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하는 시칠리아 에트나(Etna) 지역의 와인. 이 와인을 오픈할 때면 제발 에트나의 화산 활동이 잠잠해지길 기도하게 된달까.
사실 식사 메뉴가 마늘 전복 버터구이여서, 화이트 와인을 고를까 했었다. 하지만 찾아보니 의외로 전복에는 가벼운 레드 와인을 페어링 하라는 의견이 많았다. 하긴, 전복은 그리 비린 해산물도 아닌 데다 버터까지 사용했으니, 바디감 있는 화이트는 물론 가벼운 레드까지도 무난히 어울릴 것 같았다.
게다가, 한우 업진살도 함께 곁들이기로 했기에, 결론은 요 와인으로.
피에트로 카치오르냐(Pietro Caciorgna)는 1953년 토스카나 까솔레 델사(Casole d'Elsa) 지역에서 시작돼 3대를 이어 온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에트나 지역에 진출한 것은 2006년. 현 소유주이자 와인메이커 피에트로 카치오르냐는 친구였던 테누타 델레 테레 네레(Tenuta delle Terre Nere)의 마르코 데 그라치아(Marco de Grazia)의 초대로 에트나에 방문했고, 에트나의 테루아와 와인에 큰 감명을 받았다. 구매할 만한 포도밭을 수소문하던 그는 파소피시아로(Passopisciaro)와 란다쪼(Randazzo) 사이에 있는 100여 년이 넘은 필록세라 이전 네렐로 마스칼레제(Nerello Mascalese) 포도밭을 인수했다. 이후 추가로 포도밭을 구매하고, 직접 재배한 포도와 유사한 성격의 포도를 추가로 구매하면서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보유한 포도밭은 모두 에트나 산 북쪽 해발 700~800m에 위치한 빼어난 포도밭들이다.
그가 처음 만든 와인은 시칠리아 방언으로 'a little'이라는 뜻의 N* 안티키아(N * Anticchia). 그리고 2009년부터 키아우리아(Ciauria), 2013년부터 구아르도일벤토(Guardoilvento)를 추가로 생산하고 있다.
오늘 마실 와인은 치아우리아.
해발 750m의 북/북동향 언덕의 모래질 섞인 화산 토양에서 필록세라 이전 루트 스톡을 지닌 네렐로 마스칼레제 100%를 사용해 양조한다. 알코올 발효 및 젖산 발효는 모두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진행하며, 프렌치 바리크에서 6개월, 병입 후 최소 6개월 숙성해 출시한다.
Pietro Caciorgna, Ciauria Etna Rosso 2019 / 피에트로 카치오르냐, 치아우리아 에트나 로쏘 2019
바닥이 다 비치는 영롱한 페일 루비 컬러에 오렌지 림. 바롤로 같이 아스팔트가 연상되는 미네랄리티가 인상적인데, 사워 체리, 석류 같은 붉은 베리 풍미가 상당히 밀도 높게 드러나 균형을 이룬다. 은은한 카카오 힌트와 토스티 뉘앙스 또한 매력적. 가벼우면서도 확실한 인상을 남기는 맛있는 에트나 로쏘다.
와, 이거 물건이네... 네비올로와 피노 누아의 장점만을 모아둔 것 같다는 에트나의 장점을 정말 정확히 표현하는 와인이 아닐까 싶다.
배큐빈으로 막아두고 3일에 걸쳐 마셨는데 마지막날까지 아주 훌륭하다. 다음에 보면 또 사야 할 와인. 구아도일벤토까진 사놨는데 N*안티키아를 안 사둔 게 아쉽네...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