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칠리아(Siciliy) 와인.
시칠리아 중에서도 동쪽 끝 활화산의 이름을 딴 에트나(Etna) DOC의 와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지역 중 하나. 21세기 초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해 대형/유명 생산자부터 내추럴 계열의 생산자까지 많은 거장들이 에트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지금 소개하는 베난티(Benanti)를 비롯해 테누타 테레 네레(Tenuta Terre Nerre), 피리아토(Firriato), 레 비녜 디 엘리(Le Vigne di Eli), 그리고 에트나 DOC는 아니지만 에트나 지역에서 네렐로 마스칼레제(Nerello Mascalese) 100%로 양조하는 파소피시아로(Passopisciaro) 등이 내가 한국에서 만나본 에트나 와인이다.
위 포스팅을 보면 에트나, 그리고 베난티에 대해 소개한 <디캔터(Decanter)>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백레이블은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다. 구글 번역을 돌려 보면 1994년부터 네렐로 마스칼레제와 네렐로 카푸치오(Nerello Cappuccio) 품종으로 생산을 시작했으며, 에트나 산의 북쪽과 남동쪽 슬로프에서 재배한 포도를 사용한다. 선별한 포도를 손수확하여 내추럴 이스트로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발효한다... 고 한다.
코르크 오픈. 잔은 잘토 부르고뉴 글라스를 썼다.
Benanti, Etna Rosso 2014 / 베난티 에트나 로쏘 2014
옅은 벽돌색-루비 컬러에 제법 깊은 오렌지 림. 코를 대면 먼지 쌓인 석고 같은 미네랄과 아스팔트 힌트, 아주 가벼운 토스티함이 먼저 드러난다. 그 아래 가볍게 깔려 있는 붉은 베리, 톡 쏘는 느낌의 스파이스와 담뱃잎, 넛멕, 시나몬, 정향. 첫 느낌은 과일보다는 미네랄과 허브/스파이스 중심의 아로마다. 입에 넣으면 생각보다 촘촘한 타닌이 깔깔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새콤한 신맛과 쌉쌀한 여운이 가볍게 남는다. 자두와 이국적 붉은 과일 풍미가 드러나지만 메인이 아닌 서브의 위치. 치즈 같은(cheesy) 뉘앙스와 동물성 힌트가 매력적으로 스치는 느낌.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검붉은 체리와 농익은 딸기 같은 과일 풍미도 강하게 살아나기 시작한다! 오오... 미네랄과 허브, 스파이스, 과일 풍미가 각자 명확히 어필하면서도 누구 하나 거슬리지 않게 조화를 이룬다. 훌륭하다.
그런데 포스팅을 작성하려고 검색하다 보니, 2014 빈티지는 <와인 앤수지애스트(Wine Enthusiast)>가 94점을 주며 2016년 100대 와인 3위에 선정했다!! 이럴 수가... 어쩐지 맛있더라니(?). 사실 처음 같은 빈티지를 맛봤을 때는 좀 어리기도 했고, 다른 쟁쟁한 와인들에 밀려서인지 큰 매력을 못 느꼈었는데 이날은 정말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며 시간에 따라 매력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틀 후에는 모듬 순대와 함께 마셨는데 역시 훌륭했다. 역시 에트나, 그리고 갑사마 베난티. 한국에 계속 들어와야 할 와인인데 최근 안 보이는 게 살짝 불안하다. 에트나 흥해라 흥!
개인 척한 고냥이의 [알코올 저장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