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방문하는 스시이젠(鮨いぜん).
예약이 너무나 많이 밀려 있어서 방문한 날 바로 다음 방문 일정을 잡아야 한다.
여기서 좋은 인연도 만나서 같은 일정을 잡아 종종 술을 함께 나누곤 한다. 여기서 맛본 고급 사케는 거의 다 그분들 덕. 그런데 너무 좋은 술을 많이 들고 오셔서 죄송할 지경이다;;; 그래서 우리 일행도 나름 신경 써서 술을 들고 오는데 항상 그보다 더 좋은 술을 준비하시니... (털썩) 그냥 감사히 마실 밖에...
뒤에 찍힌 보조 셰프님은 이날을 마지막으로 심리학 공부를 하러 떠나신다고.
우리가 준비한 술도 함께... 여섯 명이 9병을 마셨으니 각 1.5병. 모두 훌륭한 술이었지만 다음날이 매우 힘들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복어의 정소로 스타트. 그나마 요걸로 시작해서 위장이 많이 보호되지 않았을까 싶은.
사시미가 등장하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순서 무시하고 가장 잘 칠링 된 샴페인부터 시작.
Champagne Henri Giraud, Hommage au Pinot Noir Brut
완숙 핵과, 모과 풍미와 함께 은은한 이스트 향과 명확한 오크 뉘앙스. 입에서는 부드럽고 우아한 주질이 매력적이며 약간의 산화향이 복합미를 더한다. 앙리 지로의 샴페인은 자신만의 명확한 스타일이 있는 듯. Esprit에서 느꼈던 인상이 여기서도 이어진다. 물론 품격은 이쪽이 훨씬 더.
제초제, 살충제 쓰지 않고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포도를 재배하며 양조 시 개입도 이산화황 사용도 최소화한다고. 양조에는 작은 오크통이나 암포라만 사용하며 스테인리스 스틸은 사용하지 않는다. 양리 지로의 독특한 스타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마 이게 아닐까 싶은데... 뇌피셜.
데고르주멍 일자는 2021년 6월 4일. 인증수단처럼 선명한 지문은 누구의 것인가;;;
굴튀김. 고소하고 바삭한 것이 앙리 지로 오마주와 찰떡궁합.
두 번째는 champagne Hugues Godme, Blanc de Noirs Grand Cru Extra-Brut. 자두, 서양배, 허브, 꿈꿈한 힌트의 숙성 뉘앙스가 아주 살짝, 가볍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갈은 유자 같은 풍미와 시트러스 산미가 새콤한 인상. 시간이 지날수록 맛있어지는 느낌이라 천천히 마셨어야 했는데 밀린 게 넘나 많아서... 가 아니라 사실 맛있으니까 계속 먹었다;;;
몽타뉴 드 랭스(Montagne de Reims)의 그랑 크뤼 포도밭 베르즈네(Verzenay)와 베르지(Verzy)에서 재배한 피노 누아만 100% 사용한 블랑 드 누아 샴페인. 2006년부터 비오디나미 농법을 적용했다. 60%는 리저브 와인을 사용했으며 70%는 오크 통에서 6개월 숙성했다. 병입 후 셀러 숙성 기간은 60개월. 2013년 빈티지를 기반으로 한 것 같고 데고르주멍은 18년 12월.
샴페인 위그 고드메(Champagne Hugues Godmé)는 베르즈네에서 5대째 샴페인 하우스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30년대에 이미 샴페인을 직접 병입했다. 현재 몽타뉴 드 랭스 5개 빌라주에서 각각 다른 80개 구획, 11 헥타르에 걸쳐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절반 이상은 샤르도네(Chardonnay), 30%는 피노누아(Pinot Noir), 나머지는 피노 뫼니에(Pinot Meunier)를 재배한다. 그들은 유기농 인증에는 관심이 없지만 많은 유기농법을 이용하며 정기적으로 포도나무에 식물성 필수 오일이나 영양제를 공급한다. 또한 다양한 지피작물(cover crops)을 이용하는데, 그러면 포도가 원하는 당도에 늦게 도달하지만 그만큼 산도가 집중되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또한 뿌리가 깊게 자리 잡도록 밭을 갈아주어 포도나무가 더 안정되고 미네랄도 풍부하게 표현한다.
