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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와인21 기고

article 172. 클래식 칠레 와인의 이정표를 세우다, 비네도 채드윅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0. 4. 5.

비네도 채드윅의 품질에 정말 압도되었던 자리. 또한 칠레를 비롯한 세계 파인 와인의 경향이 섬세하고 절제된 스타일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자리이기도 했다. 가능하다면 아들딸 빈티지를 한 병씩 셀러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하실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의 블로그 스크랩입니다.

 

 

클래식 칠레 와인의 이정표를 세우다. 비네도 채드윅

서울 청담동 레스토랑 베라짜노에서 열린 에라주리즈 아이콘 와인 테이스팅 런천(Errazuriz icon wines tasting luncheon). 에라주리즈의 총괄 와인메이커 프란치스코 베티그(Francisco Baettig) 씨가 직접 에라주리즈의 네 가지 프리미엄 와인들을 소개하고 함께 테이스팅을 하는 의미 있는 자리를 가졌다. 칠레 시라(Syrah)의 온화한 변화를 보여준 라 쿰브레(La Cumbre), 칠레를 대표하는 품종인 카르미네르(Carmenere)의 교본과도 같았던 카이(KAI), 에라주리즈를 넘어 칠레를 대표하는 카베르네 소비뇽 중심 블렌딩 와인 돈 막시미아노(Don Maximiano) 등 훌륭한 와인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그러나 가장 놀라웠던 와인은 앞선 와인들과 확연히 다른 스타일을 보여준 비네도 채드윅(Vinedo Chadwick)이었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100%로 양조한 이 와인은 섬세한 터치와 우아한 질감, 은근하게 표현된 과일맛과 과하지 않은 오크 풍미로 산뜻하면서도 들뜨지 않는 균형 잡힌 미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칠레 와인은 직설적인 과일 풍미에 묵직하고 두툼하다는 선입견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클래식한 칠레 와인이라니, 처음 느껴보는 감동이었다.

 

[프란치스코베티와 비네도채드윅2014]

‘최근 생산되는 보르도 와인보다 더욱 클래식한 보르도 와인처럼 느껴졌다’고 조심스럽게 감상을 얘기했더니 베티그 씨는 ‘몇 년 전 까지는 보르도를 벤치마킹했었지만 더 이상 그러지 않는다’며 에라주리즈만의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최근의 보르도 와인들은 오히려 신세계 와인보다 더욱 ‘신세계화’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벤치마킹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는 칠레의 기후와 토양을 더욱 섬세하게 비네도 채드윅에 담아내는 방법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베티그 씨는 포도 잎사귀로 적절히 그늘을 만들어 포도가 너무 많은 햇빛을 받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칠레는 안개가 잦은 보르도에 비해 재배기간의 날씨가 좋기 때문에 포도가 햇볕을 받는 시간이 훨씬 길다. 햇볕을 지나치게 많이 받게 되면 포도에서 조리된(cooked) 맛이나 가열된(heated) 뉘앙스가 드러나기 때문에 캐노피 매니지먼트(canopy management)로 이를 방지한 것이다. 또한 포도가 과숙하지 않고 신선한 산도를 유지하도록 수확 시기를 앞당겼다. 이와 함께 그린 하비스트(green harvest)를 진행해 포도 생산량을 줄이고 수확 시 양질의 포도알만을 엄격하게 골라 풍미의 밀도가 낮아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또한 오크의 과도한 뉘앙스가 포도 자체의 맛과 향을 압도하지 않도록 섬세하게 조절했다. 그 결과 알코올 14%를 넘지 않는 우아하고 고전적인 스타일의 와인, 비네도 채드윅이 탄생했다.

