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엔 재료가 많기로 소문난(?)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Singapore Sling)을 만들어 봤다.
그런데 훨씬 간략한 싱가포르 슬링 레시피도 있다. 심지어 이것도 1930년대 <사보이 칵테일 북(Savoy Cocktail Book)>에 수록된 유서 깊은 레시피. 진과 레몬 주스, 체리 브랜디, 설탕을 넣고 셰이킹 한 후 클럽 소다로 풀업한다.
그 이야기가 만화 <바텐더>에도 소개돼 있다. 굳이 간단한 <사보이> 버전의 싱가포르 슬링을 만들지 않고 '래플스(Raffles) 스타일'의 레시피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어쨌거나 예전엔 재료가 많이 부족해서 만들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최근 제법 재료가 갖추어져서 한 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진 30ml, 체리 브랜드 15ml, 쿠엥트로 7.5ml, 베네딕틴 7.5ml, 그레나딘 시럽 10ml, 앙고스투라 비터스 1대시, 라임 주스 15ml에 파인애플 주스를 120ml나 넣고 셰이킹. 이후 파인애플과 체리로 장식하면 완성이다.
물론 재료가 다 갖춰진 것은 아니라서... 일단 체리 브랜디는 보통 체리 히어링(Cherry Heering)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룩사르도 체리 리큐르와 룩사르도 마라스키노 체리의 국물(?!)을 섞어서 사용했다. 물론 안다. 체리 리큐르와 체리 브랜디는 엄청난 풍미 차이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왠지 둘을 섞어 쓰는 게 그나마 체리... 라는 이름에 걸맞을 것 같아서.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이 시도는 완벽한 실패로 돌아갔다-_-;;;
그리고 그레나딘 시럽 대신 오미자청. 그레나딘 시럽에는 없는 쌉쌀함이 더해지겠지만, 많은 양은 아니니까. 그리고 그나마 밝은 선홍색을 내줄 수 있는 재료라고 생각해서 사용해 봤다. 파인애플 주스는 200ml 썬업 팩으로.
재료를 셰이커에 다 넣은 것만으로도 이렇게나 많다. 여기에 얼음까지 넣으면 정말 셰이커가 꽉 찰 듯... 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한 2cm 남기고 꽉 찬 것 같다.
셰이커 표면이 차가워질 때까지 열심히 셰이킹.
그리고 잔에 따랐다. 싱가포르 슬링에 걸맞은 긴 고블릿 글라스가 없어서... 그냥 롱 드링크 글라스에 따랐다.
파인애플 주스를 넣고 셰이킹을 하면 요렇게 거품이 올라앉는다. 개인적으로는 요 거품을 그닥 선호하지 않아서 파인애플 주스는 같이 셰이킹 하지 않고 나중에 별도로 넣을 때도 있다.
그리고 가니시로 체리 한 개... 귀찮아서 가니시 픽 없이 그냥 퐁당 ㅋㅋㅋㅋ 파인애플 가니시는 생략.
완성. 사진이 그렇게 찍힌 것도 있지만, 컬러가 밝지 않고 좀 탁하다. 마라스키노 체리 국물주스의 영향 때문인 듯. 밝은 레드 체리 컬러가 매력적인 칵테일인데... 시작부터 일단 파울.
맛을 봤는데, 일단 코에서부터 마라스키노 체리 리큐르의 향이 넘나 튄다. 아니, 5ml 남짓 넣은 것 같은데 이렇게 전체 풍미를 좌우할 일인가...? 다음에 체리 리큐르 대용품은 차라리 '체리 국물 + 디사론노'를 사용해 볼까 싶다.
하지만 입에서는 달콤 새콤한 파인애플 주스를 중심으로 진한 열대과일 맛과 함께 은근히 복합적인 뉘앙스가 어우러지는데, 문제는 넘나 달다는 것. 그냥 단 것이 아니라, 정말 너무나 달다.... 거의 시럽을 마시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결국 탄산수로 풀업... 했더니 그제야 좀 마실만 해졌다. 진한 단맛으로 인한 끈적임이 줄어서 훨씬 산뜻하고 깔끔한 느낌. 체리와 열대과일 풍미, 은은한 허브 뉘앙스가 적당하게 어우러진다. 탄산수를 넣은 쪽이 훨씬 다양한 풍미를 잘 살려내고 밸런스 또한 낫다.
어쨌거나 레플스 버전 싱가포르 슬링은 만들기는 어렵고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나니 다음엔 만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리커닷컴(liquor.com)에서 레플스 레시피를 개량해서 좀 더 임팩트 있게 만든 레시피가 있다니, 마지막으로 시도해 봐야지.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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