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방문한 연남롱 비스트로 수부니흐(Souvenir). 독거노인의 복직(?!)을 축하하기 위해 올빈 와인들이 모였다.
혹시 모를 코르크 바사삭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아소를 준비했다.
그런데 2010년 빈티지를 먼저 오픈해 봤더니 코르크가 넘나 멀쩡한 것... 그래서 1998 타우라시 리제르바까지 그냥 소믈리에 나이프로 오픈했는데 모두 멀쩡하게 잘 나왔다. 모두 코르크 상태 최상. 타우라시는 와이너리에서 리코르킹을 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와인들 모두 준비 완료.
일단 파티 스마트 한 알 잡숴 주시고,
스마트한 식전빵. 정확히는 식전빵이 아니지만 한국에서야 식전빵이라는 인식이 강하지. 식빵에 바질 페스토를 얇게 펴 바르고 치즈를 뿌렸는데 일반적인 비스트로의 개성 없는 빵보다 훨씬 낫다.
시저 샐러드.
비슷한 재료로 해도 집에서는 왜 이 맛이 안 나는지...
때마침 화이트 와인 등장. Domaine La Soufrandiere, Poully-Vinzelles Climat 'Les Quarts' 2015. 와인을 마실 때는 레이블 하단에 적힌 브렛 브라더스(Bret Brathers)라는 이름을 보고 생산자가 브렛 브라더스인 줄 알았다. 그런데 브렛 브라더스는 장-기욤 & 장-필립 브렛(Jean-Guillaum & Jean-Philippe Bret) 형제가 설립한 네고시앙 이름이고, 그들 집안에서 소유한 도멘 이름이 바로 레이블 상단에 쓰인 라 수프랑디에르였던 것. 개인적으로는 브렛 브라더스를 먼저 접했기에 이런 착각을... 참고로 함께 일하던 막내 동생 마르크-앙투안(Marc-Antoine Bret)은 아마도 2014년에 유명을 달리한 듯.
브렛 형제는 마코네(Maconnais) 지역에서 최고의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런 그들이 마코네 최고의 클리마 중 하나에서 만든 2015년 빈티지이니 뭐... 사실 첫인상은 레몬 같은 신맛이 너무 강하고 산화향이 도드라지는 느낌이 들어 상태가 좋지 않은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시간이 지날수록 노란 자두 같은 핵과 풍미가 부들부들한 주질에 실려 오는 게 어마어마한 화이트라는 느낌을 팍팍 전달했다.
게다가 부담스러웠던 산미는 음식과 만나는 순간... 와 이건 뭐 최고의 푸드 프렌들리 와인. 눈에 보인다면 무조건 살 것 같다. 꼬뜨 도르 빌라주들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요즘, 즐길 수 있을 때 마코네의 좋은 화이트들을 즐겨야 한다. 이미 마코네의 가격도 상승하고 있으므로...
'레 콰르(Les Quarts)'는 뿌이-뱅젤에서 가장 유명한 클리마 중 하나라고.
또한 그들의 멘토는 그 유명한 도미니크 라퐁(Dominique Lafon).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할 생산자임이 확실하다.
해산물 오일 파스타.
화이트 라구 파스타. 완전 취저다.
Moulins de Citran 2010 Haut-Medoc. 12년 된 샤토 시트랑의 세컨드 와인. 2010년이 베스트 빈티지긴 하지만 과연 상태가 어떨지 궁금했는데, 아주 맛있었다. 확연한 부엽토 뉘앙스는 와인이 정점에 이르렀음을 드러내는 듯. 그럼에도 블랙커런트와 검붉은 베리 풍미가 명확히 드러나며, 토스티 힌트, 정향, 시나몬, 흑연, 삼나무 등과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Chateau Haut-Batailley 2008 Pauillac. 향긋한 오크 풍미에 완숙한 자두, 라즈베리, 블랙베리, 블루 베리, 검은 체리 등 다양한 과일 향이 섬세하게 드러나며 은은한 삼나무 힌트가 곁들여진다. 입에 넣으면 앞서 물랭 드 시트랑보다는 좀 더 드라이한 미감. 타닌 또한 부담스럽지는 않지만 아직 쫀쫀한 느낌이며 새콤한 산미와 어우러져 탄탄한 구조를 형성한다. 시음 적기에는 도달했지만 몇 년 더 아름답게 변화할 수 있겠다는 느낌. '뽀이약 치고는 가벼운 편'이라는 일반적인 평가도 이해가 되는데, 외려 그렇기 때문에 취저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걸 UGCB 시음회 같은 데서 마시면 상대적으로 좋은 평을 하기가 어렵겠지.
