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감독의 배트맨 3부작의 마지막 편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한 장면. 실의에 빠진 부르스 웨인에게 충직한 집사 알프레드가 얘기를 건네는데, '매년 이탈리아 피렌체로 휴가를 떠나는데, 매일 저녁 아르노 강변의 카페에 앉아 페르넷-브랑카를 마신다'라고 한다. 왜 하필 페르넷-브랑카일까. 아마 쌉쌀한 인생의 맛이기 때문이 아닐까.
페르넷 브랑카(Fernet-Branca)는 이탈리아 밀라노 태생의 비터 리큐르(Bitter Liqueur)다. 1845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베르나디노 브랑카(Bernadino Branca)가 처음 만들었다. 샤프란, 용담, 대황, 카모마일, 시나몬, 퀴닌 페퍼민트 등 27가지 허브와 스파이스, 약재 등을 주정으로 추출하여 오크통에서 1년 숙성해 만들며, 핵심적인 재료와 블렌딩 비율은 엄격하게 비밀로 유지하고 있다. 맛은 예거마이스터(Jägermeister)와 유사한데 훨씬 덜 달아서 물리는 느낌이 적다고. 대부분의 비터 리큐르가 그렇듯 처음에는 콜레라, 자양강장, 소화 촉진 등 의료용으로 개발되었지만 금세 본연의 용도(=음주)로 적극 활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금주법 시대에 큰 인기를 끌었는데, 태생이 약용이다 보니 의약품으로 유통되던 페르넷을 음주용으로 마시기 시작한 것. 페르넷은 다른 허브류의 비터와 달리 설탕의 단맛이 적기 때문에 물리지 않고 마실 수 있어 꾸준한 인기를 끈 것으로 보인다. 베르나디노는 금주법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 며칠을 울었을 정도라고.
페르넷-브랑카는 바텐더의 악수(the bartender's handshake)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금주법 이후 다른 바텐더가 찾아오면 페르넷 한 잔을 나누며 환대하던 미국 바의 전통에서 비롯된 애칭이다.
페르넷-브랑카는 특히 아르헨티나에서 인기가 많다. 1인당 페르넷 소비량이 가장 많은 국가가 바로 아르헨티나일 정도. 이는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제도를 두고 벌인 전쟁의 영향이 크다. 전쟁 이후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스카치 위스키 소비를 줄이고 다른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이탈리아 이민자가 많았던 영향을 받은 것.
아르헨티나에서는 주로 콜라를 섞어 마시는데 '90210'이라는 레시피가 있다. 페르넷 90%, 얼음 2개, 콜라 10%. 페르넷 10%, 콜라 90% 이 아니다. 페르넷 90%, 콜라 10%이다-_-;;; 좀 과해 보이는 느낌인데, 보통은 페르넷과 콜라를 1:2에서 1:5까지 취향에 맞게 섞는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도 페르넷 소비량이 많은 편인데, 주로 진저 에일을 체이서로 함께 마신다.
페르넷과 아녜호 데킬라를 라임주스와 함께 셰이킹해 진저 에일을 넣는 라 브랑카(La Branca)라는 레시피도 있다. 요것도 집에 재료가 다 있으니 시도해 볼 만할 듯.
만화 <바텐더> 6권에는 탄산수를 섞은 롱 드링크 스타일의 '페르넷 브랑카 소다'가 등장한다. 정확한 레시피는 나와 있지 않은데, 하이볼 비율보다는 페르넷을 조금 적게 넣어 은은하게 마시는 게 좋을 것 같다.
GS25 스마트 오더를 통해 37,000원에 구매했는데, 소개 페이지 하단에 칵테일 레시피 두 개가 소개돼 있다. 아마 페르넷 콘 콜라(Fernet con Cola)외에 가장 유명한 레시피가 행키팽키(Hanky Panky)인 듯. 모두 집에 있는 재료들이니 만들어 봐야겠다. 식후에 니트로 한 모금 마셔도 되고, 롱 드링크류의 칵테일 베이스로도 쉽게 활용할 수 있으니 입맛에만 맞는다면 자주 구매하게 될 듯.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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