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언박싱. 새로운 위스키를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벤로막(Benromach). 스카치 위스키의 심장부 스페이사이드(Speyside ) 지역의 싱글 몰트 위스키(Single Malt Whisky)다.
피트 스모크(Peat Smoke),10년(10 Years Old), 오가닉(Organic) 3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딱 좋다. 나처럼 술이 약하면서도 와인/맥주 등 다른 주류의 소비도 잦은 사람은 700ml 일반 위스키 보틀을 오픈하면 다 마시는 데 1년이 넘게 걸린다. 새로운 위스키는 계속 맛보고 싶은데, 기존 보틀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새 보틀을 여러 병 오픈하기는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1잔짜리 미니어처를 사기엔 너무 감질맛이 나고. 그래서 이렇게 200ml나 하프 보틀(350ml) 정도로 다양하게 제공되는 게 가장 좋다.
개인적으론 이렇게 '적당히 작은 보틀'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혼술 트렌드도 강화되고 있으니 업계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만하지 않을까.
올해 구매한 제품이지만 병입년은 3종 모두 2013년이다. 출시된 지 제법 지난 제품인데 시중에 재고로 남아있었던 듯. 홈페이지를 보면 레이블도 바뀌었고, 제품 스펙에도 변화가 있다. 심지어 2014년 바뀐 레이블과 현재의 레이블이 다른 것을 보면 레이블이 여러 번 바뀐 모양. 이 녀석은 완전히 구시대 유물이다.
벤로막은 유명 독립 병입자인 고든 앤 맥페일(Gordon & MacPhail) 소유 증류소다. 1898년 스페이사이드(Speyside) 지역 포레스(Forres) 마을에 설립된 벤로막은 여러 번 부침을 겪다가 1993년 고든 앤 맥페일에 인수됐다. 고든 앤 맥페일은 제임스 고든(James Gordon)과 존 맥페일(John MacPhail)이 1895년 포레스 동쪽 20km 부근 엘긴(Elgin) 마을을 기반으로 설립했는데, 나중에 합류한 존 어쿼트(John Urquhart)가 1915년 아예 단독 소유하게 된다. 그는 스코틀랜드 전역의 증류소에서 싱글 몰트 위스키 캐스크들을 숙성했고, 1933년 합류한 그의 아들 조지(George)와 함께 스카치 위스키와 숙성에 대한 노하우와 경험을 쌓게 된다. 그들은 독립 병입자로 명성을 쌓으면서도 증류소 소유를 열망했는데, 1993년 벤로막을 인수하면서 그 꿈을 이루었다. 5년의 재정비를 거쳐 1998년 방문한 찰스 왕세자가 증류소의 문을 열면서 공식적으로 증류소를 재오픈했다.
<몰트 위스키 이어 북>과 홈페이지의 따르면 벤로막의 목표는 1950-60년대 스페이사이드 위스키의 풍미를 지닌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간 강도로 이탄 건조(페놀 12ppm)한 스코틀랜드산 맥아(Scottish barley)와 퍼스트 필 캐스크(first-fill casks)를 사용하며, 캐스크를 채우는 등 모든 공정은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원래 4개의 워시백(발효조)와 2개의 증류기를 보유한 스페이사이드에서 가장 작은 증류소였으나, 2016년 이후 9개의 워시백을 추가로 설치해 13개가 되었다. 이는 최근의 인기가 반영된 것으로 조만간 증류기 등 다른 생산시설 또한 추가할 가능성이 높다. 1999년 건조실을 개조해 만든 방문자 센터는 스코틀랜드 관광국으로부터 4성 평가를 받았는데, 2016년 이후 확장 공사를 진행해 새로운 3개의 시음실을 추가했다고 한다.
이제 맛을 볼 차례.
원래는 오가닉 한 종만 가볍게 맛보려 했는데, 결국 3종을 다 마시게 되었다;;
오가닉은 2006년 처음 출시됐다. 영국토양연맹(UK Soil Association)의 공식 인증을 받은 제품으로 아메리칸 버진 오크(American Virgin oak)에서 숙성했다. 알코올 함량은 43%.
코르크 스토퍼로 마감이 되어 있다. 병입된 지 몇 년 된 녀석이므로 뚜따 시 코르크가 부러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코르크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무사히 오픈했다.