 

[베를린 테이스팅]

 이런 노력의 결과는 평가로도 이어졌다. 비네도 채드윅 2014년 빈티지가 저명한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James Suckling)으로부터 칠레 와인 최초로 100점 만점을 받은 것이다. 단순한 100점이 아니다. 평론가들이 일반적으로 높은 점수를 매기는 무겁고 강건한 스타일이 아닌 섬세하고 우아한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받은 퍼펙트 스코어라는 데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사실 비네도 채드윅은 탄생한 순간부터 꾸준히 세간의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첫 빈티지인 1999년은 와인스펙테이터와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각각 92점과 94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카베르네 소비뇽 100%로 양조하기 시작한 2000년 빈티지는 한발 더 나아갔다. 2004년 1월 에라주리즈가 주최한 베를린 테이스팅(Berlin Tasting)에서 샤토 라피트(Chateau Lafite Rothschild)와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 샤토 마고(Chateau Margaux) 등 쟁쟁한 보르도 그랑 크뤼 1등급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그것도 보르도의 베스트 빈티지라고 일컬어지는 2000년 빈티지와의 비교에서 거둔 빛나는 성과였다. 1976년 진행된 파리의 심판(The Judgement of Paris)에 비견되는 이 테이스팅은 칠레 와인의 품질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올려놓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그 선봉에 비네도 채드윅이 있었다.

비네도 채드윅은 비냐 에라주리즈의 3대 알폰소 채드윅 에라주리즈(Alfonso Chadwick Errazuriz)를 기리기 위한 와인이기도 하다. 1870년 막시미아노 에라주리즈(Maximiano Errazuriz)가 와이너리를 설립한 이래 5대 140여 년을 이어오고 있는 비냐 에라주리즈에서 알폰소 채드윅은 와이너리의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평가받는다. 뛰어난 폴로 선수이기도 했던 그는 1945년 유명한 카베르네 소비뇽 산지인 마이포 밸리(Maipo Valley)에 저택을 짓고 자신의 폴로 경기장을 마련했다. 1992년 고령으로 더 이상 폴로를 할 수 없게 된 알폰소는 아들인 에두아르도(Eduardo) 현 회장이 폴로 경기장을 포도밭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해발 670m 안데스 산맥의 산자락에 위치한 15ha 크기의 이 포도밭은 식질양토(clay loam) 아래 70% 이상의 자갈이 섞인 충적(alluvial) 토양으로 구성되어 배수가 뛰어나다. 재배기간 동안 습도는 낮고 일교차는 크며 맑은 날씨가 계속되는 지중해성 기후다. 최고의 카베르네 소비뇽을 생산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비록 알폰소 채드윅은 이 뛰어난 밭에서 생산된 와인을 보지 못한 채 1993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와인에 대한 열정과 에라주리즈에 공헌한 업적은 비네도 채드윅의 레이블 아래 새겨진 폴로 선수를 통해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에라주리즈의 아이콘 와인들]

 

Vina Errazuriz, Vinedo Chadwick 2014 / 에라주리즈 비네도 채드윅 2014
영롱하게 빛나는 루비 컬러. 자두, 붉은 베리와 체리, 블랙커런트 등 섬세한 아로마 아래로 조화롭게 감도는 은은한 오크 뉘앙스. 입에 넣으면 드라이한 미감. 검붉은 베리 풍미와 목넘김 후 잔잔히 이어지는 감초 뉘앙스의 잔잔한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 촘촘하지만 부드럽게 느껴지는 탄닌과 신선한 산미, 적당한 알코올은 완벽한 균형을 형성한다. 놀랍다. 감동적이다.

알코올 13.5%에 가뿐한 미디엄풀 바디의 이 와인은 잘 짜인 구조와 밸런스 모두를 갖추고 있다. 아직 어림에도 불구하고 즉흥적인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숙성 후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풍미의 밀도가 높음에도 여백의 미가 느껴지며, 군더더기 없는 탄탄함과 아우라가 드러난다. 그림으로 치면 추사의 세한도가, 복싱으로 치면 매니 파퀴아오가 떠오른달까. 100% 카베르네 소비뇽을 프렌치 오크(새 오크 75)에서 22개월 숙성했다.

