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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음주/위스키·브랜디·리큐르·기타증류주

브룩라디(Bruichraddich)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0. 3. 31.

아일라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브룩라디(Islay Single Malt Scotch Whisky Bruichladdich).

 

처음 접한 사람은 일단 어떻게 읽어야 할지부터 고민에 빠진다. 공식 가이드는 [brook-laddie]. 한글로 표기하면 '브룩라디'에 가깝다. 

브룩라디는 1881년 스코틀랜드 아일라(Islay)의 위스키 가문 하비家 삼형제 (William IV, Robert, John Gourlay)가 설립했다. 1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전통적인 위스키 증류소지만 운영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고 한다. 1, 2차 세계대전 동안 고난을 겪었고, 이후 전체 위스키 시장의 축소로 침체기를 겪으며 여러 번 증류소를 폐쇄하였다. 최근에 폐쇄된 것은 1995년이었는데, 2000년 마크 레이지어, 고든 라이트, 사이몬 컬린이 의기투합하여 650만 파운드에 증류소를 인수하고, 2001년 5월 29일 새롭게 재개장하였다. 그리고 전 보모어 증류소의 책임자였던 짐 맥완(Jim McEwan)을 영입하여 기틀을 다졌으며, 던컨 맥길리브레이(Duncan McGillivray)를 거쳐 현재는 애덤 하넷(Adam Hannett)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브룩라디는 알면 알 수록 반전매력에 빠지게 되는 위스키다. 일단 모던하고 세련된 병 모양과 디자인과 별개로 그 내용물에 있어서는 철저히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1881년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위스키 제조 공정 전체에 컴퓨터가 전혀 개입되어있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재고 관리나 문서 작업은 컴퓨터로 하겠지^^;;

 

게다가 위스키 증류소임에도 와인처럼 떼루아(Terroir)를 내세운다. 증류에서 숙성, 병입까지 전 과정이 아일라 섬에서 이루어지며 사용하는 보리 또한 아일라 섬의 것이거나 최소한 스코틀랜드산이다. 켄트로(Kentraw), 컬블레어(Culblair), 컬모어(Culmore) 등 다양한 지역의 보리를 사용하며, 유기농 비율 또한 5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일라 섬의 보리를 사용하기 때문인지 지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증류소이기도 하다고. 심지어 그들이 생산하는 보타니스트 진(Botanist Gin)에 사용하는 22가지 허브 또한 아일라 섬에 자생하는 것을 사용한다.

그들이 위스키 제조에 사용하는 물은 세 가지.  피트가 함유된 브룩라디 로크(Bruichladdich Loch), 브룩라디 번(Bruichladdich Burn)과 자체 병입 시 사용하는 옥토모어 스프링(Octomore Spring)이다. 사용하는 물조차 브룩라디의 개성을 만드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그렇다고 그들이 틀에 박힌 생각으로 전통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숙성 시 버번, 쉐리, 럼 등 각기 다른 캐스크를 사용해 다양한 맛과 향의 스펙트럼을 창조한다. 최근에는 샤토 마고(Chateau Margaux) 등 특급 와이너리에서 사용한 오크통을 숙성에 사용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또한 위스키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위해 칠필터(Chillfilter)와 캐러멜을 이용한 컬러 첨가를 하지 않는다. 그들이 출시한 위스키 라인업을 보면 유난히 빈티지가 표시된 것이 많은데, 그만큼 지역적 특성과 함께 해당 년도의 특징까지도 반영하려는 노력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와인 애호가라면 특히나 더욱 사랑할 만한 위스키.

원래 브룩라디는 피트 처리를 하지 않은 몰트(non peated malt)를 사용해 아일라 위스키의 특징인 피티함이 잘 드러나지 않는 위스키였다. 하지만 포트 샬롯(Port Charlotte) 시리즈에는 40ppm 이상의 페놀 수치가 높은 몰트를 사용해 밸런스를 맞추었다. 특히 피트 매니아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은 옥토모어(Octomore) 시리즈는 스카치 위스키 중 가장 피티한 위스키로 손꼽힌다.  

 

개인적으로 2011년 처음 이 위스키를 만났을 때는 그닥 매력을 못 느꼈었다. 물론 그 이후 스치듯 만난 옥토모어(넘버는 기억나지 않는다) 등 몇몇 보틀들로 인해 매력을 못 느낀다는 소리는 안 하게 되었지만, 아직은 비교적 생소한 것도 사실. 매번 면세점에서도 다른 위스키에 밀려 구매하질 못한 탓도 있다. 

 

하지만 네이버 위스키 코냑 클럽 온라인 시음회 덕에 평소 궁금하던 녀석들을 한 번에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일라 발리, 포트 샬롯은 정말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던 녀석들인데... 신난다!

 

글라스는 한 가지로 통일하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집에 모양이 같은 잔이 없으므로 아쉬운 대로 글렌캐런, 리델 베리타스 스피릿 글라스, 리델 비늄 싱글 몰트 글라스를 골랐다. 시음이지만 어차피 여흥이니까 기분 내키는 대로 ㅎㅎㅎ

 

브룩라디 시리즈는 글렌캐런 글라스에,

 

포트 샬롯 시리즈는 리델 비늄 싱글 몰트 위스키 글라스에,

 

옥토모어 10.1 스코티시 발리는 리델 베리타스 스피릿 글라스에 즐겼다.

