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엔다 아그리콜라 499 랑게 프레이자(Azienda Agricola 499 Langhe Freisa). 와이너리와 품종명 모두 생소하다. 그나마 프레이자는 몇 번 마신 적이 있지만, 생산자 이름인 499는 난생처음.
499라고는 시대를 풍미한 야구 오락 'Stadium Hero'의 '사구구' 밖에 모르는데...
생산자의 이름이 499인 이유는 와이너리가 해발 499m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바(Alba)에서 동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카모(Camo)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과 알바 사이에 바르바레스코(Barbaresco)가 있다. 유명 산지를 살짝 벗어난 언더독인 셈. 2012년에 설립한 신생 와이너리이지만 친구이자 공동 설립자인 두 명의 경력은 확실하다. 마리오 안드리온(Mario Andrion)은 유명 바롤로/바르바레스코 생산자인 카스텔로 디 베르두노(Castello di Verduno)에서 와인메이커로 일했고, 가브리엘레 사피리오(Gabriele Saffirio) 또한 바롤로 생산자인 프라텔리 브로비아(Fratelli Brovia)의 셀러에서 일했다. 얼마 전에 마신 조세타 사피리오(Josetta Saffirio)와 성이 같은 걸로 보아 인척관계인지도 모르겠다. 현재 마리오는 셀러, 가브리엘레는 포도밭을 담당하고 있다고. 6ha의 포도밭은 모두 유기농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재배하는 포도 품종은 레드는 프레이자(Freisa), 화이트는 모스카토(Moscato)로 단순하다.
프레이자는 피에몬테의 토착 품종으로 DNA 분석 결과 네비올로(Nebbiolo)와 부모-자식 관계로 확인됐다. 확실친 않지만 프레이자가 부모일 가능성이 높다고. 프레이자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딸기'라는 의미의 단어에서 유래했는데, 이름처럼 딸기, 라즈베리, 사워 체리 등 붉은 베리 풍미와 약간의 earthy함, 신선함을 겸비한 품종이다. 잘 만들면 어마어마한 향기가 화사하게 피어나는 와인이 된다. 네비올로와는 밝은 루비 컬러와 강한 신맛, 강한 타닌 등이 유사하다. 이탈리아 와인 전문가인 이안 다가타(Ian D'Agata)에 의하면 10년 이상 숙성 시 네비올로와 구별이 어려울 정도라고.
프레이자는 19세기까지 아스티(Asti) 포도밭의 절반을 점유할 정도로 큰 인기를 구가했다. 토리노 부근의 사보이 왕가 포도밭에는 프레이자를 재배했고,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프레이자를 '맑고 붉으며 타닌이 많은 사랑스러운 품종'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수준으로, 바롤로, 바르바레스코 등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네비올로와는 차이가 크다. 한국에서도 GD 바이라 키에(G.D. Vajra Langhe Freisa 'Kye') 정도가 그나마 눈에 띌 뿐 쉽게 만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도 10여 년 전쯤 주세페 마스카렐로(Giuseppe Mascarello)의 것을 맛본 것이 전부다.
하지만 최근 프레이자를 다시 살리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전통적으로는 특유의 씁쓸한 맛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가벼운 단맛이 드러나는 약발포 와인(frizzante)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고, 다른 품종과 블렌딩하는 경우도 흔했다고. 최근에는 씁쓸한 타닌을 제어하는 기술의 발달로 드라이한 스틸 와인으로 양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앞서 언급한 GD 바이라와 주세페 마스카렐로 외에도 비에티(Vietti), 지아코모 페노키오(Giacomo Fenocchio) 등도 훌륭한 프레이자 와인을 만든다. 이 와인도 그 일환일 듯.
Azienda Agricola 499, Langhe Freisa 2017 / 아지엔다 아그리콜라 499 랑게 프레이자 2017
검은 빛이 살짝 감도는 영롱한, 하지만 짙지는 않은 미디엄 인텐시티 루비 컬러. 향긋한 바이올렛 향기와 라즈베리, 붉은 꽃잎, 붉은 체리 등 신선한 붉은 베리 풍미가 가볍게 다가온다. 입에 넣으면 역시나 붉은 베리 풍미를 동반한 상큼하고 깔끔한 신맛. 그런데 많지도 않은 타닌이 제법 촘촘하게 입안에 내려앉는다. 제법 강한 신맛과 어우러져 제법 강한 수렴성이 느껴지는 듯. 감초, 얼씨함, 라벤더 같은 플로럴 허브 뉘앙스가 은은하게 감돌며 온화한 여운을 남긴다.
이 와인만 보자면 경험해 본 랑게 네비올로보다 타닌이 더 적지만 오묘하게 깔깔하고, 플로럴한 향기와 신맛도 좀 더 강한 인상이다. 좀 더 섬세한, 피노 같은 네비올로의 느낌이랄까. 가격만 조금 저렴하게 나온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만한 와인. GD 바이라의 프레이자도 보이는 대로 마셔 봐야겠다.
떡갈비와 함께 마셨는데 제법 잘 어울린다. 햄버거 패티처럼 생겼지만 맛은 틀림없는 떡갈비. 프레이자가 요런 류의 육류나 가벼운 치즈와 마시면 딱 어울릴 스타일이다.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