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모으게 된 카발란(KAVALAN) 5종. 솔리스트(Solist) 시리즈 네 병중 750ml 세 병은 2년 전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1L 한 병은 대만 타오위안 공항 면세점에서, 그리고 셀렉트(Select)는 와인앤모어 행사에서 구입했다. 카발란은 국내 위스키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이미 상당한 인기가 높은 대만 위스키. 인당 1병만 살 수 있는 귀중한 면세점 구매 기회를 카발란을 위해 쓰는 사람이 상당히 많을 정도.
특히 솔리스트 시리즈(Solist Series)에 대한 선호도는 상당히 높다. 하나의 캐스크에서 숙성한 위스키만 물을 섞지 않고 그대로 병입하는 싱글 캐스크 스트렝스(Single Cask Strength)라 한 병 한 병마다 개성이 출중하기 때문. 게다가 버번, 셰리 뿐 아니라 와인과 기타 주류 숙성 캐스크를 다양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사용한 캐스크 종류별, 각 배치 별 개성이 모두 다르다. 게다가 가격 또한 싱글 캐스크 스트렝쓰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리즈너블한 수준. 점점 오르는 추세긴 하지만, 그건 다른 위스키도 마찬가지니까.
이렇게 매니아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카발란. 하지만 그 역사는 채 20년이 되지 않았다. 백 년 단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카치 위스키나 버번 위스키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타케츠루 마사타카로부터 시작된 일본 위스키의 역사도 100년에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2002년까지는 사기업이 증류소를 만드는 것이 아예 금지돼 있었다. 카발란을 창립한 것이 2005년이니 이제 15년쯤 됐다. 모회사인 킹카(King Car, 金車) 그룹은 원래 커피와 라면 등 다양한 식음료를 생산하는 회사인데, 50년 전 선대 회장대부터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2006년 12월 증류소를 완공하고, 2008년 12월에야 첫 위스키를 생산했다.
그런데 외부에서는 과연 대만 위스키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많았던 모양이다. 일단 증발되는 양이 너무 많다. 천사의 몫(angel's share)라고 표현하는 나무통 숙성 중 증발량은 서늘하고 습한 스코틀랜드의 경우 보통 1년에 1~2% 정도, 평균적으로 스코틀랜드보다 따뜻한 미국의 경우도 평균 4% 정도다. 그러나 아열대 기후인 대만의 경우 증발량이 10~15%를 상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매해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위스키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준. 하지만 카발란은 이런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증발량이 많은 만큼 숙성이 빨리 진행되어 5년 정도의 숙성으로도 나무통의 고혹적인 풍미를 충분히 입힐 수 있다는 것. 오히려 너무 오래 숙성하면 나무향이 과하게 드러나고 질감이 뻣뻣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카발란은 10년 이상의 고숙성 위스키를 거의 생산하지 않으며, 대부분 숙성 년수 표기 없이(NAS) 출시한다.
숙성이 중요하기에 카발란은 나무통 선별과 제작에 온 신경을 기울인다. 위 동영상은 카발란의 오크통 트리트먼트(shave, toast, rechar) 과정. 카발란의 전(前) 마스터 디스틸러 이안 창(Ian Chang)은 위스키 생산에서 좋은 캐스크가 차지하는 비중이 60~70%에 이른다고 언급했다. 그런 만큼 좋은 캐스크를 확보하고, 좋은 숙성 환경을 조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인다. 카발란의 숙성고는 5층으로 되어 있는데, 위로 올라갈 수록 온도가 높아진다. 맨 아래와 맨 위층의 온도차가 섭씨 15도에 이를 정도. 또한 통의 크기가 클수록 숙성은 더뎌지는데, 카발란은 큰 통을 위층에, 작은 통을 아래층에 숙성함으로써 밸런스를 맞춘다. 또한 여름에는 저장고 환기구를 닫아 높은 온도를 유지하고, 겨울에는 개방해 낮은 온도를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계절의 온도 변화에 따른 나무통 및 액체의 팽창과 수축을 숙성에 그대로 이용하려는 전략인 것 같다. 이안 창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숙성 기간은 캐스크 크기에 따라 180리터 4년, 350리터 5년, 500리터 6년 정도 된다고.