 

Vina Errazuriz, Don Maximiano 2014 / 비냐 에라주리즈 돈 막시미아노 2014
블랙베리, 블루베리, 블랙 체리, 블랙커런트 등 완숙한 검붉은 베리 풍미가 묵직한 첫인상을 선사한다. 은은하게 드러나는 침엽수와 허브, 다크 초콜릿 향도 매력적. 한 모금 머금는 순간 풀 바디에 두툼한 질감을 타고 농익은 과일 풍미가 한가득 드러나며 촘촘한 탄닌의 강한 느낌 너머로 인삼과 감초 뉘앙스가 감돈다. 에라주리즈의 플래그십 와인으로서의 품격과 함께 칠레 프리미엄 와인의 정체성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돈 막시미아노는 에라주리즈를 설립한 막시미아노 에라주리즈에게 헌정하는 와인이다. 손자인 비네도 채드윅이 늘씬하고 탄탄한 몸집의 댄디한 청년이라면 할아버지 돈 막시미아노는 근육질에 건장하고 믿음직한 어른의 모습. 2014년 빈티지는 카베르네 소비뇽(68%)을 중심으로 카르미네르(18%), 말벡(Malbec, 9%) 쁘띠 베르도(Petit Verdot, 5%)를 블렌딩했다. 프렌치 오크(새 오크 70%)에서 20개월 숙성.

 

Vina Errazuriz, La Cumbre 2014 / 비냐 에라주리즈 라 쿰브레 2014
바이올렛과 붉은 베리 아로마에 붉은 파프리카와 시원한 침엽수 힌트. 깔끔한 자두와 라즈베리, 블랙커런트 풍미는 과하지 않게 정제되어 있으며 은은한 스모키 뉘앙스와 가볍게 더해지는 후추는 적절히 완숙된 시라의 매력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풀 바디에 둥근 탄닌과 부드러운 질감이 우아하다.

스페인어로 ‘산의 정상(頂上)’을 의미하는 라 쿰브레는 아콩카구아 밸리(Aconcagua Valley)와 아콩카과 코스타(Aconcagua Costa)에 위치한 에라주리즈의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 양조했다. 자갈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배수가 잘 되고 다양한 토양과 미세기후를 지닌 아콩카과 밸리의 포도는 와인의 구조를 형성하며 서늘한 아콩카과 코스타의 언덕에서 자란 포도는 상쾌한 여운과 붉은 과일의 신선함을 더한다. 프렌치 오크(새 오크 50%)에서 22개월 숙성. 이름처럼 칠레를 대표하는 정상급 시라 중 하나.

 

Vina Errazuriz, KAI 2014 / 비냐 에라주리즈 카이 2014
은은한 흙내음과 매콤한 스파이스, 감초, 숙성된 찻잎 같은 아로마는 까르미네르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상쾌한 침엽수와 흑연 미네랄, 달콤한 바닐라 오크의 고혹적인 뉘앙스. 풀 바디에 매끈한 질감을 타고 붉은 자두, 검은 베리, 블랙커런트 풍미가 아름답게 드러난다. 잘 살아있는 산미와 부드럽지만 풍성한 탄닌, 완숙한 과일 풍미의 빼어난 밸런스는 숙성 이후를 궁금하게 만든다. 훌륭하다.

레이블에 그려진 붉은 잎은 바로 와인의 주품종이자 칠레를 대표하는 품종인 까르미네르를 의미한다. 과거 칠레에서는 카르미네르를 메를로와 혼동하여 재배 및 양조하였는데 이 둘을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붉은 잎이다. 가을이 되면 까르미네르 잎이 먼저 붉게 단풍이 드는 반면 메를로는 그때까지 푸른 빛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5%의 시라를 블렌딩했으며 100% 새 프렌치 오크에서 20개월 숙성했다.

 

[와인메이커 프란치스코배티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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