 

Bruichladdie, Classic Laddie / 브룩라디 클래식 라디

절제된 첫인상. 구수한 뉘앙스와 함께 노란 꽃과 민트 허브, 말린 과일, 톡 쏘는 스파이스, 바닐라, 그리고 녹였다가 굳힌 흰 설탕 시럽을 연상시키는 달콤한 향이 인상적이다. 입에 넣으면 무겁지는 않지만 살짝 눌러 주는 무게감이 느껴지며, 따뜻한 알코올 기운을 타고 전해지는 토스티와 세이버리의 중간쯤 어딘가의 풍미. 물을 한 방울 섞으면 크리미하고 부드러운 미감이 더욱 잘 살아난다. 단정하고 깔끔하다. 이름 그대로 클래식한 인상의 위스키.

 

Bruichladdie, Islay Barley 2011 / 브룩라디 아일라 발리 2011

화한 허브가 주도하는 탑노트가 클래식 라디와 명확히 차별적인 인상을 선사한다. 흰 꽃, 바닐라, 열대 과일 아로마와 흰 설탕가루를 묻힌 젤리를 연상시키는 아로마, 그리고 톡 쏘는 스파이스. 입에 넣으면 좀 더 짭조름한 뉘앙스와 후추, 허브 풍미가 주도하며 몰티함이 과일 풍미를 제압한다. 하지만 은은한 바닐라향 또한 피니시까지 남아 세이버리한 풍미와 조화를 이루며 부드러운 여운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위스키다. 와, 피티하지 않은 아일라도 이렇게 매력적일 수 있구나를 느끼게 해 준 위스키.

 

Port Charlotte, Heavily Peated 10 years old / 포트 샬롯 헤빌리 피티드 10년 숙성

따를 때 부터 풍기는 피티함. 윈드 오브 체인지. 정향과 화-한 타임 속에 달콤한 과일 향기가 숨어 있다. 그리고 달싹한 잉어 사탕. 특징적인 '설탕 뉘앙스'는 피티한 위스키로도 이어지는 듯. 입에 넣으면 짭조름함과 조화를 이루는 바닐라, 크리미한 미감과 대조를 이루는 스모키함. 그 사이의 오묘한 균형이 매력적이다. 과하지 않은 피트가 달콤한 노란 과일과 설탕과자 풍미와 좋은 밸런스를 이룬다. 아일라의 개성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는 느낌.

브룩라디, 보틀 디자인만 예쁜 게 아니었어. 

 

Port Charlotte, Heavily Peated Islay Barley 2012 / 포트 샬롯 헤빌리 피티드 아일라 발리 2012

외려 피트보다 향긋한 꽃향기와 바닐라, 노란 과일의 달콤함이 먼저 맞이해 깜짝 놀랐다. 스모키한 피티함은 그 뒤에 숨어 버번 오크의 바닐라 뉘앙스와 함께 복합적인 아로마를 형성한다. 한 모금 머금으면 달싹함이 입에서도 드러나 쏠티함과 조화를 이루는데, 단짠단짠한 것이 마치 쏠티드 캐러멜을 연상시킨다. 피티함이 적지 않음에도 전면에 나서지 않고 보조자의 역할을 하는 점이 상당히 이채롭다. 위스키를 마신 후 물을 한 모금 마시면 단맛이 더욱 살아난다. 개인적으로 정말 마음에 드는 스타일.

 

Octomore, Edition 10.1 / 옥토모어 에디션 10.1 

피트 대마왕이라 긴장하고 있었는데 피티함으로 윽박지르지 않는다. 마치 절세무공을 숨긴 엽문처럼. 먼저 맞이하는 것은 역시나 꽃 향기. 스위트 스파이스와 민트 허브, 정향, 진저 브레드, 달콤한 황도와 과일 캔디, 꽃가루 뉘앙스. 피티함이 기저에 깔린 건 확실한데 물안개처럼 쫘악 아래로 깔릴 뿐 위로 솟구치지 않는다. 하지만 입안에 넣는 순간 알코올을 타고 짜릿하게 전해지는 강렬한 피티함. 방심하다가 에네르기파를 제대로 맞았다. 지긋이, 하지만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짭조름함, 스모키함, 세이버리함... 으아 정신이 혼미하다. 천국과 지옥을 순간적으로 오락가락하는 기분. 향은 더할 나위 없이 내 타입이지만 입에서는 부담스럽달까. 피트는 107ppm.

하지만, 사고싶어... 마시고 싶어ㅠㅠ

 

브룩라디 위스키 5종은 하나같이 탄탄한 품질과 구조감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각자 존재감을 드러내는 개성적인 스타일까지. 하지만 다섯 위스키를 관통하는 뉘앙스가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설탕' 풍미. (물론 맛이 달았던 것은 절대 아니다.) 각기 다른 형태이긴 했는데 뭔가 설탕을 가공했을 때  느껴지는 달콤함이 각 위스키마다 드러났다. 개인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브룩라디의 정체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위스키 사이에 입을 가시기 위해 물을 마시면 그 단맛이 화악 살아나 마치 물 자체에 단맛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 것 참 기묘하다.

어쨌거나 이번 시음을 통해 브룩라디의 매력을 알았으니 이제 지갑을 여는 일만 남았다.

 

 

개인 척한 고냥이의 [알코올 저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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