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의 음주/우리술·한주

경주 교동법주(慶州 校洞法酒)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2. 7. 10.

지난 6월 경주 여행 때 방문했던 교동법주. 2015년에 첫 방문하고 7년 만이다.

 

그런데 외관은 하나도 안 바뀌었다. 다만 코로나19 관련 안내문만 하나 추가되었을 뿐.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공개 시연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방문한 시간에는 누룩을 열심히 딛고 계셨음. 왼쪽에 계신 분이 국가무형문화재 제86-3호 "향토술담기" 경주교동법주 기능보유자 최경 선생이다. 설명을 조근조근 잘해 주셔서 끝까지 다 관람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가족 여행이라 다음 일정이 있어서 눈물을 머금고 술만 한 병 산 후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경주교동법주는 최경 선생의 10대조이자 숙종 시절 사옹원 참봉을 지낸 최국선이 낙향하여 처음 빚은 술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는 만석꾼으로 알려진 최씨 집안의 가양주로 더욱 유명하다. 만석꾼 집안에서 손님을 접대하고 제사를 지낼 때 사용했던 술이니 얼마나 정성스럽게 양조한 술일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1986년 최경 선생의 어머니 배영신 여사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으며, 2006년 최경 선생이 대를 이었다.  

원재료는 직접 디딘 밀누룩과 국산 찹쌀. 밑술도 덧술도 찹쌀만 사용한다. 물은 얼마 전까지도 집안의 우물물을 사용했는데, 몇 년 전 맛이 변하는 바람에 정제수를 사용한다고 한다. 정성껏 빚은 술을 100일간 숙성하여 살균하지 않고 출시하기 때문에 유통기간은 1달 정도로 짧은 편. 그리고 반드시 냉장 보관을 해야 한다. 또한 여름에는 술을 빚지 않으신다고.

 

 

교동법주

 

www.kyodongbeobju.com

냉장 유통에서 문제가 자주 생겼기 때문인지 온라인 판매는 중지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재개된 것 같다. 여행 중이라면 술을 구매해서 들고 다니는 것보다는 택배를 요청하거나 온라인으로 주문해 배송받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최씨 가문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훈이 있다고 한다. 

  •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 사방 백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게 하라
  •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 재산은 만석 이상 늘리지 마라
  •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모두 한 번만 읽어보아도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문장들이다. 왜 최씨 가문이 만석꾼으로 오랜 부와 명성을 누리면서도 존경을 받아왔는지 알 만 하다.

 

반응형

어쨌거나 향긋한 교동법주를 오랜만에 맛본다.

 

그런데 유통기한이 7월 3일... 6월 초 여행에서 사둔 것을 부모님과 함께 마시려고 냉장 보관하고 있었는데 기간이 좀 지나버렸다. 

 

그래도 뭐, 좋은 재료로 정성껏 잘 만든 술이니 마실만은 하지 않을까.

 

그런데 잔에 따랐을 때 컬러부터 예전에 마셨을 때와 조금 다르다. 미황색 감도는 금빛이었던 기억인데, 뭔가 녹갈색이 비치며 탁한 느낌이 살짝 든달까. 입에 넣었을 때도 은은했던 단맛이 확연히 적어지고 숙성으로 인한 묵은 느낌이 살짝 드러난다. 물론 특유의 복합적인 과일 풍미와 은은한 곡물향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는 밝고 향긋한 풍미가 더욱 확실하게 드러나는 숙성(?) 전의 인상이 더 좋지만, 유통기한 전후의 묵은 느낌을 선호하는 분도 분명 있을 것 같다.

 

경주 방문할 때가 아니더라도 종종 사 마실 만한 술이다. 선물용으로도 좋고.

 

주의할 점. 

 

경주법주 초특선(慶州法酒 超特選),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우리 술

처음 마셔보는 경주법주 초특선(慶州法酒 超特選). 오래전부터 마셔보고 싶었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1년에 1만 병 정도만 한정 생산하는 데다 판매처도 많지 않기 때문. 판매처가 한정적이

wineys.tistory.com

경주법주와 교동법주는 다른 술이다. 경주법주는 상업화된 양조장에서 만드는 술. 최근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경주법주 초특선의 경우 일본의 준마이 다이긴죠급 고급 사케에 대응할 만한 스타일이다. 전통 가양주 스타일의 교동법주와는 풍미의 경향성이 전혀 다르다.

 

그리고 교동법주 댁을 찾아가는 길에, 그 옆 음식점인 요석궁에서 '최부잣집 가양주'라는 컨셉으로 모던한 디캔터에 담은 술을 출시했다는 플래카드를 크게 걸어놓고 있었다. 혹시 교동법주와 관계있는 술인가 싶어 물어봤는데, '최씨 가문의 가양주로 무형문화재가 된 술은 교동법주 하나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 술(이름이 '대몽제'라는 것도 검색해 보고 알았다)에 대한 논평(과 비난)을 극도로 자제하는 느낌. 다만 요석궁을 운영하며 이 술을 만든 분을 집안 어르신 중 하나라고 언급하던데, 뭔가 말할 수 없는 집안 내의 사정이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맛 볼 기회가 있으면 모를까 사서 마시진 않을 것 같다. 신경을 많이 쓴 티가 역력한 디자인 때문인지 가격도 2배 이상 비싸다.

 

부디 오래오래 좋은 술 만들어주시길.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