글라스는 슈피겔라우 빌스베르거 애니버서리 다이제스티브(Spiegelau Willsberger Anniversary Digestive).
Benromach, Organic Speyside Single Malt Scotch Whisky / 벤로막 오가닉 스페이사이드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밝은 앰버 골드 컬러. 코를 대면 달콤한 열대 과일과 감귤 향기에 바닐라와 토스티 오크 뉘앙스가 감돈다. 입에 넣으면 자극적인 풍미는 완전히 배제된 멜로우한 인상. 약초와 칡뿌리 같은 힌트가 살짝 묻어날 뿐 달콤한 과일 풍미가 주도하는데, 단조롭거나 지루하지 않고 둥근 질감과 어우러져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선사한다.
와, 상당히 매력적인 위스키. 우울한 날을 달래 줄 나이트 캡으로 강추할 만한 한 잔이다.
두 번째는 10년 숙성. 2009년 처음 출시했는데, 고든 앤 맥페일이 인수한 후 최초로 출시한 숙성 년수 표기 위스키다.
Benromach, 10 Years Old Speyside Single Malt Scotch Whisky / 벤로막 10년 스페이사이드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오가닉과 거의 유사한 컬러. 그런데 오가닉과는 다르게 피트가 강하게 드러나며 톡 쏘는 스파이스와 연기 같은 미네랄, 가벼운 꽃향기가 좀 더 알싸하고 강렬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래도 은근히 드러나는 바닐라와 시트러스, 과일 풍미가 전반적으로는 부드러운 인상을 남긴다.
피트와 꽃향기 & 과일 풍미가 좋은 밸런스를 이루는 위스키. 퍼스트 필 버번과 셰리 캐스크에서 숙성.
전반적으로 케이스에 적힌 설명에 매우 공감.
마지막으로 피트 스모크. 앞의 두 위스키와는 완연히 다른 컬러인 것이 흥미롭다.
2004년에 증류하여 2013년 병입. 표기는 안 했지만 10년 숙성인 셈이다(오크통에 늦게 넣어서 표기를 못했을까?). 알코올 함량도 다른 두 병보다 3% 높은 46%.
페놀 레벨은 53ppm. 피티하기로 유명한 아일라(Islay) 섬 위스키들의 페놀 레벨이 보통 35~45ppm 정도 되니까 제법 높은 편이다.
헉, 그런데 우려하던 일이... 스토퍼의 오크가 부러지고 말았다ㅠㅠ
긴급히 아소로 수습 시도.
긴 칼날부터 넣어 살살 꽂은 후 요리조리 돌려서 뽑았더니,
요렇게 부러진 부분이 나왔다. 휴... 10년 감수.
병목에 붙은 코르크 부스러기가 병 안에 들어가지 않게 키친타월로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그런데 마개는 뭘로 하지...
고민하다가 와인 액세서리 서랍에 굴러다니던 비노락이 생각났다. 꽂아봤더니 사이즈가 맞진 않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버틸 만은 할 것 같아서... 일단 요러게 사용해 보기로ㅠㅠ 어쨌거나 땄으니 맛은 봐야지.
Benromach, Peat Smoke Speyside Single Malt Scotch Whisky
벤로막 피트 스모크 스페이사이드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투명하게 반짝이는 옐로 골드 컬러. 생각보다 은근한 피트 향이 토스티한 오크, 스윗 스파이스, 시트러스, 사과 향기와 함께 도드라지기보다는 조화롭게 드러난다. 입에서는 노란 과일과 터키시 딜라이트 같은 이국적인 뉘앙스. 전반적으로 가볍고 날렵하며 섬세한 인상이다. 퍼스트 필 버번 배럴에서 숙성.
자기 스토퍼를 상실한 피트 스모크는 틴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났...
어쨌거나 벤로막은 전반적으로 밸런스가 잘 잡힌, 중용의 미덕을 지닌 스타일인 것 같다. 상당히 마음에 드는, 자주 만나고 싶은 스타일. 그런데, 검색해 보니 국내 수입이 중단된 모양이다. 아래 이렇게 괜찮은, 해외에서도 나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위스키가 왜 한국 시장에선 자리를 못 잡은 걸까.
조만간 다시 한국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요즘 같은 시기에 면세점에서 만나긴 영 어려울 테니...ㅜㅜ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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