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부르고뉴 와인 모임.
한 병은 블라인드로 준비했다. 내추럴이 아닌 와인을 비교군으로 제시하려는 목적.
사람들이 다 모이길 기다리며 샴페인 한 잔. 그런데 다 모이기도 전에 샴페인이 동나 버릴 뻔 했다. 사실상 이날 최고 인기 와인은 샴페인이라는 아이러니;;; 물론 다른 와인들도 평은 나쁘지 않았지만.
아래 내용 중 시음 노트는 간단히 인상만 메모했다.
테흐세(Tercet)
테흐세는 도멘 드 라 크라(Domaine de la Cras)의 와인메이커 마크 소야르(Marc Soyard)와 친구인 플로렁 람베르(Florent Lambert)의 파트너십으로 탄생한 와이너리다. 마크 소야르는 최근 부르고뉴에서 가장 핫한 와인메이커로 손꼽힌다. 쥐라(Jura) 출신인 그는 와인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집안 출신이었지만, 15세에 와인을 처음 접한 후 흥미를 느껴 양조와 포도 재배를 공부했다. 이후 도멘 비조(Domaine Bizot)에서 6년 동안 포도밭 관리자로 일하며 장 이브 비조(Jean-Yves Bizot)에게 비오디나미 농법과 양조법을 배웠다. 그리고 2013년 디종 시에서 포도 산지로서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로 설립한 도멘 드 라 크라의 와인메이커로 선발됐다.
테흐세 와인 양조는 도멘 드 라 크라의 양조장에서 진행하며, 배양 효모 첨가 없이 간섭을 최소화해 만든다. 포도는 플로렁이 꼬뜨 드 뉘(Côte de Nuits)에서 재배하는 포도를 사용하며, 일부 친구들이 재배한 포도 또한 구매해 사용한다. 어찌 보면 가격이 너무 올라 버린 도멘 드 라 크라의 보급형 와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사용하는 포도밭은 다르지만.
Tercet, Bourgogne Aligote 2021 / 테흐세, 부르고뉴 알리고테 2021
처음엔 청포도 본염의 달콤함과 화사한 열대 과일 풍미가 경쾌하게 드러나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날 수록 페트롤 미네랄 뉘앙스가 곁들여진다. 입에서는 상큼한 신맛이 깔끔한 여운을 선사. 상당히 맛있는 알리고테. 절로 샤퀴테리 보드가 떠오르는 맛이다. 하지만, 엥간한 꼬뜨 드 본 빌라주 블랑들에 육박하는 가격이다 보니 자주 마시긴 힘들 듯.
찾아봐도 양조 방식에 대해 소개한 곳이 없다.
섹스탕(Sextant)
섹스탕을 설립한 쥘리앙 알타베르(Julien Altaber) 역시 부르고뉴 출신이 아니다. 부르고뉴 서쪽 블루 치즈 생산지로 유명한 오베르뉴(Auvergne) 출신이다. 부모 밑에서 낙농업자가 되려던 그는 16세 때부터 와인에 매력을 느껴 마꼬네(Mâconnais)와 보졸레(Beaujolais)의 여러 와이너리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2002년, 생 토방(Saint-Aubin)의 도미니크 드랭(Domonique Derain)과 일하면서 비오디나미와 내추럴 와인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다. 2007년 첫 섹스탕 와인을 만든 후 조금씩 돈을 벌어 포도밭을 매입했고, 2013년엔 제대로 된 양조장을 갖추게 되었다. 쥘리앙의 스승이었던 도미니크 드랭은 몇 년 전 은퇴하면서 그의 와이너리 도멘 드랭(Domaine Derain)을 쥘리앙에게 넘겼다. 따라서 현재 섹스탕과 도멘 드랭의 와인은 모두 쥘리앙 알타베르가 만들고 있다.
그는 전형적인 부르고뉴 스타일과는 다른 독창적인 와인을 만든다. 포도 재배부터 제초제 등 화학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배양 효모 첨가 없이 발효하며. 이산화황(SO2) 또한 거의 사용하지 않거나 극소량만 사용한다. 정제 및 여과 없이 병입해 와인의 풍미를 그대로 드러낸다.
Sextant, Bourgogne La Fleur au Verre Chardonnay 2021 / 섹스탕, 라 플뢰 오 베르 부르고뉴 샤르도네 2021
스모키한 미네랄에 '자연스러운' 뉘앙스. 천도복숭아, 자두 같은 핵과 풍미. 입에서는 시트러스 산미가 잔잔히 드러난다. 편안하긴 한데, 크게 임팩트는 못 느꼈다.
