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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공부/와인21 기고

article 173. 다양한 맥주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0. 9. 27.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에 빠져 있던 시절, 그리고 와인21도 맥주 쪽으로 영역을 넓혀보려던 시절 작성했던 기사. 요즘도 개인적으로 맥주를 자주 즐기지만, 좋아하는 스타일이 어느 정도 확립되어 도전적인 음용은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현재 국내의 크래프트 비어 업계는 착실하게 성장하여 이젠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다양한 스타일의 국산 크래프트 비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맥주 관련 주세법도 개정되어 3/4캔 만원 행사도 자주 진행하는 듯. 여러 모로 고무적이다. 

 

원문은 wine21.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본 포스팅은 작성자 본인의 블로그 스크랩입니다.

 

다양한 맥주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바야흐로 맥주의 시대다. 아니, 정확히는 ‘다양한 맥주의 시대’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몇 가지 대기업 라거가 시장을 주도했었다. 수입 맥주라고 해 봐야 일본, 독일, 미국 등의 라거에 독일의 밀맥주 몇 가지가 눈에 띄는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크래프트 맥주 붐으로 IPA 등 에일 계열이 돌풍을 일으켰으며 윗 비어, 포터/스타우트, 세종, 애비/트라피스트 맥주, 사우어 에일 등 세계 각지의 다양한 맥주들이 속속 소개되고 있다. 마트에서는 소위 ‘수입맥주 4캔 만원’ 행사가 자리를 잡으며 대중적인 맥주의 다양성 또한 대폭 확대되었다. 심지어 같은 라거라도 생산국가와 양조장, 세부 스타일 등이 다양해진 것이다. 모 대형마트에서 취급하는 맥주의 종류는 이미 500가지를 넘어섰다. 벨기에, 영국, 독일 등의 전통적인 맥주들과 미국 크래프트 비어 씬의 혁신적인 맥주들을 마트 진열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국내 크래프트 맥주들 또한 힘을 내고 있다. 마트 등 대형 유통채널에 진출하며 매스 마케팅을 전개하는 등 시장 확대를 노리는 곳도 있고, 마이크로 브루어리(micro brewery)와 브루 펍을 설립하며 세를 키워가는 곳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갈수록 좋아지는 맛, 다양해지는 맥주의 스타일뿐만 아니라 업계 관계자들 사이의 끈끈한 관계와 동업자 의식, 팬덤의 형성 또한 앞으로 국내 크래프트 비어의 전망을 밝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이렇게 갈수록 다양해지는 맥주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술이니까 그냥 마시면 된다, 기호식품이니까 즐기면 된다, 다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매대에 진열된 수많은 맥주 앞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 지 혼란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와인 앞에서 동일한 경험을 하지 않았나!) 막무가내로 이런저런 맥주들을 마셔보며 경험을 쌓거나 맥주 동호회, 온라인 카페 등에 가입하여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레이트비어(www.ratebeer.com)나 비어애드버킷(www.beeradvocate.com) 등 평점을 참고할 만한 사이트들도 있다. 하지만 초보 애호가라면 역시 막연하다. 세상에 어떤 맥주들이 존재하는지, 내 입맛에 맞는 스타일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이다. 검색만으로는 단편적이고 제한적인 정보밖에 얻을 수 없다. 이럴 때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개론서다. 국가별, 스타일별 맥주의 개념을 잡아주고 대표적인 생산자와 제품까지 추천해 주니 어느 정도 틀이 잡힌다. 무작정 이것저것 부딪혀 보기 전에 적절한 입문서 한두 권 읽는 것으로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 최소한 레이블을 보고 이 맥주가 어떤 타입일지 대충 가늠해 볼 수 있게 되니까. 어느 정도 내공을 쌓은 맥덕이라면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차원에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맥주의 모든 것] 캐주얼한 맥주 교양 강좌

미국의 맥주 전문 언론인이자 비평가라는 저자는 자신을 젊은 시절 맥주에 절어 살던 주당이었다고 소개한다. 맥주의 파도에 실려 성년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저자는 세상에는 라이트/페일 라거 외에도 마실 만한 맥주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자의 젊은 시절은 마치 몇 년 전까지 한국의 상황과 유사하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새로운 맥주 스타일의 여명을 맞이하고 있는 현재 한국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또한 책에는 ‘크래프트 맥주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상황이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어 현재 한국에 불고 있는 크래프트 비어 열풍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가늠하는 데에도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다.

