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후배들과 함께 방문한 창신집.
동대문역 부근 창신시장 끝에 있는 음식점인데, 창신 시장의 재료들을 모아 음식을 낸다고 해서 '창신zip'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대략 90% 이상 창신 시장의 재료를 사용하신다고.
홀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면 요렇게 고즈넉한 공간이 있다. 약 25~30명 정도가 들어갈 만한 제법 넓은 공간인데, 아마 '창신카세'라고 부르는 코스 요리를 주문한 고객 전용으로 사용하시는 듯하다. 바깥 홀도 제법 넓어서 워크인 손님들도 문제없이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밖에는 요렇게 옛날 오락기들도 있다.
소싯적엔 오락실에 있던 저 묵찌빠 기계로 돈깨나 땄었는데... ㅋㅋㅋ
한쪽에는 자개장 문을 활용한 벽이 눈길을 끈다. 예전엔 좀 사는 집에 가면 다 이런 자개장이 있었는데 ㅎㅎㅎ
창신집은 와인 반입이 가능하다. 콜키지는 병 당 만 원. 참 귀여운 와인 글라스를 제공한다. 물론 잔에 민감한 사람은 별도로 준비하는 게 좋겠지만.
준비해 간 와인들. 디저트용으로 빈 산토(Vin Santo) 하프 보틀도 한 병 준비했다.
기본 세팅은 여느 밥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창신집의 메뉴. 옆으로 넘기면 전체 메뉴를 볼 수 있다. 가격이 상당히 리즈너블 한데, 시장에서 바로바로 수급하는 싱싱한 재료를 사용해 만든다고 하니 더욱 믿음이 간다. 술도 제법 다양한 주종을 충실하게 갖춰 두셨다. 굳이 술을 준비하지 않고 그냥 시켜서 먹어도 괜찮을 듯.
우리가 주문한 창신카세. 나름 8코스인데 4만 원이라니, 거저에 가깝다. 게다가 시장 안에 있기 때문에 모바일 온누리 상품권을 사용해 1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상당히 가성비 충만한 집이 아닐 수 없다.
창신 한입. 주전부리로 딱 좋다.
첫 와인은 Louis Cheze, Pagus Luminis Condrieu 2020. 밀도 높은 핵과와 열대 과일 풍미에 은근한 요거트 뉘앙스가 조화롭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둥근 질감을 타고 진한 노란 과일 풍미가 드러나며, 스모키 미네랄, 오크 힌트가 가볍게 스친다. 음 역시, 루이 셰즈의 와인은 직관적으로 맛있다. 이런 와인을 싫어할 수가 있을까?
먹느라 바빠서 깜빡하고 단독 샷을 안 찍었네ㅋ
화강암 토양에서 재배한 엄선한 비오니에(Viognier) 100%로 양조해 오크통에서 9개월 숙성한다. 포도나무 수령은 25년.
루이 쉐즈(Louis Chèze)는 1978년 루이 셰즈가 설립한 가족 경영 와이너리로, 리옹 남쪽으로 60km 떨어진 리모니(Limony)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와이너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생 죠셉(Saint Joseph)에 1ha의 포도밭만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북부 론 중심에 꽁드리유(Condrieu), 코트 로티(Cote Rotie) 등을 포함한 총 30ha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다. 설립 초기부터 북부 론의 유명 생산자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이를 기반으로 시라(Syrah), 비오니에(Viognier), 마르산느(Marsanne), 루산느(Roussanne) 등 토착 품종을 사용해 북부 론을 대표하는 와인을 만들고 있다.
도메인 쉐즈는 테루아를 온전히 드러내기 위해 모든 포도밭에 뤼트 레조네(Lutte Raisonnée) 농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병충해 등의 위험이 포도나무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경우에만 화학약품 등을 최소한으로 사용하는 농법으로, 상황에 맞게 유연한 대응을 할 수 있다. 또한 구획 별로 지형, 토양, 미세기후 등에 맞추어 세심하게 관리하는데, 예를 들어 경사가 적당한 포도밭은 철사를 사용한 트렐라이징 시스템(trellising system)을 활용하고, 바람이 세고 경사가 가파른 곳은 나무 말뚝을 사용해 포도나무를 지지하는 식이다. 포도는 모두 손으로 수확하며 포도밭에서 한 차례, 와이너리에서 1~2차례 선별한 양질의 포도만을 사용한다. 숙성을 위한 오크통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데, 결코 오크 뉘앙스가 두드러지지 않고 우아한 와인을 만든다. 이런 섬세한 작업을 통해 완성된 도메인 쉐즈의 와인은 테루아와 개별 빈티지의 특징이 명확히 드러난다.