퓔리니 몽라셰(Puligny-Montrachet) 부근 포도밭에서 조금 일찍 수확한 샤르도네를 부드럽게 압착해 천천히 자연스럽게 발효한 후 효모 잔여물과 함께 젖산 발효한 후 커다란 배럴에서 6개월 숙성한다. La Fleur au Verre는 '잔 속의 꽃'이라는 뜻.
Sextant, La Fleur au Verre Vin de France Rouge 2021 / 섹스탕, 라 플뢰 오 베르 뱅 드 프랑스 루즈 2021
처음에 슬쩍 드러나는 환원취를 걷어내고 나면 향긋한 꽃향기와 딸기 같은 붉은 베리 풍미에 토스티 오크 힌트가 슬쩍 곁들여진다. 입에서는 상큼한 신맛과 섬세한 질감, 가벼운 바디로 역시나 술술 넘어간다. 요건 화이트보다는 조금 더 흥미로웠던.
코트 도르(Côte D’Or)의 언덕에 위치한, 다른 지역보다 조금 늦게 익는 30년 수령 피노 누아를 사용해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양조한 와인이다. 화이트 와인 세디먼트(효모)를 사용해 발효를 4-5일 만에 신속히 진행한 후, 압착하여 오래된 오크통에서 6개월 정도 짧게 숙성한다.
도멘 드랭(Domaine Derain)
도멘 드랭은 도미니크 드랭이 아내 카트린(Catherine)과 함께 생 토방(Saint-Aubin)에 설립한 와이너리다. 최근 그의 제자 쥘리앙 알타베르에게 도멘을 넘기고 아내와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그러니 도멘 드랭은 섹스탕의 형제 와이너리다. 하지만 아직 도미니크가 와이너리에 일부 관여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가 만드는 와인은 레이블에 Catherine & Dominique Derain 이라고 표기한다고. 1955년생인 도미니크 드랭은 오스피스 드 본(Hospices de Beaune)에서 태어났으며, 원래는 오크통 제작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와인은 오크 뉘앙스를 최대한 절제하는 스타일이라는 게 흥미롭다. 이후 진로를 포도 재배로 정하고 부르고뉴의 여러 도멘에서 포도 재배와 양조 경험을 쌓았고, 본(Beaune)에서 양조를 공부하다가 아내 카트린을 만난다. 1988년 본격적으로 본인의 와인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생 토방 부근에 5.5 헥타르의 포도밭을 매입한다. 이후 비오디나미 농법을 적용했고, 부르고뉴 내추럴 와인의 선구자가 되었다.
도멘 드랭의 포도밭은 올드 바인이 잘 보존돼 있으며 에코서트(Ecocert)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수확량을 제한하고 손 수확을 통해 고품질의 포도만 사용한다. 양조 과정에도 어떠한 인위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다. 이산화황은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화한다.
Domaine Derain, Bourgogne Blanc Landre 2020 / 도멘 드랭, 부르고뉴 블랑 랑드르 2020
요구르트 같은 유산향과 이스트 풍미, 은은한 오크 뉘앙스가 자몽 같은 시트러스 풍미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입안에서의 질감이 매우 편안하며 우아한 산미가 고급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와, 이 가격대에 이런 품질이라면 물건이다. 다음 빈티지가 보이면 무조건 구매 예정.
랑드르(Landré)는 생 토방 마을 부근의 0.3 헥타르 크기의 구획(lieu dit)으로 레 리오(les Rieux)와 인접해 있다.
Domaine Derain, Bourgogne Rouge Les Riaux 2020 / 도멘 드랭, 부르고뉴 루즈 레 리오 2020
고혹적인 붉은 꽃향기와 붉은 자두, 붉은 베리 풍미. 앵두나 석류 같은 신선한 작은 베리 풍미도 섞여 있는데, 전반적으로는 두터운 인상이다. 입에서는 알싸한 스파이스에 살짝 꼬릿한 힌트의 내추럴한 뉘앙스. 복합적인 풍미가 벨벳 같은 질감을 타고 예쁘게 전해진다. 전반적으로
레 리오(les Riaux)는 0.5 헥타르가 채 되지 않는 작은 포도밭이다. 손 수확한 포도는 대부분 줄기를 제거하지만 일부만 홀 번치로 남겨서 사용한다. 파쇄한 후 커다란 나무통에서 2주 정도 발효 및 침용하며, 이후 오래된 오크 배럴에서 6개월 숙성한다.
