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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음주/와인

인시그니아(Insignia) & etc.. @깔모누아(w/WINEY)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2. 12. 2.

오랜만에 합정 깔모누아. 조셉 펠프스 인시그니아(Joseph Phelps Insignia)를 영접하러 모였다. 메모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와인에 대한 감상은 모두 단편적으로 기억나는 인상들을 그러모은 것.

 

다른 분들보다 30분 늦게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샴페인으로 갈증 해소.

 

Champagne G.H. Mumm, Grand Cordon Brut 

병이 예쁘게 바뀐 샴페인 멈. 원래 이름은 코르동 루즈였던 것 같은데 보틀을 리뉴얼하면서 그랑 코르동으로 바뀐 것 같다. 완숙 핵과와 가벼운 이스트 힌트의 밸런스가 좋다. 산미와 감칠맛이 살짝 아쉽다는 느낌이 드는데 빈 공간을 조금 높은 단맛이 기가 막히게 메워주는 느낌.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대중적으로는 많은 사랑을 받을 것 같다.

 

도착에 맞춰 따뜻하게 내어 주신 빵과 올리브 오일. 작은 것에서 호스피탈리티가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부라타 치즈 & 방울토마토 샐러드. 셀러리가 입맛을 돋워 주어서 아주 좋았다.

 

원래 모양은 요랬던 건데 늦는 사람을 위해 별도로 예쁘게 덜어 놓으심^^;;

 

마늘쫑 쉬림프 파스타. 저 마늘쫑이 정말 신의 한 수다. 아삭하니 오일 소스와 아주 잘 어울림.

 

트러플 크림 라자냐. 트러플 향이 과하지 않고 잔잔하게 드러나 얇게 슬라이스 한 양송이와 아주 잘 어우러진다. 

 

여러 가지 허브로 마리네이드 한 양갈비 스테이크. 다양한 레드 와인의 친구다. 일찍 나왔지만 한 점은 인시그니아를 위해 남겨두었음.

 

와인 이름이 안드로메다로 간다... 처음 보는 생산자와 지역의 피노 누아. 게다가 2006 빈이라니...ㄷㄷㄷ

 

sean thackrey, Andromeda Pinot Noir 2006 Devil's Gulch Ranch Marin County

15년이 넘은 와인인데 아직 완숙한 붉은 과일 풍미가 생생하게 잘 살아있다. 거기에 어우러지는 섬세하면서도 복합적인 숙성 향. 다만 가넷 빛으로 바랜 루비 레드 컬러와 완전히 농익어 부드러워진 타닌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 줄 뿐. 다만 약간 낮은 산미가 살짝 아쉬웠는데, 신맛만 좀 뒷받침되었다면 더욱 엄청난 와인이 되었을 듯.

 

볼리나스(Bolinas)는 샌프란시스코 북쪽에 있는 외진 마을인데, 초기에는 히피들의 정착지 같은 곳이었다고. 생산자 이름은 션 태커리(Sean Thackrey). 생소한 이름인데 독특한 이력을 지닌 빼어난 생산자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올해 5월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원래는 미술을 전공했고 미술관 관장까지 지낸 분이었는데, 심미적인 이유로 뒷마당(?)에 포도나무를 심었다가 와인 양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그는 양조 관련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고, 고문서를 참고하고 직관에 의존해 와인을 만들었는데, 처음부터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괴짜이자 천재. 그는 자신을 규정하는 어떤 수식어도 거부하고 그저 자신의 와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테루아를 지나치게 구분하고 신격화하는 것을 '인종차별'에 비유하며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고. 진짜 멋있는 분... 나도 테루아가 너무 와인을 신분제 사회처럼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이상한 와인메이커 션 태커리(Sean Thackrey): 그의 인생과 와인에 대하여 - 와인21닷컴

주변 와인메이커들이 '미친 천재'라고 부르는 이상한 와인메이커가 있다. 션 태커리(Sean Thackrey). 와인양조에 고대 문헌만을 참고하고 오로지 독학으로 자신의 경험과 감각만을 바탕으로 와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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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유민준 기자님이 아주 잘 정리해 두었다. 

 

두 번째 레드는 내가 준비한 것. 내추럴 와인이라고 알고 샀는데 완전 내추럴은 아닌 것 같지만(확실치 않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생산자인 듯.