캐스크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는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알 수 있다. 대문에 줄창 오크통 이미지만 나오니까. 최근엔 좋은 오크통, 특히 셰리 오크통을 구하기 어려워 시즈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셰리 생산 후 자연스럽게 나오는 오크통을 구하기 어려우니, 새 오크통을 만들어 (셰리 숙성 오크통을 얻을 목적으로) 3년 정도 셰리를 담아 숙성하는 것. 당연히 가격이 훨씬 비싸고, 위스키 값이 오르는 이유가 된다. 다른 위스키 생산자들의 상황도 유사하다니, 애호가로서 걱정이 크다.
증류 전 원액인 맥아즙(wort) 양조 시에는 위생 관리와 온도 조절이 용이한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를 사용하며, 60시간 정도 발효해 7~8% 정도의 알코올 함량을 얻는다. 다른 증류소에 비해 1~2% 정도 높은 도수인데 그 정도 도수에서 가장 풍부한 맛과 향을 얻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 Since we don’t have history, we need quality. ”
카발란은 역사가 짧은 만큼 더욱 품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을 수많은 국제 대회 수상으로 입증했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증류소 히스토리 타임라인 중반 이후는 거의 수상 소식으로 점철돼 있을 정도. <위스키 바이블(Whisky Bible)>의 저자 짐 머레이(Jim Murray) 같은 위스키 전문가들도 호평을 아끼지 않는다.
카발란의 라인업은 카발란 시리즈(Kavalan Series), 콘서트마스터 시리즈(Concertmaster Series), 솔리스트 시리즈(Solist Series), 디스틸러리 셀렉트 시리즈(Distillery Select Series), 디스틸러리 리저브 시리즈(Distillery Reserve Series) 등 총 다섯 가지. 한국에서 가끔 보이는 클래식(Classic)은 카발란 시리즈에 속하는데 퍼스트 필 캐스크만 사용해 4년 숙성한다. 셀렉트 시리즈는 주로 세컨드 필 캐스크에서 4년을 숙성한다고.
카발란은 대만 북동부 이란현(宜蘭縣)에 위치하고 있다. 타이베이에서 차로 1~2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대만 여행 시 들르는 분들도 많은 듯. 이놈의 코로나ㅠㅠ 카발란이라는 이름은 이 부근의 원주민 부족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이 곳에 증류소를 세운 이유는 위스키 생산에 필수적인 좋은 물과 기후 때문. 산에 쌓인 눈이 녹으며 흘러내려오는 미네랄이 풍부한 물을 얻을 수 있고, 덥고 습한 기후와 산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만들어내는 기후를 숙성에 활용하려는 의도다.
짧은 시간에 훌륭한 성취를 이룬 대만 위스키, 그 중심에 카발란이 있다. 최근에 맛본 오마르(Omar) 위스키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업계 전반의 품질이 상당하다는 반증이 아닐지. 한국 위스키도 얼른 세계적 품질을 갖췄으면 좋겠다. 최근 쓰리 소사이어티스, 김창수 위스키 증류소 등 한국에도 위스키 증류소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으니 기대해 봐도 좋을 듯.
5종에 대한 테이스팅 노트는 별도 포스팅으로 정리했다.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추가.
최근 진행된 카발란 온라인 시음회 신청에 3000명 정도 몰렸다고. 50명씩 2차례 진행이니 자그마치 30대 1의 경쟁률... ㅎㄷㄷㄷ 이번엔 아쉽게도 선정되지 못했지만, 올해 주기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니 틈틈이 확인해 보는 게 좋을 듯.
'일상의 음주 > 위스키·브랜디·리큐르·기타증류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각병 호세 쿠엘보와 차원이 다른, 호세 쿠엘보 '트라디시오날' 레포사도(Jose Cuervo Tradicional Reposado) (0) | 2021.02.15 |
---|---|
대만을 대표하는 증류소, 카발란(KAVALAN) 위스키 5종 시음 (1) | 2021.02.11 |
독일의 소화제용 리큐르, 언더버그(Underberg) (0) | 2021.02.08 |
면세점 픽업용 위스키 추천, 달모어 킹 알렉산더 3세(The Dalmore King Alexander Ⅲ) (0) | 2021.02.07 |
고오급 리큐르 4종 : 쿠엥트로(Cointreau), 그랑 마니에르(Grand Marnier), 드람뷔(Drambuie), 디사론노(Disaronno) (0) | 2021.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