심플한 제철 샐러드.
창신 시장의 육회.
계란 노른자를 올리지 않았는데도 감칠맛이라는 게 폭발한다. 아쥬 맛있었음.
육회와 함께 보르도 레드. Chateau Beaulieu 2019. 라랑드 드 뽀므롤(Lalande-de-Pomerol) 지역 와인인데 붉은 꽃향과 함께 블랙커런트 풍미가 도드라지는 게 흥미로웠다. 이외에도 초반엔 부엽토, 녹슨 쇠 같은 철분과 미네랄 뉘앙스가 강하게 드러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붉은 자두 등 과일 풍미가 예쁘게 살아난다. 타닌은 꼿꼿하지만 많지는 않으며, 드라이한 미감과 적절한 산미가 어우러져 좋은 균형을 이룬다. 구조감은 느껴지지만 바디는 풍만하지 않은, 마실 수록 매력이 느껴지는 와인. 아마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을 듯한데, 그렇다면 데일리-위클리로 마시기 딱 좋은 것 같다.
칠리 콘 카르네.
안에 들어있는 등갈비는 먹기 좋게 해체한 후, 빵 위에 올려 먹으면 대존맛이다. 멕시칸 같은 느낌도 있어서 바게트 대신 타코나 나초를 곁들여도 좋을 것 같다.
음식은 남미, 와인은 북미. Heitz Cellar, Cabernet Sauvignon 2016 Napa Valley. 알싸한 미네랄이 살짝 스친 후 검붉은 체리, 붉은 베리, 라즈베리 같은 영롱한 베리 풍미에 삼나무와 바닐라 오크 뉘앙스가 온화하게 감돈다. 둥글고 부드러운, 딱 마시기 좋은 상태의 나파 캡. 누가 마셔도 그냥 맛있게 마실 수밖에 없을 듯. 뒤로 갈수록 변화가 적어서 살짝 아쉬웠지만, 어찌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전형적으로 예쁘고 맛있는 와인이었던 것.
요 와인은 하이츠 셀러의 엔트리급 와인이지만, 그들의 스타일과 품격을 느끼기엔 모자람이 없는 듯.
하이츠 셀라는 1961년 조 하이츠(Joe Heitz)가 설립한 이래 60년을 한결같이 나파 밸리(Napa Valley)의 테루아를 고스란히 드러내기 위해 정진해 왔다. 1966년 나파 밸리 최초의 싱글 빈야드 와인 마르타스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Martha’s Vineyard Cabernet Sauvignon)을 출시했을 당시 사람들은 그저 가격을 올리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하이츠 셀라는 묵묵히 그들의 길을 걸으며 나파 밸리의 독특한 개성을 담아내는 프리미엄 와인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미국 와인에 대한 전 세계의 인식을 바꿔 놓은 1976년 ‘파리의 심판(Judgement of Paris)’ 테이스팅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고, 10년 후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가 파리의 심판 10주년 기념으로 진행한 리바이벌 테이스팅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함으로써 그들의 철학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마르타스 빈야드는 특유의 민트 향을 중심으로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의 순수한 품격을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하는 와인이다. <와인 스펙테이터>는 마르타스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 1974년 빈티지를 ‘20세기의 와인 12선’에 선정하며 이 와인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번 인증했다.
튀김은 감자 고로케가 나왔다. 메뉴 자체가 취저라 맛있게 냠냠.
숙성회 초밥. 이날 유일하게 아쉬웠던 메뉴인데, 특히 샤리 쪽이 안타까웠다. 밥의 익힘 정도나 샤리의 크기, 쥔 강도 등이 전반적으로 아쉬웠다. 그냥 밥은 빼고 숙성회만 내시는 게 어떨까 싶은 생각. 소스를 곁들인 전복이랑 왼쪽 앞의 단무지는 상당히 맛있었음 ㅋㅋㅋ
바지락 술찜... 에는 면이 말아져서 나왔는데, 식사용으로도 속풀이용으로도 아주 좋았다.
디저트.
디저트와 함께 마신 Castello di Meleto Vin Santo del Chianti Classico 2009. 에나멜 같은 산화 뉘앙스와 말린 과일, 달콤한 시럽, 조청 같은 풍미. 단맛이 적지 않지만 새콤한 산미가 어우러져 산뜻한 느낌이 들 정도다. 역시 빈 산토는 진리.
맛있게 잘 먹었다. 양도 적지 않은 편이고. 조만간 한 번 더 가게 될 듯.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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