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 성사된 레알 벙개에 다른 용도로 쟁여 놓았던 와인을 꺼내 들었다.
생산자 이름을 발음하기가 녹록지 않다. 굳이 한글로 적자면 위그 베게 비네롱(Hughed Beguet-Vignerons) 정도 되려나. R발음은 특히 용서를;; 근래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쥐라(Jura) 지역 생산자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마지막 업데이트가 2013년인 듯;;; 메인에는 비오디나미(Agriculture Bio-dynamieque) 인증 중 하나인 데메테르(Demeter) 로고가 걸려 있다. 현재는 아마도 내추럴 와인까지 나아간 듯.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마셔 본 바로는 컬러도 풍미의 스타일도 완연한 내추럴 와인이다. 당연히 내추럴 이스트를 사용하고 보당(chaptalisation), 정제, 여과 등을 하지 않는다.
소유주이자 와인메이커인 빠뜨리스 위그(Patrice Hughes)는 2009년 와이프인 카롤린 베게(Caroline Beguet)와 함께 도회지 생활을 접고 쥐라의 아르부아(Arbois) 마을에 정착해 4.5ha의 토지를 구입하고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비교적 신생 와이너리인 셈.
근데 백 레이블에 홈페이지 주소까지 떡 하니 적어두고 업데이트는 안 하다니... 지나치게 비개입적인 것 아닌가. 누가 내추럴 생산자 아니랄까봨ㅋㅋㅋㅋ 사실 중요한 건 홈페이지 주소보다는 빈티지 위에 적인 'sans sulfites ajoutes'라는 문구인데, 아황산염을 첨가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2013년 버전 홈페이지에는 아황산염을 최소한도로 사용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한 단계 더 나아간 듯.
신생 와이너리답게 레이블이 상당히 귀엽고 위트 있다. 홈페이지에는 다른 레이블이 소개되어 있는 걸로 보아 최근에 변경한 듯. 이름들도 상당히 재미있는데 토착 레드 품종인 트루소(Trousseau)로 양조한 와인은 이름이 '쏘 트루(So True)'다. 맨 오른쪽 사바냉(Savagnin)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 이름은 '오 예(Oh Yeah)'인데, 전통적인 쥐라의 화이트 와인과 달리 모던하게 '우이예(Ouillé)를 진행해 만든 와인이기 때문이다. 쥔장 최소 아재 인증-_-;;
우이예(발음죄송)에 대해서는 아래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고, 놀기 위한 벙개니까 들이켜야지.
아래 풍미와 관련된 코멘트들은 간단히 적은 메모를 기반으로 기억을 그러모은 것들이다. 나름 맛있게 마신 와인들인데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면 아쉬우니까 가볍게 기록하는 차원.
Hughes Beguet-Vignerons, Cote de Feule 2017 Arbois Pupillin / 위그 베게 비네홍 꼬뜨 뜨 푈 2017 아르부아 뿌삐랭
옅고 밝은 마젠타 핑크 체리 컬러인데 상당히 탁하다. 잔을 따를수록 탁한 정도는 점점 심해졌는데 마치 핑크색 물감 뭍은 붓을 빤 물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내추럴 특유의 농가 향이 가볍게 스치며 순박한 붉은 꽃과 미네랄, 딸기, 산딸기, 알이 작은 붉은 베리와 깡통 체리 같은 아로마가 방순하게 드러난다. 탄닌도 신맛도 그닥 강하지 않아 편안하게 다가오지만, 쉬이 사그라들어버리는 게 아니라 마실 수록 입에 착착 달라붙어 마지막까지 맛있게 마셨다.
뿌삘랭(Pupillin)은 아르부아 남쪽에 위치한 하위 마을로 거장 피에르 오베르누아(Pierre Overnoy)가 만든 와인으로 유명하다. 와인의 이름인 꼬뜨 드 푈 또한 해발 300-400m 정도의 언덕 이름으로, 풀사르와 사바냉을 주로 재배한다. 사용한 품종은 풀사르 100%. 뿌삘랭에서는 플루싸르(Ploussard)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풀사르는 쥐라 지역의 토착 품종으로 껍질이 얇아 컬러 옅고 탄닌이 적다. 그래서 로제, 혹은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s)로 양조하거나 컬러를 보강하기 위해 트루소, 피노 누아(Pinot Noir) 등을 블렌딩하기도 한다고. 아니 얼마나 컬러가 옅으면 색 보강용으로 피노 누아를 쓰ㄴ... 사실상 풀사르의 좋은 아로마를 블렌딩에 활용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 와인처럼 단일 품종 와인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고.
