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던 와인들이 모두 모였다. 내 흙수저 인생에 이런 라인업은 몇 번 없을 듯.
Chateau Margaux 2008. 소위 5대 샤토 중 하나. 감사하게도 참석자 한 분이 국내에서 구매 후 셀러링 하던 걸 가져오셨다.
Chateau La Mission Haut-Brion 2018 & 2011. 이날의 호스트가 일본에서 직구로 구매한 온 와인들이다. 샤토 오브리옹과 길 하나 사이로 이웃한 자매집인데 종종 오브리옹을 능가하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특히 파커 옹 현역 시대에 높은 평가를 받았던 그라브 그랑 크뤼 클라쎄.
Chateau Haut-Brion 1995. 미국에서 직구한 와인으로 이날의 모임의 메인 와. 그리고 짜배기(?)로 끼어든 Chateau de Beaucastel, Chateauneuf-du-Pape 2001. 워낙 빼어난 와인이므로 보르도 그랑 크뤼 클라쎄들에 뒤지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어쩌면 능가하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잇못;;;)
식전주는 Tio Pepe, Fino en Rama. 티오페페의 피노 셰리야 뭐 말해 뭐 해.
솔까 피노 셰리 특유의 톡 쏘는 풍미가 이후 와인들에 영향을 미칠까 살짝 걱정했... 기는 개뿔. 시저 샐러드, 봉골레 파스타와 함께 맛있게 마셨다 :)
그리고 마고부터 본 게임 시작.
샤토 마고. 바이올렛과 로즈버드의 향긋한 향이 수줍은 듯 은은하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드라이한 미감에 생각보다 가벼운 바디와 구조감. 크림 같은 질감에 석류, 붉은 자두 풍미에 블랙커런트 힌트가 가볍게 드러난다. 민트, 다크 초콜릿 파우더 같은 뉘앙스가 피니시에 가볍게 드러나는데 대단히 우아하고 섬세하다. 개인적으로 대단히 좋아하는 스타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르미에 그랑 크뤼 클라쎄라고 하기엔 힘과 풍미의 밀도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웬걸, 시간이 지날수록 화사한 꽃향기와 딸기 같은 붉은 과일 풍미가 물씬 피어난다. 과일 홍차와 토양 힌트는 덤... 와, 마고는 반드시 오랜 시간 천천히 즐길 것을 추천한다.
두 번째는 샤토 라 미숑 오브리옹 2018. 다소 어린 와인이지만 의외로 맛있게 마셨던 와인이다. 민트, 토양 뉘앙스에 명확한 검은 자두, 블랙커런트, 그리고 바닐라 오크. 입에 넣으면 역시 프룬, 블랙베리, 블루베리의 프루티 한 미감과 바닐라 등 코에서의 인상이 이어진다. 미디엄풀 바디에 견고한 구조, 많지만 실키한 타닌, 정향과 시나몬 피니시. 블라인드로 나왔다며 미국 와인이라고 얘기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파커 옹이 그렇게 좋아했는지도.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와인으로 바로 마시긴 나쁘지 않았는데, 그런 만큼 미묘함과 복합미는 다소 아쉬웠다.
샤토 라 미숑 오브리옹 2011. 2018과 7년 차이인데 토양, 버섯, 구운 고기 같이 숙성으로 디벨롭된 부케가 확연하다. 입에서는 크리미 한 첫인상 뒤로 쫀쫀한 타닌이 비교적 견고한 구조감을 형성한다. 2018에 비해서는 확연히 드라이한 미감에 바디는 다소 가볍다. 뒤이어 붉은 꽃과 자두 풍미가 드러난다. 보르도 그랑 크뤼 생산자가 올 때마다 '와인 스타일이 2016년을 기점으로 확연히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하던데, 이 또한 하나의 예시가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2018보다는 2011이 더 마음에 든다. 하지만 점수를 준다면 2018을 더 높게 주겠지.