 

Andrea Picchioni, Bricco Riva Bianca Buttafuoco 2018 

은은한 허브, 정향과 시나몬 캔디 같은 뉘앙스가 잘 익은 붉은 베리 풍미와 함께 매력적으로 어우러진다. 타닌은 과하지 않으며 적당한 신맛과 조화를 이룬다. 피니시에서는 스모키 한 (초콜릿) 힌트가 은은하게 드러나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내추럴 애호가가 아니라도 좋아할 만한 음식 친화적인 와인. 한 병 더 가지고 있는 건 4~5년 정도 셀러링 해 봐야 할 것 같다.

레이블의 그림은 '불의 여신'이라는데 와인메이커의 딸이 그린 거라고.

 

발레 솔링가(Valle Solinga)의 가파른 언덕에서 관개를 하지 않고 재배한 크로아티나(Croatina), 바르베라(Barbera), 베스폴리나(Vespolina) 등 토착 품종을 손 수확하여 사용한다. 포도밭에 거름으로 주는 것은 해당 밭에서 재배한 포도 찌꺼기(pomace)라고. 주변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피키오니는 자연계의 순환에 도움을 주는 방식을 항상 고민한다. 내추럴 생산자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생각, '지구는 우리 것이 아니고, 다음 세대로부터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안드레아 피키오니(Andrea Picchioni) 와이너리는 1988년 카네토 파베제(Canneto Pavese)의 와이너리를 안드레아 파키오니가 인수하면서 시작된 와이너리다. 카네토 파베제는 롬바르디아(Lombardia)의 작은 마을인데 옛날부터 와인 생산으로 유명했던 곳이라고. 하지만 20세기 들어 급격히 몰락하다가 최근에 다시 젊은 와인메이커들에 의해 부활하는 지역이라고 한다. 안드레아 피키오니도 버려져 있던 포도밭을 복구하는 게 상당히 어려웠지만, 1995년 양조학자 주세페 자티(Giuseppe Zatti)의 도움을 받아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발레 솔링가의 경사지에 10 헥타르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다. 모래가 섞인 자갈 토양으로 배수가 좋다.

 

레드 와인 한우 스튜. 고기는 정말 와인 친구다. 주변의 시금치는 취저.

 

토마토 라구 파스타. 무난하지만 맛있다. 

 

다음 차례는 인시그니아일 줄 알았는데 리바이어던(Leviathan) 먼저. 리바이어던은 성서 욥기 41장에 나오는 해저 괴물로, 인간의 힘을 뛰어넘는 아주 강한 존재를 의미한다고 한다. 1651년 철학자 토마스 홉스의 대표적인 저서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와인 애호가에게는 컬트 와인 할란(Harlan), 스태글린(Staglin)을 거쳐 스크리밍 이글(Screaming Eagle)의 와인메이커였던 앤디 에릭슨(Andy Erickson)이 만든 와인 이름으로 훨씬 유명할 듯.

요런 와인을 와인 스마트오더(Wine25+)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니, 세상이 참 좋아졌다.

 

LEVIATHAN 2018 California Red Wine

컬러부터 검은빛이 감도는 진한 루비색. 코를 대면 검은 베리 풍미와 함께 정향과 시나몬 향이 드러나는데, 앞의 와인에서 나오는 것보다 훨씬 진하고 명확하다. 거기에 더해지는 흑연 같은 스모키 뉘앙스와 민트, 각종 허브 스파이스 힌트들. 입에 넣으면 역시 검은 컬러가 연상되는 묵직하고 강건한 느낌에 촘촘하지만 비교적 둥근 타닌. 개인적으로는 너무 강건하고 산미가 조금 아쉬웠지만 참석자들로부터는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몇 년 더 셀러링하면 조금 더 편하게 마실 수는 있을 것 같다.

 

앤디 에릭슨이 리바이어던을 통해 구현하려 한 목표는 'One blend. One focus'라는 말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매해 빈티지에 따라 캘리포니아 전역의 포도밭에서 품종 별로 최고의 포도를 찾아내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것이다.

