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진토닉(Gin & Tonic) 마셔보겠다고 직구로 구매한 피버 트리 인디언 토닉워터(Fever-Tree Indian Tonic Water). 진토닉 좀 말아봤다는 분들에게는 단연 최고의 토닉 워터로 꼽힌다.
성인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진로 토닉워터를 통해 토닉 워터가 뭔지 모를 리 없지만 그래도 정의를 확인해 보자. 보통 좋은 제품은 정의에 가장 부합하는 제품이니까. <그랑 라루스 요리백과>에 따르면 토닉워터는 '탄산가스와 설탕을 첨가하고 과일이나 식물의 천연 추출물로 향을 낸 탄산음료'로 보통 퀴닌(quinine)을 함유한 것이 많다.
요즘 토닉워터는 얼음과 레몬 슬라이스를 넣어 마시거나 진(gin)에 섞어 롱 드링크 칵테일(=진토닉)을 만드는 용도로 쓰이지만, 원래는 영국 식민지 국가들에서 특히 말라리아 치료제 및 해열제로 사용했다. 말라리아 치료의 핵심 성분은 퀴닌. 남아메리카 대륙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남북으로 뻗어 있는 안데스 산맥의 고산 지대에서 주로 자라는 키나 나무(Cinchona officinalis L.) 껍질에서 추출한 천연 물질이다.
대항해시대 아메리카 대륙 등으로 진출하던 유럽인들은 말라리아 등의 질병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는데, 딱히 치료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말라리아는 모기에 의해 감염되어 발열 등의 합병증에 시달리다가 심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전염병. 1600년대 초 페루의 스페인 총독 신콘(Chinchon)의 부인도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지경이었는데, 당시 페루 원주민들의 치료법인 키나 나무껍질 달인 물을 마시고 완쾌되었다. 이후부터 키나 나무껍질이 말라리아 치료제로 쓰이게 되었다. 문제는 퀴닌이 너무 썼다는 것. 때문에 당분을 첨가하고 레몬, 라임, 오렌지 등 시트러스의 상큼한 추출물을 더해 토닉워터가 탄생했다. 그런데 퀴닌은 독성이 있어 과량 복용 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토닉워터에 포함된 소량의 퀴닌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피버 트리 토닉 워터는 천연 퀴닌 성분을 사용한다. 원재료를 보면 탄산을 넣은 생수와 설탕, 구연산, 그리고 '내추럴 퀴닌을 포함한 내추럴 향료'라고 되어 있다. 합성 감미료는 사용하지 않는다.
피버 트리의 캐치 프레이즈는 참으로 매력적이다.
"당신 음료의 3/4이 (칵테일) 믹서라면, 최고의 믹서를 써라"
(If 3/4 of your drink is the mixer, mix with the best)
그러니 마셔 볼 밖에.
피버 트리는 2004년 찰스 롤스(Charles Rolls)와 팀 워릴로우(Tim Warrillow)가 함께 설립했다. 이름은 그들의 대표 상품인 토닉 워터에서 따 왔다. 피버 트리는 해열제용 나무를 의미하는데, 앞서 언급한 대로 토닉워터는 원래 해열제로 쓰였으니까.
찰스와 팀은 둘 다 식음료 업계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들로, 고객의 식음료에 대한 관심과 취향이 점점 높아지는 것을 보고 조만간 프리미엄 스피릿(premium spirits)이 호황을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칵테일용 고품질 믹서 시장은 상대적으로 빈약했기 때문에, 그들은 최고의 믹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18개월 동안 도서관과 세계 각지를 돌며 연구를 거듭한 결과 2005년 '인디언 토닉워터(Indian Tonic Water)'를 출시하게 된다. 맞다. 이 포스팅의 주인공 바로 그거다.
홈페이지에는 사용하는 재료의 산지와 특성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자부심 뿜뿜이 느껴진달까.
현재는 토닉워터 종류만 해도 9가지에 이르며, 여러 풍미를 가미한 진저 비어(ginger beer)와 진저 에일(ginger ale), 레모네이드 등 다양한 음료를 판매하고 있다. 2015년 기준 50여 국가에 그들의 제품을 수출할 정도로 승승장구하는 중. 피버 트리는 2013년 런던 증권 거래소에 상장되었으며, 그 가치는 1.5억 파운드(한화 2,445억 원)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2018년엔 그 가치가 4배 이상 올랐다는 것. 거의 1조에 가깝다는 얘긴데, 롯데칠성의 시가총액이 1.4조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ㅎㄷㄷ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참고로 피버 트리는 2018년부터 3년간 퀸즈 클럽(The Queen's Club) 테니스 대회의 메인 스폰서였다. 테니스 팬이 아니다보니 어느 정도 규모의 대회인지는 모르지만, 피버 트리를 검색할 때 테니스 경기 영상도 제법 검색되는 걸 보면 듣보잡 대회는 아닌 것 같다. 대회 이름이 바뀐 걸 보니 현재 스폰서십은 종료된 상태인 듯.
이제 진짜 진토닉을 맛볼 차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마틴 밀러 진(Martin Miller's Gin)을 사용했는데, 단맛이 적어 섬세하고 깔끔한 진의 풍미를 살려주면서, 목 넘김 후의 쌉쌀한 맛이 절로 다음 모금을 부른다. 상당히 섬세하긴 하지만 의외로 시트러스의 상큼함과 서양배 같은 달콤한 과일 풍미가 명확히 드러나는 것이 조연의 역할에 아주 충실한 느낌. 명불허전이다.
내친김에 텐커레이 넘버 텐(Tanqueray no.10)으로도 말아봤다. 향긋한 꽃 향기와 상큼한 시트러스 풍미가 잘 살아나는 게 궁합이 아주 좋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마시면 마실 수록 처음엔 가볍게 드러나던 후추 같이 톡 쏘는 스파이스 향이 명확히 피어나더라는. 텐커레이 넘버 텐이 후추 향이 도드라지는 진이 아닌데 왜 그런지 신기할 따름. 나중에 다시 한번 마셔 봐야겠다.
당 함량은 100ml 당 7.1g. 150ml로 환산하면 10.65g, 250ml로 환산하면 17.75g이다. 자주 쓰는 초정 토닉워터 250ml 캔의 당 함량이 28g이니까 10g 이상 적다. 설탕 함량은 적고 내추럴 퀴닌 성분이 들어있으니 드라이한 인상과 쌉쌀한 맛이 강조되는 것은 당연. 게다가 단맛이 적으니 섬세한 진의 풍미가 더욱 잘 살아나는 느낌이다.
진의 풍미를 잘 살려주면서 마지막 모금까지 깔끔한 토닉을 원한다면 피버 트리가 정답이다. 물론 가격이 국산 토닉을 사용할 때보다 2,000원 이상 상승하지만, 생각해 보면 아메리카노 한 잔 값도 안 되는 금액 아닌가.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 직구 ㄱㄱ
홈페이지에 소개된 진토닉 메이킹 영상. 아래 적혀 있던 레시피는 진 50ml에 토닉워터 150ml, 얼음 채운 잔에 가니시로 트위스트 라임 필을 추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기분과 몸 상태에 따라 30ml에 120ml(1:4), 45ml에 135ml(1:3) 레시피를 사용하는 편인데, 앞으로 피버 트리로 진토닉을 만들 때는 45ml에 150ml 한 캔을 쓰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어쨌거나 좋은 토닉워터를 만나서 반갑다. 앞으로 잘 부탁해~!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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