샤토 오브리옹 1995. 잔에 따르는 순간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부케가 물씬 피어난다. 자세히 느껴보려고 코를 대니 토스티, 얼씨, 버섯, 가죽, 담뱃잎 등 그윽한 뉘앙스가 먼저 드러난다. 30년이나 됐는데도 잘 익은 자두, 붉은 베리 풍미 또한 생생하게 살아 있다. 가벼운 캡시컴 힌트와 모카커피 피니시까지... 끊임없이 변화하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와인이다. 부드럽지만 쫀쫀한 타닌, 단단한 구조, 과일 아로마와 숙성 부케의 하모니, 밀도 높은 향기까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단히 매력적인 와인이다.
단연코 이날의 1위 와인. 마고도 훌륭했지만 역시 정점에 올라온 오브리옹이 가장 좋았다.
다섯 와인의 코르크. 그런데 한 병은?
샤토 드 보카스텔 샤토네프 뒤 파프 2001. 기대를 많이 했던 와인인데, 부쇼네에 뭔가 애매하게 변질된 비린내까지 난다ㅠㅠ
한 분이 조금이라도 살려 보려고 비닐장갑을 넣어보기도 했지만, 끝내 살아나지 않았다. 이렇게 살리긴 넘나 명확하게 상태가 안 좋기도 했고. 직구품목이라 교환도 어려우니... 넘나 아쉬울 따름. 보카스텔은 언제나 기회가 생기려나... 아들냄이 군대 갈 때쯤? ㅌㅌㅌㅋㅋㅋㅋ
그리고 추가 와인들. 모두 블라인드로 마셨다. 요건 주최자가 도네이션 한 건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Chateau Los Boldos, Grand Cru 2003. 칠레 와인인데 그랑 크뤼에 프렌치 오크 숙성이라는 분구부터 레이블 느낌까지, 보르도 와인을 따라 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검색해 보니 레퀴노아(Requinoa)는 산티아고 남쪽에 있는 마을.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베이스의 와인인데 먼지, 동물성 뉘앙스에 피클링 스파이스, 말린 허브, 절인 검은 베리나 말린 베리, 졸인 과일 등 진득한 과일 풍미가 도드라진다. 뭔가 익숙한 스타일인데, 이탈리아 남부나 남불 지역에서 생산하는 저렴한 데일리 와인이 떠올랐다.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 아마도 과일을 과숙하고 추출까지 과다하게 하던 오래 전의 스타일로 만든 와인이 아닌가 싶은데... 어쨌거나 흥미로웠음.
두 번째는 내가 준비한 것. Les Pagos de Cos 2013. Cos D'Estournel의 세컨드 와인이다. 세컨 와인과 그랑 뱅의 차이를 느껴 보고 싶어 준비했는데, 역시 딱 그 정도의 차이가 느껴졌달까. 놀랍게도 주최자분이 품종, 빈티지, 스타일까지 거의 유사하게 맞추셨다. 역시 보르도 장인...
시원한 민트 허브가 잔잔하게 드러나며 붉은 베리와 자두 같은 과일 풍미가 잔잔하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산미는 제법 강한 편이고 타닌도 예상보다는 느껴지는 편. 가벼운 캡시컴과 커피, 흑차 같은 여운이 피니시에 은은히 남는다. 바디는 미디엄(풀) 정도로 가볍고 구조감이나 풍미의 밀도 또한 강하지는 않은 느낌. 하지만 깨끗한 인상에 미묘한 뉘앙스가 역시 좋은 와인인 건 확실하다.
지금 마시기 좋지만 보관도 가능은 할 것 같다. 물론 숙성으로 인한 변화가 많을 것 같지는 않고, 그저 마실만 하게 살아남아 있을 것 같다는 얘기. 아들빈이라 한 병 더 사 두었는데, 같이 마셔도 괜찮을 듯.
와, 다시 봐도 훌륭한 라인업. 모든 와인이 다 좋았다. (부쇼네 빼고...ㅠㅠ).
모임 장소는 바이바이베이비(Bye Bye Baby).
모든 음식들이 다 맛있었고, 가격도 괜찮았던 듯. 콜키지도 프리이기 때문에 자주 애용해도 좋을 것 같다. 조만간 또 가야지~
내년 이맘때쯤 또... 아마도 부르고뉴 와인으로 다시!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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