Hughes Beguet-Vignerons, So True 2017 Arbois / 위그 베게 비네홍 쏘 트루 2017 아르부아
이 녀석은 트루소 100%로 양조했다. 앞의 풀사르 와인보다는 붉은빛이 조금 더 선명한 것 같긴 하다. 그래 봐야 조찐개찐;;; 뿌연 것은 여전하고 병이 비워질수록 탁한 기운이 강해지는 것도 같다. 하지만 맛있으니까 봐준다(?). 신 맛도 좀 더 강하고 붉은 베리와 체리, 라즈베리 풍미가 조금 더 밀도 높고 샤프하게 드러난다. 구조감도 비교적 좋은 편. 누군가 트루소를 피노 누아에, 풀사르는 가메(Gamay)에 비유했는데 완벽히 동의하긴 어려워도 그 의도는 알 것 같다.
처음에는 쏘 트루가 꼬뜨 드 푈 보다 더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는데.. 마실 수록 풀사르에 밀렸다. 그래도 괜찮은 와인임에는 틀림없는 듯.
Hughes Beguet-Vignerons, Oh Yeah 2017 Arbois / 위그 베게 비네홍 오 예 2017 아르부아
칠링을 하느라 가장 마지막에 마시게 된 화이트 와인. 하지만 알코올 함량이 제일 높기도 하고(13%, 다른 레드들은 11%), 풍미 상으로도 별 문제는 되지 않았던 듯. 마시느라 정신 팔려서 사진도 못 찍었는데 탁한 레몬빛에서 마지막으로 갈수록 침전물이 많아져 더욱 탁하고 희끄무레한 컬러로 변해 갔다. 하지만 향긋한 노란 꽃과 시트러시한 아로마, 미네랄 뉘앙스와 입안을 채우는 핵과와 레몬 껍질 풍미는 제법 아름다웠다. 조금 덜 취한 상태에서 다시 만나고 싶군.
사바냉 100%로 양조하며 10% 정도는 껍질과 함께 단기간 마세라시옹(maceration)을 진행한다고 한다. 대부분은 피버글라스(fiberglass)에서, 일부만 오래된 바리끄에서 숙성한다고.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숙성 과정에서 '우이예'를 진행한다. 우이예는 영어로 하면 top up, 그러니까 채워 넣는 것인데 숙성 중인 통 안의 와인이 일부 증발하면 그만큼 보충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증발한 와인을 채워 넣지 않으면 공기와 접촉하는 면적이 넓어져 와인에 산화 뉘앙스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쥐라에서는 화이트 와인에 우이예를 하지 않았고, 공기와 접촉하는 부분에 피노 셰리(Fino Sherry)처럼 효모 막이 형성되면서 와인에 산화 뉘앙스와 견과 풍미를 부여한다. 이런 방식을 뱅 드 부왈(Vin de Voile) 혹은 뱅 수 부왈(Vin Sous Voile)이라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6년 이상 숙성한 와인이 바로 뱅 존(Vin Jaune)이다. 가족 기념 빈으로 샤토 살롱(Chateau-Chalon)의 수준급 뱅 존을 사 보고 싶긴 한데, 과연 기회가 있을지.
와세다야의 야끼니꾸들도 와인만큼이나 마음에 들었다. 참숯만 보아도 불타오르는 마음♥
먼저 내장과 우설 세트. 양은 꼬독꼬독, 대창은 달콤쫄깃, 우설은 살살 녹더만.
기본찬 중 가운데 있던 쌈장 같은 것은 뭔가 트리트먼트를 한 것 같다. 감칠맛이라는 것이 아주 폭발하던데. 양배추 찍어먹으니 안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
두 번째는 항정살 & OO세트.
요 붉은 살코기가 참 맛있었는데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나네. 메뉴판이라도 찍어올 걸.
토마토 김치와 구운 마늘도 좋고.
전골이 나오니 셋이 세 병도 아쉬워서 화요 한 병 더 마셨다능;;;
어쨌거나 덕분에 자알 놀았음. 간만에 마음에 드는 내추럴을 만나 더 기분이 좋았던 듯. 다음에 보이면 또 살 거다. 내추럴 와인은 음식 친화력이 좋아 활용하기도 편하니까.
@와세다야(동부이촌동)
개인 척한 고냥이의 [알코올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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