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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음주/위스키·브랜디·리큐르·기타증류주

프리미엄 그라빠, 시보나(Sibona) 시음기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2. 12. 25.

와인수입사 디캔터에서 새롭게 들여오는 프리미엄 그라빠(Premium Grappa), 시보나를 맛봤다. 맨 앞의 베르무트(Vermouth)는 아직 미수입인데 샘플로 들여오셨다고.

 

 

Distilleria Sibona - Grappe, Spirits and Liqueurs - Piobesi d'Alba (CN)

Sibona is one of the historic distilleries of Piedmont and has the old distilling license No. 1.

www.distilleriasibona.it

시보나(Sibona)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로에로(Roero) 지역의 유서 깊은 증류소다. 보유하고 있는 첫 번째 그라빠 제조 면허(license no. 1)와 각종 주류 대회에서의 꾸준한 수상 실적은 그들의 역사와 전통, 품질을 대변한다. 또한 시보나 그라빠를 담은 독특한 모양의 병은 상표권 등록이 되어 있어 다른 생산자들이 사용할 수 없다. 레이블과 케이스 또한 내용물에 걸맞게 고급스럽기 때문에 품격 있는 자리의 마지막을 장식하거나 선물용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

시보나는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로에로, 바르베라 달바, 모스카토 다스티 등 유명 와인들이 즐비한 피에몬테 지역에 위치한 증류소답게 토착 품종을 이용하거나 생산 지역을 명기한 수제 그라빠(handcrafted grappa)로 유명하다. 개별 품종의 풍미를 고스란히 살리기 위해 재료들이 증류소에 도착하는 즉시 구리 알렘빅(alembic) 증류기로 바로 증류한다. 오랫동안 시보나에서 일해 온 두 명의 양조 담당자와 증류 마스터가 최적의 순간에 헤드와 테일을 분리해 최상의 풍미를 지닌 그라빠를 완성한다. 또한 다양한 풍미를 지닌 그라빠를 만들기 위해 숙성에 다양한 오크통을 사용한다. 포트, 셰리, 마데이라, 테네시 위스키 등을 숙성했던 통에 마치 스카치 위스키처럼 피니싱을 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들의 뿌리인 피에몬테의 지역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다양한 취향의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살짝 언급한 것처럼 시보나는 그라빠의 품질뿐만 아니라 보틀과 케이스 등 외관에도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인데, 이는 진열대에도 잘 반영돼 있다. 고객들이 보기에도 좋고, 영업장의 보틀 관리도 편리할 것 같은 진열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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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요 진열대 그대로 고객 테이블로 가져가 고객이 취향에 맞는 그라빠를 선택하게 할 수도 있으니 더욱 편리하다. 이렇게 하면 다양한 맛을 보고 싶은 고객의 욕구를 자극해 매출 증대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래는 지극히 개인적인 시음기. 오피셜 테이스팅 노트는 위에 링크해 둔 홈페이지에 가면 볼 수 있다.

Sibona, Grappa di MOSCATO

진한 꽃향과 어우러지는 고구마 풍미가 달콤하면서도 구수한 인상을 남긴다. 거기에 더해지는 그라빠 특유의 톡 쏘는 뉘앙스. 입에 넣으면 부드럽고 편안하며 목 넘김 또한 깔끔하다. 이제껏 마셔 본 그라빠 중 가장 편안한 느낌. 와인을 마신 후 한 잔 정도가 아쉽다면 딱 요 그라빠를 마시면 좋지 않을까. 

 

Sibona, Grappa di BAROLO

오크 컬러가 조금 더 진하게 드러난다. 은은한 오크 풍미와 싱그러운 허브 향이 공존한다. 입에 넣으면 묵직하고 탄탄한 인상, 목 넘김 후에는 단정한 여운을 남긴다. 힘 있고 강한, 술다운 술(?)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

 

Sibona, Grappa Riserva in Botti da Sherry

오크 숙성 기간이 총 4년에 이르는 리제르바 급 그라빠. 부드럽고 와이니한 셰리 오크 특유의 향 때문에 셰리 오크 위스키 같은 익숙함을 살짝 드러내나, 이내 그라빠 특유의 톡 쏘는 느낌이 더해진다. 입에서는 도수가 안 느껴질 정도로 부드럽게 술술 넘어간다. 견과, 초콜릿 등 안주를 곁들여도 좋겠지만 그냥 그라빠만 즐기거나 시가와 함께 하는 게 더욱 좋을 것 같다.   