샴페인 대부분은 에나멜-스틸 탱크에서 발효하고 각 구획 혹은 비슷한 떼루아 마다 나뉘어 양조한다. 오크통 숙성 비율은 약 40%. 오크에서 와인을 숙성할 때 좀 더 와인의 특징이 조화롭게 표현되어 점차 오크통의 비율을 늘리고 있다고 한다. 와인에 따라 젖산 발효 진행여부를 정한다. 변화무쌍한 날씨가 이어졌을 때는 젖산 발효를 적게 하고 리저브 와인(reserve wines)은 젖산 발효를 하지 않는다. 여과 없이 병입을 하며 2009년 이후로 MCR(Moût Concentré Rectifié= Concentrated and Rectified Grape Must; 포도 주스 농축액)를 사용해 Dosage를 한다. 이를 통해 풍미를 더욱 선명하고 순수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냥 대방어도 맛있었지만, 셰프님의 손길이 가미된 마끼가 더 취향에 맞았다.
중간 해장. 요런 포인트가 참 좋다.
화이트 와인을 마실 차례. Marc Colin et Ses Fils, Chassagne-Montrachet "Margot" 2020. 지난 일본 여행 때 오사카 타카무라에서 사 온 녀석. 이날의 모임을 위해 골랐는데,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깨 볶는 듯한 향이 전면에 깔리는데 서양배, 흰 자두 같은 흰 과일은 가볍고 신선한 편이다. 전만적으로 너무 밀도가 높거나 무겁지 않아 스시와 페어링 하기 딱 좋은 와인이었다.
언덕 하단에 위치한 점토-석회질 토양의 4개 파셀에 1970년, 1985년, 2005년 식재한 샤르도네를 적절히 개입해 재배(culture raisonnée)하여 손 수확해 사용한다. 누매틱 프레스로 가볍게 압착해 프렌치 오크 배럴에서 12개월, 커다란 vat에서 6개월 발효 및 숙성하며, 정제 및 여과해 병입한다.
마르크 콜랭(Marc Collin)은 생-토방을 근거지로 샤샤뉴-몽라셰, 쀨리니-몽라셰(Puligny-Montrachet) 등에서 와인을 만드는 유력 가문 출신이다. 1970년대 말 아내와 함께 도멘을 설립했고 1999년 은퇴해 현재는 세 자녀가 와인을 만들고 있다. 기억할 점은 마르크 콜랭의 넷째가 바로 최근 PYCM(Pierre-Yves Colin-Morey)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피에르 이브 콜랭이라는 것. 사실 마르크 콜랭이 와인메이커로 가장 기대를 많이 했던 게 바로 요 막내였다는데, 좀 더 자유롭게 와인을 만들고 싶었던 그는 결혼 후 아내와 함께 PYCM을 설립했다. Robbie Williams가 Take That을 탈퇴한 것과 유사한 건가;;;
다음에 타카무라에 다시 간다면(?!) 요 집의 본진이라는 생-토방(Saint-Aubin) 와인을 골라올까 싶다. 혹은...
스시이젠은 그냥 스시도 맛있지만 중간중간 주시는 마끼들이 정말... 근데 내 손 왜 이리 거친가... 역시 노동자의 손인가;;;
아귀 간을 갈아서 올린 스시도 참 맛있었는데... 생선이 뭐더라;;;
다시 샴페인으로... Champagne Agrapart & Fils, Grand Cru Blanc de Blancs Extra-Brut. 동석한 분들이 가져오신 건데 아니, 사케도 좋은 걸 가져오시면서 샴페인까지 이렇게 하이 엔드를 가져오시면...ㅠㅠ 어쨌거나 이건, 정말 넘나 맛있어서 말로 묘사를 못하겠는 수준이었다. 막 구운 브리오슈 같이 산뜻하면서도 구수한 이스티함에 잔향은 꿀같이 농밀하다. 와, 예전에 마셨던 Terroirs도 맛있었지만 이건 정말 넘사벽...
레이블을 지워 놓은 건 아마 검역 규정 때문인 거 같은데... 2012년 빈티지에 병입은 2015년 5월, 데고르주멍은 2018년 5월에 한 걸까? 그렇다면 병입 전 숙성기간이 상당히 길다는 얘긴데...
샴페인 아그라파(Champagne Agrapa)는 꼬뜨 데 블랑(Côte des Blancs) 아비즈(Avize)에 위치한 RM으로 보유한 12ha의 포도밭은 대부분 그랑 크뤼다. 포도밭은 유기농으로 관리하며, 양조 또한 대부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병입 시 정제와 여과를 하지 않고 르뮈아주(remuage) 또한 지로팔레트를 쓰지 않고 직접 한다고. 데고르주멍 또한 출시 직전에 진행한다.
이번에는 사케 타임.
