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내추럴 와인 전문 샵 내추럴보이에서 마크 토마스 글라스 패밀리 세일을 하길래 구입한 와인잔들. 잔덕이 이런 뽐뿌를 참아내긴 어렵다. 위스키 글라스까지 포함하면 이미 찬장이 터져 나갈 정도로 사들였지만... 잔에 대한 갈망은 식을 줄을 모른다ㅠㅠ
어쨌거나 개인적으로 집에서 사용하는 와인잔은 거의 잘토로 정착하는 중이었다. 사실 디자인(과 가성비)만 보면 리델, 그중에서도 베리타스 시리즈가 딱 내 스타일이다. 와인 아로마/풍미를 피우는 면에 있어서는 리델/잘토 둘 다 나름 괜찮은데 단지 와인 별로 편차가 있는 정도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하지만 그립감과 무게, 입술에 닿는 림의 촉감에 있어서는 잘토의 압승이다. 쓰면 쓸 수록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부분. 리델 베리타스(그리고 최근에 나온 퍼포먼스) 시리즈는 머신 메이드의 한계가 명확하다. 내가 리델 소믈리에 시리즈 같이 마우스 블론으로 만든 잔을 쓸 수 없는 이상, 잘토가 최선의 선택.
그런데 마크 토마스가 펨셀을 한다니, 한 번 제대로 사용해 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내추럴 와인을 취급하는 곳이나 ㅂㄴㅋㅅ 디너 등에서 만난 적은 있었지만, 본격 사용해 보지는 않았으니까.
마침 가지고 있었던 잘토 화이트, 보르도 글라스를 얼마 전에 깨먹었으니 마크 토마스로 대체하기로 했다. 스위트는 위스키/브랜디 용으로 자주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추가 구매했다. 오른쪽부터 화이트, 스위트, 보르도 와인용 글라스.
마크 토마스 와인 글라스는 입으로 불어서(mouth-blown) 만드는 수제 크리스털 글라스다. 내추럴 와인 전문 수입사 뱅베에서 '더블 벤드(Double Bend)'라인업을 수입하는데, 이름 그대로 볼 부분이 2단으로 각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각진 볼은 개성적인 디자인으로 시선을 끄는 효과 외에 스월링 시 와인이 물결치도록 해 공기 접촉면을 넓히고 그로 인해 향이 잘 피어나도록 돕는다.
홈페이지를 보면 라인업이 단촐하다. 화이트, 올라운드, 레드 익스프레션(보르도), 레드(부르고뉴), 스위트, 샹파뉴, 그리고 물잔과 디캔터, 물병이다. 솔직히 리델의 경우 모양도 좋고 기능도 마음에 들지만 품종/지역/라인업 별로 너무 자잘하게 종류를 나누기 때문에 선택과 구매의 피로도가 쌓인다. 잘토로 마음이 넘어간 건 선택지가 간단해진다는 이유도 있었다.
요렇게 사진을 찍어놓으니 간지도 좔좔... 디자인도 상당히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사실, 마크 토마스 더블 벤드는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은 아니다. 아니, 싫어하는 디자인에 가깝다. 뭣보다 이 잔의 핵심인 2단으로 구부러진 볼 디자인이 가장 마음에 안 든다. 근데 왜 산 거니...
2단으로 구부러진 볼은 기능적으로는 우수할 지 몰라도 아랫부분이 우굴우굴한 게 만들다 만 것 같다. 반짝이는 부분이 주름 잡힌 듯 보이는 것도 마음에 안 든다. 구부리기는 하되 우굴우굴해 보이지 않게 처리하는 기술은 없었을까?
그래도 볼의 크기가 작은 화이트와 스위트 글라스는 우굴우굴한 느낌이 덜하다. 비율도 괜찮은 것 같고.
- 더블 벤드 화이트 : 높이 220mm, 용량 360ml, 어리고 상큼한 화이트와 로제 와인, 빈티지 샴페인 용.
- 더블 벤드 스위트 : 높이 160mm, 용량 265ml, 포트와 다양한 디저트 와인, 브랜디 용.
자주 사용하는 그래서 자주 파손되는 화이트 글라스의 경우, 모양은 잘토가 더 마음에 들지만 마크 토마스도 괜찮은 데다 가격이 2/3 정도밖에 되지 않으므로 퍼포먼스가 괜찮으면 갈아탈 수도 있을 것 같다.
레드 익스프레션은 계속 봐도 정감가는 모양은 아니다. 비율도 마음에 안 들고. 하지만 역시 퍼포먼스가 좋다면 받아들이게 될 지도. 무엇보다 넘나 가볍기 때문에 사용하면 할 수록 정이 붙을 것 같기도 하다.
- 더블 벤드 익스프레션 레드: 높이 220mm, 용량 660ml, 우아한 리저브 와인, 보르도 블렌드와 오크 숙성 화이트 와인 용.
그래서 일단 어제 마시다 남은 와인으로 첫 테스트. 제법 맛있게 마셨던 주카르디 세리에 에이 말벡(Zuccardi Serie A Malbec)이다. 보르도 블렌드는 아니지만 보르도 출신 품종이니까.
(참고로 사진에는 글라스에 김이 서려 있지만, 미리 따라 놓고 기다렸다가 온도를 높여서 마셨다.)
그런데 어제와는 풍미의 스펙트럼이 확연히 달라졌다. 어제 리델 베리타스 올드 월드 시라 글라스에 마셨을 때는 풋풋한 붉은 꽃과 레드 베리, 초콜릿 향이 섬세하고 우아하게 드러났다면, 오늘은 마크 토마스 더블 벤트 레드 익스프레션 글라스에서는 검은 베리와 흑연 등의 밀도 높은 향이 힘 있게 드러난다. 게다가 입에서도 꼿꼿한 타닌이 제법 느껴진다. 진공 마개로 막아 냉장고에 보관했으니, 하루 지났다고 와인 성향이 이렇게 많이 변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역시, 글라스의 세계는 심오하다. 잔덕의 이유. 다음엔 진짜 보르도 블렌드에 사용해 봐야지. 셀러에 뭐가 있더라.. 뒤적뒤적;;;
로고도 마음에 든다. 화이트, 스위트 글라스도 빨리 써 보고 싶군...
'21년 2월 21일 추가...
더블 벤드 익스프레션의 경우 사용하면 할 수록 향을 명확하고 힘있게 드러내고 입에 닿는 감촉도 좋아 마음에 든다. 올라운드로 사용하기도 적당한 사이즈와 형태라 파손되면 다시 살 예정.
더블 벤드 화이트 글라스의 경우도 와인을 넘어 벨지언 에일, 세종 등 맥주잔으로도 활용도가 넓어지고 있다. 잘 사용하던 리델 베리타스 비어 글라스를 밀어냈을 정도. 이것도 재구매 의사가 높다.
가장 아쉬운 것이 더블 벤드 스위트. 딱히 나쁜 것은 아닌데 사이즈가 작다 보니 가벼운 게 장점이 아니라 부실해 보이는 느낌이랄까. 디저트 와인이나 위스키/코냑용 글라스는 향과 맛을 피우는 것 외에도 간지가 중요한데 그 점이 부족한 느낌.
개인 척한 고냥이의 [알코올 저장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