 

Sibona, Grappa Riserva in Botti da Madeira

향긋한 꽃내음과 달콤한 열대 과일 캔디 같은 향이 처음부터 기분을 좋게 만든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약간 비누 같은 뉘앙스도 느껴지는 듯. 풍미의 스펙트럼만 보면 셰리보다도 인기가 많을 스타일일 것 같다. 현재는 미수입이지만 상황에 따라 수입을 고려하고 계신다고. 역시 오크 숙성 기간은 4년. 보틀 사진을 안 찍었네;;;

 

Sibona, Grappa XO

금빛 감도는 앰버 컬러. 이건 컬러나 첫 향은 그냥 코냑 같다. 그라빠 특유의 톡 쏘는 스파이스가 느껴지지만 정제돼 있고 붉은 베리 풍미와 오크 뉘앙스, 은은한 바닐라 힌트가 더해진다. 입에 넣으면 실크처럼 부드러운 질감... 이게 과연 그라빠가 맞나 싶다. 이건 증류주 애호가라면 누구나 최소한 싫어하지는 않을 듯.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등을 만든 네비올로 및 바르베라 와인의 잔여물을 구리 증류기로 증류한 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길게 숙성한 다음 프렌치 오크통(tonneaux)에서 10 이상 숙성해 출시한다. 럭셔리한 와인 디너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맛보시길.

 

참고로 그라빠는 와인을 만들고 남은 포도 껍질, 줄기, 씨 등 고형 물질들을 증류하여 만드는 이탈리아 브랜디(brandy)다. 그라빠의 원료가 되는 고형 물질들을 비나치아(vinaccia)라고 하는데, 프랑스의 마르(marc)와 유사하다. 비나치아는 반드시 이탈리아에서 재배한 포도에서 나온 것만 사용해야 하며, 증류는 이탈리아 내에서 해야 한다. 현재 그라빠 생산자 수는 약 130여 개에 이르는데, 80% 이상이 북부 지역에 몰려 있다. 그라파는 보통 연속식 증류기를 사용해 만들지만, 장인적인 생산자들은 주로 단식 증류기를 사용해 풍미의 밀도를 높인다. 증류할 때는 물을 섞어서는 안 되며, 증류한 스피릿의 알코올 함량은 86%를 넘지 않아야 한다. 증류 후에는 물을 섞을 수 있으며, 완성된 그라빠의 알코올 함량은 37.5%에서 60% 사이다. 단, 지리적 표기를 하려면 알코올 함량이 40%는 넘어야 한다. 물 외에도 2% 이내의 설탕과 3% 이내의 천연 첨가물 사용이 허용된다. 하지만 최고급 그라빠는 첨가물 없이 신선한 비나치아를 증류한 원액만 사용해 풍미를 낸다. 특히 단일 품종을 사용한 그라빠는 더욱 복합적이고 밀도 높은 풍미를 지니는 경우가 많다. 또한 피에몬테 등 서늘한 지역에서 재배해 산미가 높은 포도를 사용하는 경우 더욱 섬세하고 품질 좋은 그라빠를 얻을 수 있다.

그라빠의 종류는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주로 숙성 기간에 따라 구분한다. 최소 6개월 이상 숙성한 것은 비앙코(bianco) 혹은 지오바네(giovane)라고 부르는데, 보통 스테인리스 스틸이나 유리 소재 탱크에서 숙성한다. 가장 많이 생산되는 대중적인 스타일의 그라빠다. 나무통에서 6개월에서 12개월 숙성한 것은 아피나타(affinata), 12개월 이상 숙성한 것은 인베키아타(invecchiata), 18개월 이상 숙성한 것은 리제르바(riserva) 혹은 스트라베키아(stravecchia)라고 부른다. 나무통의 재료로는 오크는 물론 체리, 아카시아, 밤나무 등 다양한 목재를 사용한다. 그라빠 디 바롤로(grappa di Barolo) 같이 지리적 표시를 하거나 그라빠 디 모스카토(grappa di Moscato)처럼 단일 품종을 표기한 그라빠도 있다. 특히 품종을 표기한 그라빠는 그라빠 모노비티뇨(grappa monovitigno)라고 부르는데, 해당 품종을 85% 이상 사용해야 한다. 또한 모스카토나 소비뇽 블랑 같은 아로마틱한 품종으로 만든 그라빠를 그라빠 아로마티카(grappa aromatica)라고 부른다. 허브나 스파이스, 과일 등을 첨가하는 그라빠 아로마티짜타(grappa aromatizzata)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현대적 개념의 그라파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부터다. 2세기경 로마 병사가 바싸노 델 그라빠(Bassano del Grappa)라는 이탈리아 북부 마을에서 처음으로 그라빠를 만들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지만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 심지어 1950년대까지만 해도 그라빠는 그냥 아쿠아비테(aquavite)라고 불렸으며, 피에몬테에서는 전통적으로 코트(cot)라고 알려져 왔을 뿐이다. 1990년대까지도 대부분의 그라빠는 시골 촌부가 와인 양조 후 남은 찌꺼기로 만드는 거친 증류주일 뿐이었다. 1970년대가 되어서야 일부 생산자들이 양질의 그라빠를 만들기 시작했고, 1990년대 이후 이태리 요리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라빠 또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전통적으로 베네토 지역에서 그라빠는 식사 후에 에스프레소와 함께 제공된다. 카페 코레토(caffe correto)라고 하는데, 제공된 그라빠를 커피에 조금 넣어 즐긴 후에 다 마신 에스프레소 잔에 나머지 그라빠를 넣고 스월링 한 후 마시는 방법이다. 그라빠 자체만 마실 때는 립 부분이 살짝 벌어진 튤립 모양의 잔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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