 

책의 첫 챕터에서는 맥주의 재료와 양조방법에 대해 제법 자세하게 설명한다. 본격적으로 스타일을 설명하기 전 기본기를 다지는 차원인데 특히 크래프트 비어의 종주국답게 홉의 종류와 성격에 대해서는 4페이지가 넘는 지면을 할애하며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외에 맥주 스타일 별 적절한 잔의 모양이나 이상적인 제공 온도, 시음 방법 등도 언급하기 때문에 실제 음용에도 도움이 된다. 이는 두 번째 챕터부터 맥주 스타일을 소개할 때마다 ‘꼭 시음해 볼 두 가지’라는 코너를 구성해 놓은 저자의 의도와도 일맥상통한다. 읽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반드시 시음을 통해 그 느낌까지 익혀 놓으라는 것. 책의 원제가 'The Complete Beer Course'라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저자는 다양한 맥주 스타일을 몸과 머리 양쪽으로 체득할 것을 권하고 있다. 제시하는 대로 챕터를 읽으며 관련 맥주를 시음해 나간다면 책을 다 읽을 즈음엔 정말 훌륭한 교양수업을 이수한 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미국 시장을 바탕으로 맥주를 추천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실정에는 다소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 살짝 아쉽다.

 

두 번째 챕터부터는 본격적으로 맥주 스타일에 대한 소개가 시작된다. 라거/필스너를 시작으로 밀맥주, 페일 에일, IPA, 수도원 맥주, 스타우트/포터, 발리와인, 나무통 숙성 맥주, 사우어/와일드 에일 등 대표적인 스타일들을 하나의 챕터로 묶어 놓았다. 각각의 챕터에는 해당 스타일의 다양한 하위 스타일들을 착실히 소개하는 동시에 ‘꼭 시음해 볼 두 가지’와 대체 맥주들을 덧붙여 놓았다. 앞서 말한 대로 직접 시음할 수 있다면 화룡점정이 될 것이다. 책 전반에 걸쳐 글 중간이나 양 옆에 박스로 삽입되어 있는 토막글들은 독서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느낌도 있지만 술자리에서 내놓을 만한 상식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마지막 두 챕터는 세계의 맥주 스타일과 음식 궁합, 오래 숙성할 수 있는 맥주와 저장방법 등을 소개하며 마무리된다. 책 말미에서 제시하는 미국 내 주요 크래프트 맥주 레스토랑과 바, 지역/시즌 별 크래프트 비어 축제 목록은 미국 여행을 계획 중인 초보 애호가에게는 제법 도움이 될 것이다. 최근 크래프트 맥주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 '맥주의 모든 것, 맥주의 탄생부터 크래프트 맥주의 세계까지' (2015) 조슈아 M. 번스타인 저, 정지호 역, 푸른숲

 

[THE BEER 맥주 스타일 사전] 친절하고 꼼꼼한 한국형 맥주 개론서

'맥주의 모든 것'이 미국 관점에서 쓰여 아쉽다면, 이 책은 그 아쉬움을 달래줄 것이다. 포털사이트에서 맥주를 검색하면 항상 상단에 뜨는 블로그 ‘살찐 돼지의 맥주 광장(http://fatpig.tistory.com)’을 운영하는 김만제 씨가 쓴 맥주 스타일 총서, 'THE BEER 맥주 스타일 사전'. 그는 2013년 이태원에 1세대 크래프트 펍인 ‘사계’를 열어 최근까지 운영했으며 현재는 상수동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에서 교육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한마디로 덕업 일체를 이룬 인물. 그는 서문에서 한국 맥주 시장의 문제가 단지 ‘맛이 없음’이 아니라 ‘다양한 스타일의 부재’ 임을 지적했다. 한국의 맥주 시장이 확대되고 음용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맥주 스타일의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자신이 쌓은 경험과 지식을 한국 실정에 맞게 쉽게 풀어서 전달하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드러낸다.

 

이 책에서는 먼저 맥주 양조와 기본 상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맥주의 카테고리를 크게 하면 발효(라거)와 상면발효(에일, 혹은 바이젠)로 구분한다. 각각의 카테고리 내에서 국가별 주요 스타일들을 소개하는데 이는 각각의 스타일이 어느 나라에서 유래했거나 성행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목차만 보아도 맥주의 가계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고, 실제 맥주를 마시다가 궁금증이 생겼을 때 바로 찾아보기도 수월하다. '맥주의 모든 것'이 주요 스타일 중심으로 하위 스타일을 수렴했다면 'THE BEER 맥주 스타일 사전'은 에일과 라거로 나눈 뒤 국가를 중심으로 하위 스타일을 구분했다.

