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생신에 마셨던 녹고의 눈물. 나는 와인을 좋아하지만, 전형적인 한식 식탁에서는 아무래도 우리술이 마시기 편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와인과 함께 궁금했던 우리술도 한 두 병씩 챙겨가는 편.
영어로 'Jejusul Story Fermented Liquor'라고^^;; 적어둔 걸 보면 뭔가 사연이 있는 술인 것 같다.
(네이버 지식백과를) 찾아보니,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오가피를 찾아 헤매다가 변을 당한 의좋은 남매 '수월'과 '녹고'의 슬픈 이야기가 엮여 있었다. 험한 바위 벼랑에 있는 오가피를 발견한 수월이 녹고의 손을 잡고 벼랑에 내려가 오가피를 꺾는 순간, 그만 손을 놓쳐 떨어지고 말았다. 누이의 죽음에 녹고는 슬피 울었는데 그 눈물이 떨어진 자리는 녹고물이라 불리는 샘이 되었고, 수월이 떨어진 봉우리를 수월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얘기다.
녹고의 눈물을 만드는 (주)토향은 제주도 동쪽 해안에 있는 수월봉에서 내륙으로 10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제주 여행 시 들러 시음을 하고 구매하는 것도 좋을 듯.
원재료는 제주산 섬오가피 뿌리와 포도당, 정제수, 효모 뿐이다. 일반적으로 오가피주라고 하는 것처럼 오가피를 높은 도수의 주정에 담가 침출하거나, 곡물로 약주를 담근 후 오가피를 섞은 게 아니라 오가피 뿌리에서 침출한 성분을 당분과 함께 발효하여 술을 담갔다.
아버지 말에 따르면 오가피는 뿌리부터 줄기, 잎, 열매까지 모두 사용할 수 있는데 자라는 대로 비교적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줄기, 잎, 열매에 비해 뿌리는 쉽게 사용하기 어려운 부위라고. 그만큼 귀한 재료를 사용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오가피는 항암성분 및 간기능 개선, 진통소염, 해독 작용에 탁월한 아칸토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약용 식물로 선호하는 어르신들이 많다. 쌉쌀한 맛 또한 상당히 좋아하시는 듯.
추출, 발효, 여과, 제성, 숙성. 녹고의 눈물은 오가피 뿌리에서 추출한 성분을 제주도의 맑은 물을 사용해 60일 간 발효한 후 저온에서 1년 이상 숙성하여 완성한다. 상당한 정성과 시간이 필요한 술.
참고로 '제성'은 발효가 끝난 술을 물 등을 첨가하 알코올 도수와 단맛, 신맛, 감칠맛 등을 적당히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인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인데 조금 쉽게 풀어주시지 ㅎㅎㅎㅎ
나름 키비주얼과 로고 등도 신경을 쓰셨다. 어르신들이 좋아할 스타일. 근데 그렇다는 건 젊은이들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 흠흠, 스토리나 사용한 재료, 그로 인한 풍미 등이 아무래도 40대 이상의 중장노년층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제대로 브랜딩을 하신 것일 수도 있다.
토향, 녹고의 눈물
쌉싸름한 오가피 풍미가 알싸한 미네랄리티와 함께 드러난다. 기름지지 않은 질감에 드라이한 맛이 깔끔하게 떨어지는데, 마시다 보면 가벼운 단맛이 살짝 올라와 전반적인 밸런스를 맞춰 준다. 일반적인 한식과는 물론 시원하게 칠링해서 데친 전복이나 생선회 같은 해산물과 마셔도 좋을 것 같다.
식사 자리에서는 편하게 마시느라 잔에 담은 사진 찍는 걸 깜빡했다. 그래도 주색은 투명한 병에 다 드러나니까^^;;
다음 모임 때는 어머니를 위해 매실주를 한 병 꺼내야겠다. 그야말로 약주(藥酒)로 한 잔 올려야지.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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