 100년 수령의 말벡을 손 수확해 섬세하게 선별해 8000리터 발효조에서 25일간 침용 및 발효한다. 첫 한 주 동안은 사람이 직접 포도껍질 등을 눌러서 가라앉히는 작업을 한 후 프렌치 오크 배럴(33% new)에서 12개월 숙성해 가볍게 청징한 후 여과 없이 병입한다. 이후 6개월 이상 병 숙성을 거쳐 출시. 상당히 클래식한 말벡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딱 그대로였다.
참 즐거워서 과음을 하게 되는, 그럼에도 다음날 그렇게 힘들지 않은 와이니 모임. 다음 달에 또...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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