2018년 빈티지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시라(Syrah), 쁘띠 시라(Petite Sirah),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을 블렌딩 했으며 100% 프렌치 오크(25% new)에서 숙성했다. 알코올 함량이 14.9%나 되는 괴물 같은 녀석. JS 93.

 

그리고 대망의 인시그니아. 2016년 이맘때쯤 조셉 펠프스의 빌 펠프스 씨가 한국에 오셨을 때 처음 맛보고는 5년 만에 다시 만난다.  

 

 

인시그니아 그리고 그 너머로, 죠셉 펠프스 - 와인21닷컴

인시그니아(Insignia)가 40번째 빈티지를 맞았다. 메리티지(Meritage) 와인의 효시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일 필요도 없다. 그 자체가 역사이자 미국을 대표하는 아이콘 와인 인시그니아. 마흔은 불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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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맛본 인시그니아 2013은 감동 그 자체. 아직 어린 빈티지였지만 충분히 곁을 내주는 친근한 와인임과 동시에, 고결한 품격을 갖춘 와인이었다. 2013이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빈티지이다 보니 구매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망설이다가 사지 못한 게 후회가 될 정도.

 

Joseph Phelps, Insignia 2006 Napa Valley

향긋한 민트 허브와 상쾌한 침엽수, 고혹적인 오크 뉘앙스가 명확한 블랙커런트 아로마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최상급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임을 확실히 드러내는 포스. 함부로 입에 넣을 수 없는, 향만으로도 계속 집중하게 만드는 느낌이다. 입에 넣으면 완숙했으면서도 퍼지지 않은 섬세한 검붉은 베리 풍미. 부드러운 타닌이 만들어내는 실키한 질감과 적당한 산미가 어우러져 깔끔하고 청명한 인상을 만든다. 밸런스, 구조감, 여운까지 무엇하나 흠 잡기 어려운 와인. 지금도 상당히 맛있었지만 앞으로 10년 이상 끄떡없이 변화해 갈 것 같은 와인이다.

하아, 이런 수준의 와인은 취향을 타기 어렵다. 기회가 될 때, 마음이 내킬 때 몇 병이라도 모아 두는 게 답이다.

 

2006년 빈티지는 카베르네 소비뇽 95%에 쁘띠 베르도 5%를 블렌딩 했다. 극단적으로 블랙커런트 향이 도드라졌던 이유를 알 것 같다. 33%는 나파 남쪽 Suscul Vineyard, 29%는 Stags Leap District, 20%는 러더포드의 Banca Dorada Vineyard, 10%는 Spring Ranch Vineyards, 10%는 Oak Knoll District의  Yountville Vineyard의 것을 썼다. 100% 뉴 프렌치 오크에서 24개월 숙성. RP 96, WS 94. 평가가 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은 에이지드 포트로 입가심. Quinta da Devesa, 10 Years Porto. 특이한 게 가까이서 보면 브라운 앰버 컬러가 도드라져 토니 포트 같은데, 멀리서 보면 붉은색이 도드라저 루비 포트 같다. 마셔 보니 붉은 베리 풍미가 도드라지며 약간의 산화 뉘앙스와 너티함이 더해진다. 과일 풍미가 진해서인지, 외려 지난번에 마셨던 같은 버전의 10년 숙성 화이트 포트에 비해 매력적인 너티 뉘앙스가 훨씬 덜 드러나는 듯. 상당히 아쉽다. 요 가격이면 같은 버전의 화이트 포트를 사거나, 돈을 살짝 보태서 다우나 그라함, 퀸타 도 노발의 10년 숙성 토니를 살 듯.

 

그런데 이거 참 특이하다 10년 동안 오크 숙성을 한 포트인데 Aged Tawny라는 표현이 없다. 그런 표현을 안 썼다는 건 연수 표기 토니가 아니라는 얘기. 도대체 뭘까? 병입일은 2021년. 

 

깔모누아는 원래 인당 5만 원 이상 주문 시 콜키지 프리였던 제도가 사라지고, 병당 2만 원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음식이 맛있는 데다 값이 합리적이고 양도 많은 편이기 때문에 와인 러버라면 방문할 만하다.  

어쨌거나 즐거운 모임이었다. 이런 모임 한 번 하고 나면 기분이 업업!

 

20221130 @ 깔모누아(합정역)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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