 

소개하는 스타일은 60종을 훌쩍 넘어 한국에서 유통되는 맥주들은 거의 다 포괄한다. 각각의 스타일을 소개하면서 홉/맥아/효모 풍미의 강도, 무게감, 알코올 수준, 색상 등을 수치화하여 보여주기 때문에 다른 스타일과 비교하여 이해하기에도 수월하다. 별(★) 표시가 붙어 있는 ‘서플먼트’ 챕터는 특별한 용어나 스타일, 맥주 트렌드, 기념일/계절 맥주 등 참고할 만한 팁을 제시하거나 같은 스타일의 국가별 차이, 애비/트라피스트 비어의 개념 등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풀어서 설명하기 때문에 특히 유용하다. 특히 스타일 별 대표 맥주 소개에 한국 수입 여부가 표시되어 있어 구매 가이드의 역할도 톡톡히 수행한다. 읽다가 회가 동한다면 바로 보틀샵이나 마트로 달려가시라.

 

- 'THE BEER 맥주 스타일 사전' (2015) 김만제 저, 영진닷컴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 BEER] 쉽게 이해하는 맥주의 기원과 발전사

맥주가 언제 처음 만들어졌고 어떻게 스타일이 분화되었는지 궁금하다면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 BEER'는 그 궁금증을 반나절 만에 상당 부분 해소해 줄 것이다. 마블, DC 코믹스 작업 경력 저자의 화려한 그림도 볼거리. 읽는 도중 아이가 와서 기웃거릴 정도였다. (얘야, 너는 15년 후에 읽도록 하려무나.) 책의 소개글에 적힌 ‘신이 맥주가 있으라 하니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말에는 와인 애호가로서 동의할 수 없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도 ‘맥주는 인간이 만들었고 와인은 신이 빚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맥주가 농업을 이끌었다는 ‘맥주에 의한 농업 발생론’에는 애주가로서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맥주의 기원과 스타일의 형성 과정을 시대적 상황과 경험의 누적, 과학기술의 발전 등과 연계하여 설명한다는 것이다. 단지 맥주 스타일의 정의, 양조법, 풍미 등의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스타일이 생겨나게 된 역사적 계기와 양조법의 발전 등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함께 제시한다. 때문에 독자는 맥주 발전사의 큰 흐름 위에서 해당 스타일을 이해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타일인 라거, 그중에서도 필스너의 탄생을 예로 들어보자. 필스너는 쌉쌀한 맛이 일품인 황금빛 맥주로 밝은 맥아를 저온에서 하면 발효하여 양조한다. 필스너가 탄생한 지는 20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 탄생에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누적되어 있다. 우선 중세의 수도사들이 서늘한 동굴에 맥주를 저장하면서 오랜 시간 저온에서도 살아남은 하면발효 효모가 배양되었다. 19세기 초엔 빈 출신의 안톤 드레허(Anton Dreher)와 뮌헨 출신의 가브리엘 제들마이어(Gabriel Sedlmayr)가 영국으로부터 밝은 색의 맥아를 만드는 비법을 빼돌렸다. 당시 어두운 맥주 일색이던 유럽 대륙에서 그들은 영국식 맥아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당화하여 좀 더 밝은 컬러의 비엔나 라거를 만들고 메르첸을 부활시켰다. 그리고 몇 년 뒤, 이웃나라 체코의 플젠(Plzeň)에서 걸출한 양조가 요제프 그롤(Josef Groll)이 발효 능력이 더욱 개선된 라거 효모와 연한 색의 맥아에 명쾌하지만 과하지 않은 노블 홉, 플젠 지역의 연수(軟水)를 더하여 필스너를 만들어냈다. 일반적으로 ‘맥주’하면 떠올리는 스타일인 필스너는 이렇듯 많은 역사적 사건들의 누적으로 탄생한 셈이다.

 

이외에도 뚜껑이 있는 주석 맥주잔이 탄생한 이유,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Emil Christian Hansen)의 순수한 효모 종균 배양법 개발, 독립 운동가이자 양조자였던 사무엘 아담스(Samuel Adams), 금주법이 페일 라거의 성장에 미친 영향 등 맥주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름과 이야기들이 다수 등장한다. 예컨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최초의 맥주 레시피는 기원전 1800년 경 고대 수메르인들이 진흙판에 남긴 것이다. 이 진흙판에는 빵을 적셔서 맥주를 만드는 레시피 외에도 물과 곡물의 결합에 의한 황홀한 변화를 담당하는 아름답고 신적인 존재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바로 ‘닌카시(Ninkasi)’. 아마도 맥덕들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이래저래 여유로운 주말에 좋아하는 맥주 한 잔 따라 놓고 편하게 읽기 좋은 책이다.

 

- '만화로 보는 맥주의 역사 BEER' (2016) 조너선 헤네시/마이클 스미스 공저, 아론 맥코넬 그림, 서연 역, 계단

 

 

다양한 맥주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바야흐로 맥주의 시대다. 아니, 정확히는 ‘다양한 맥주의 시대’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몇 가지 대기업 라거가 시장을 주도했었다. 수입 맥주라고 해 봐야 일본, 독일,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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