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가 쿠바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인과 바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 그의 대표작들이 쿠바에 머물던 시절 완성됐다. 그는 위 동상과 같이 수염을 기르고 단골 바인 엘 플로리디타(El Floridita)에 출몰하곤 했는데, 특히 다이키리(Daiquiri) 칵테일을 즐겼다고 한다.
다이키리는 럼과 라임주스, 설탕 시럽을 셰이킹 해 만드는 전형적인 포뮬러의 단순한 칵테일이지만, 'simple is the best'라는 걸 일깨워주는 클래식 칵테일이다.
그런데 헤밍웨이는 단 것을 싫어했다. 아마도 건강상의 이유도 일부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건강상의 이유라면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데, 헤밍웨이는 말술을 즐기는 술고래였다는 게 아이러니. 어쨌거나 대문호이자 단골인 그의 취향에 맞게 엘 플로리디타의 바텐더는 특별한 다이키리를 고안했다. 럼의 양은 2배로 늘리고, 설탕 시럽은 넣지 않은 것. 이 레시피는 쿠바에서 애정을 담아 헤밍웨이를 부르는 별명인 파파(Papa)를 따서 파파 도블레(Papa Doble), 혹은 헤밍웨이 다이키리(Hemingway Daiquri)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는 이 칵테일을 한자리에서 16잔이나 마셨을 정도로 사랑했다고. 한 잔에 럼이 60ml 사용되니까 60×16=960ml... 앉은자리에서 럼을 1L나 마신 셈이니 정말 ㅎㄷㄷ하다;;;
그런데 이 레시피는 사실 밸런스가 잘 맞지 않는다. 럼의 양은 두 배로 늘린 데다 설탕은 빼버렸으니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너무 독해서 마시기 어려운 술인 게 자명하다. 그래서 당분을 첨가하는 형태로 조금씩 변형이 일어났는데, 보통 마라스키노 리큐르(Maraschino Liqueur)와 자몽주스를 추가하고 아예 설탕 시럽을 넣는 레시피도 있다. 이렇게 변형된 다이키리를 보통 헤밍웨이 스페셜(Hemingway Special)이라고 부른다.
나는 룩사르도 마라스키노 오리지날레(Luxardo Maraschino Originale) 백 레이블에 적혀 있던 레시피를 참고했다. 참고로 이 레시피는 국제바텐더협회(IBA)의 레시피와 같은데, IBA의 레시피는 가니시를 쓰지 않는 것만 차이가 있다. 자사의 체리를 사용하게 만들고 싶은 룩사르도의 츄악함ㅋㅋㅋㅋㅋㅋ
- 재료 : 화이트 럼 60ml, 마라스키노 리큐르 15ml, 라임 주스 15ml, 자몽 주스 40ml
- 가니시 : 없음, 혹은 라임 휠
- 제조법 : 셰이크
셰이커에 재료를 모두 넣고 강하게 셰이킹 한 후 미리 칠링한 커다란 칵테일 잔 혹은 쿠페 글라스에 담아 낸다. 가니시는 사용하지 않아도 무방하며, 일반적으로는 라임 휠로 간단하게 장식하는 경우가 많은 듯.
나는 라임은 직접 즙을 내 썼고, 자몽 주스는 분다버그 핑크 자몽으로 대체했다. 일반 자몽주스보다 과일 풍미는 덜하고 단맛은 더 있을 듯.
잔은 리델 베리타스 쿠페(Riedel Veritas Coupe) 글라스를 썼다. 가지고 있는 칵테일 잔이나 칵테일용 쿠페 잔으로는 용량 소화가 안 될 것 같아서^^
역시나... 글라스가 거의 가득 찼다.
완성. 일단 은은한 핑크 컬러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 오리지널 자몽 주스를 쓰는 것보다 컬러 면에서는 확실히 베네핏이 있을 듯. 코를 대니 15ml 밖에 들어가지 않은 마라스키노 리큐르가 존재감을 뽐낸다. 거기에 달큼한 럼 풍미와 새콤한 시트러스 풍미가 슬쩍 묻어나는 느낌.
입에 넣으면 역시나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마라스키노 리큐르지만 라임 특유의 풋풋함과 새콤함, 자몽의 쌉싸름함, 화이트 럼의 부드럽고 달싹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럼의 양도 많은 데다 마라스키노 리큐르도 낮은 도수는 아니라서 상당히 독할 줄 알았는데, 너무나 향긋하고 부드러워 술이 술술 넘어간다. 이거 완전히 작업주다.
프라이빗 라인업의 하나가 될 듯.
내친김에 라임 휠도 꽂아 보았다. 프레시 라임은 다 써버려서 말린 걸로.... 예쁘네♥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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