키무라 글라스가 참 예쁘다. 일행 중 한 명이 요걸 기어이 살 것 같... 은데 ㅎㅎㅎ 나도 끼어서 살까 고민 중.
담겨 있는 술은 요거다... 고쿠류 준마이다이긴조(黑龍 純米大吟釀). 드라이한 미감과 의외의 유산향(?)이 레이블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데 그 뒤에는 시원한 배향과 깔끔한 피니시가 남는다. 와, 역시... 보틀의 포스 이상으로 빼어난 술이다.
후쿠이현(福井縣)의 고쿠류슈조 역시 사케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인기 있는 주조장인 듯. 네이버 검색만으로도 상당한 포스팅이 보인다. 효고현(兵庫県)에서 재배한 야마다니시키(山田錦) 100%, 정미보합 35%, 일본주도 +4, 알코올 16도.
도미,
한치,
아카미,
주도로,
소스를 올려서 한 번 더.
일행 중 한 명이 넘나 좋아하는 에비 프라이 마끼. 이거 하나만 해도 정말 푸짐해서 술이 연거푸 들어간다.
피조개.
두 번째 사케, 호우오우비덴 준마이다이긴조 수프림(鳳凰美田 純米大吟釀 SUPREME). 2018은 빈티지... 인가했는데 아닌 듯. 상당히 화사한 흰 꽃 향과 신선한 배 향이 아주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어찌 보면 가벼운 바이주와 유사한 향이 훨씬 더 가볍고 향긋하게 떠오르는 느낌이랄까. 요것도 굿.
효고현산 특상미 야마다니시키 100%로 양조했다. 정미보합 30%, 알코올 16-17도. 제조년월은 2022년 12월.
빙깐히이레(瓶燗火入れ)에서 히이레(火入れ)는 열처리를 했다는 뜻이다. 그러면 빙칸(瓶燗)은? 열처리는 술의 풍미를 안정화하고 보관을 쉽게 하기 위한 것인데, 사실 니혼슈를 포함한 술은 열에 약하다. 그래서 열에 의한 풍미 변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술을 채운 병을 물을 담은 솥(통?)에 넣고 열을 가해 천천히 65도까지 수온을 올려가며 열처리 하는 방법이 바로 '빙칸히이레'다. 일반적인 열처리 방식에 비해 인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만, 열처리 중인 술이 외부 공기와 접촉하지 않아 술 향미 성분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주질 또한 과하게 해치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호오비덴을 만드는 고바야시슈조(小林酒造) 주식회사는 도치키현(栃木県)의 양조장이다. 고바야시슈조를 구글 검색하면 네 곳의 양조장이 나오는데, 그래서인지 다들 양조장 이름이 아닌 각자의 브랜드를 홍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병 모양이 아주 유려하다. 그런데 초점이 기가 막히게 셰프님한테 분산되었....
우니마끼.
단새우,
관자.
Maldonado Family Vineyards, Parr Vineyard Chardonnay 2019 Sonoma County. 토스티 오크 뉘앙스가 가볍게 드러나며 완숙 핵과, 바나나, 열대과일 등 밀도 높은 과일 풍미. 전반적으로 첫 향은 단정한 편인데 맛은 전형적으로 미국스럽다. 좋은 와인인데 오늘 와인들의 전반적인 성격 때문에 살짝 밀린(?) 감이 있다.
본진은 칼리스토가(Calistoga)에 있는 듯.
등 푸른 생선으로...
우나기,
소면으로 선주후면을 완성하는 와중에,
하나아비(花陽浴). 이전에 마셨던 것은 2종 모두 레이블만큼이나 향이 화사했는데 요것 또한 마찬가지. 노트를 해 두진 않았지만 그 경향성이 그대로 이어졌던 듯. 덕분에 정말 좋은 사케 많이 마셔 본다.
준마이 긴조 무로카나마겐슈(純米吟釀 無濾過生原酒). 미야마니시키(美山錦) 100%, 정미보합 55%, 알코올 16도. 난요죠조(南陽釀造)는 사이타마현(埼玉県)에 위치한 양조장이다.
마끼를 마지막으로 긴 식사를 마무리. 술도 좋고 음식도 좋았지만, 사람이 가장 좋았던 날이었다. 너무 흥겹게 먹고 마시고 떠드느라... 대화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기분만은 매우 좋았던 게 기억에 남았다.
하겐다즈 바닐라라는데, 왜 집에서 먹는 것보다 쫀득한 걸까. 고소한 들기름은 논외로 하고 말이지.
어쨌거나 계속 이어가야 할 모임. 조만간 또, 다음 이 시간에.
20230102 @스시이젠(신용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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