쥘리앙 수니에(Julien Sunier)
쥘리앙 수니에는 부르고뉴 디종 출신으로 조르주 후미에(Georges Roumier)에게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를 배웠다. 이후 뉴질랜드와 캘리포니아에서 유기농과 비오디나미 재배와 양조 경험을 쌓은 후, 2005년 보졸레의 산골짜기에 와이너리를 세웠다. 그는 빠른 시일 내에 명성을 쌓았고, 보졸레 내추럴 와인의 탑클라스로 평가받는다. 벤저민 르윈(Benjamin Lewin) MW는 이봉 메트라(Yvon Metras), 막셀 라피에르(Marcel Lapierre)와 함께 줄리앙 수니에를 보졸레 최고의 와인 메이커로 꼽았다. 이자벨 르쥬롱(Isabelle Legeron) MW 또한 자신의 저서 <내추럴 와인>에서 줄리앙 수니에의 레니에를 소개했다. 고든 램지의 3스타 레스토랑에는 그의 모르공이 매년 리스팅 된다.
쥘리앙 수니에는 부르고뉴 샹볼 뮈지니 같은 우아하고 섬세한 와인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숙성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보졸레 크뤼 와인들은 모두 조르주 후미에의 손자 크리스토프 후미에(Christophe Roumier)로부터 공급받은 오크통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오크통들은 3~9년간 샹볼 뮈지니(Chambolle Musigny)를 숙성시켰던 통들이라고. 현재 레니에(Regnier), 모르공(Morgon), 플뢰리(Fleurie) 세 아펠라시옹에 총 9헥타르의 포도밭을 소유하고 있다.
Julien Sunier, Morgon 2021 / 쥘리앙 수니에, 모르공 2021
영롱하게 맑은 다홍빛 컬러가 참 아름답다. 알싸한 스윗 허브와 붉은 꽃다발, 작은 붉은 베리 풍미가 은은하게, 하지만 밀도 높게 드러난다. 아직 조금 닫힌 느낌인 듯. 몇 년 숙성하면 훨씬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 한 병 가지고 있는 건 5년 이상 숙성해야지. 바로 즐기기엔 레니에(Regnier)가 훨씬 좋다.
모르공에 위치한 오 뻬레 (Aux Perrets), 크로아 드 쉐브르(Croix de Chèvre), 외이아(Oeillat), 벨르뷰(Bellevue), 엉 자냉(en Janin), 엉 루이에르(en Ruyères), 엉 레베크(en l’Evêque) 등 7개 구획에서 재배한 포도를 사용했다. 해발 270-430m에 위치한 남향, 남동향 포도밭들로, 평균 수령은 60년이다. 비오디나미 농법으로 제초제 및 이산화황을 사용하지 않으며, 유기농 비료만 사용한다. 손 수확한 포도는 10일간 탄산 침용한 후, 다시 10일간 세미 탄산침용을 진행해 싱그럽고 향긋하면서도 복합적인 풍미를 얻는다. 알콜 발효가 끝나면 꼬뜨 도르에서 구입한 고대 수직 압착기를 사용해 포도를 압착하여 맑은 주스를 얻는다. 이후 후미에의 샹볼 뮈지니를 숙성했던 바리끄에서 9-11개월 동안 숙성해 필터링 없이 병입한다.
그리고 대조군으로 사용했던 블라인드 와인은 바로,
Domaine Michel Gros, Bourgogne Cote d'Or 2019 / 도멘 미셀 그로, 부르고뉴 코트 도르 2019
2017년 제정된 부르고뉴 코트 도르 AOP 와인으로 나도 처음 마셔 본다. 그런데, 이거 내가 블라인드로 받았으면 미국 피노라고 했을 것 같다. 완숙한 과일 밀도가 대단히 높고 정향과 시나몬, 오크 뉘앙스도 전면에 드러난다. 질감과 바디감 모두 레지오날급 부르고뉴의 섬세하고 하늘하늘한 인상이 아니랄까. 미셀 그로가 원래 좀 강건한 스타일이지만, 이건 근육을 생각보다 훨씬 많이 키웠달까. 앞의 와인들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스타일인데, 선호도는 이게 더 높았다는 게 두 번째 아이러니 ㅋ
샴페인 & 화이트 떼샷.
이번엔 레드... 블라인드는 빠졌네;;
음식 사진은 애초에 찍을 생각조차 없었... 그런데 시푸드살롱마레스타 음식은 정말 싸고 맛있었다. 와인에 집중하다보니 음식을 많이 못 시킨지도 모르고 있다가 계산할 때 보니 금액이 너무 적어서 죄송했다는.. 다음에 방문하면 많이많이 시킬게요ㅠㅠ
아름다운 떼샷... 부르고뉴 내추럴 와인도 가성비로 즐길 수 있다!!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