샤토 오바타이는 그랑 크뤼 5등급 샤토다. 원래는 샤토 바타이(Chateau Batailley)의 일부였으나, 1932년 샤토 바타이를 구입한 프랑수아 & 마르셀 보리(François & Marcel Borie) 형제가 상속 문제를 피하고자 1942년에 포도밭을 둘로 나누었다. 이후 프랑수아 보리의 소유가 된 작은 구획이 그랑 크뤼 4등급 샤토인 샤토 뒤아르-밀롱(Chateau Duhart-Milon)에서 구입한 포도밭과 병합해 샤토 오바타이가 된 것이다. 1953년 프랑수아가 세상을 뜨자 딸 프랑수아즈 드 브레스트 보리(Françoise de Brest-Borie)가 샤토 오바타이를 상속했으나, 경영은 그의 남자 형제인 장-유젠느 보리(Jean-Eugène Borie)가 도맡아 해 주었다고 한다. 2017년 샤토 랭주 바주(Chateau Lynch-Bages)를 보유한 카즈 가문(Cazes family)에게 인수됐다. 하지만 아직 보리 가문은 샤토 뒤크뤼-보카유(Ducru-Beaucaillou), 샤토 그랑 퓌 라코스테(Chateau Grand-Puy-Lacoste)를 소유하고 있다고.
포도밭은 22헥타르인데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65%, 메를로(Merlot) 25%,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10%가 식재돼 있다. 그런데 샤토 오바타이에는 필록세라 이후 포도나무를 심지 않았단 19헥타르의 영지가 추가로 있었다고. 카즈 패밀리가 인수한 후 2018년부터 테루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방향으로 심층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하니, 조만간 샤토 오바타이의 생산량과 스타일 모두에서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제발 가격만은....)
예약 주문으로만 먹을 수 있는 비프 웰링턴.
수부니흐에 왔으면 요건 당연히 먹어줘야 한다. 언제 가족들과 함께 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먼...
시의적절하게 등장한 Kilikanoon, R Shiraz 2006 Barossa Valley. 이렇게 오랜 기간 잘 숙성된 호주 쉬라즈를 마시는 건 정말 오랜만인 듯. 프룬, 말린 블랙베리, 정향, 시나몬 캔디, 화한 유칼립투스, 과숙한 포도 풍미에 약간의 알코올 부즈... 잉키한 컬러와 질감 덕에 빈티지 포트 같이 느껴질 정도. 하지만 산미가 제법 살아있고 각각의 요소들 또한 섬세하게 드러나는 것이 역시 대단한 와인임을 느끼게 한다. 10년 정도는 충분히 더 보관해도 될 것 같은 느낌.
12년 전쯤에 같은 빈티지를 마셨을 땐 섬세함에서 묵직함으로 변화해 갔다고 적었는데, 이날은 묵직함에서 섬세함으로 변화한 느낌이라는 게 아이러니.
알코올 15%의 위엄 ㄷㄷㄷ 킬리카눈 R은 바로사 밸리의 특별한 구획에서 선별한 포도를 사용해 최고의 퀴베만 선별해 출시한 와인이다. R 쉬라즈는 최근 출시되지 않고 있다고 하니, 역사의 마지막(?)을 즐기게 해 주신 ㅎ부장님께 감사를.
라구 가지구이. 가지를 싫어하는 사람도 가지를 좋아하게 되는 요리.
Mastroberrdino, "Radici" Taurasi Riserva 1998. 마시기 2시간 전쯤 오픈해 디캔팅을 해 두었다. 와, 이거 25년 된 와인 맞나...? 코르크 상태도 멀쩡하더니 와인도 넘나 생생하다. 숙성에서 유래한 복합적인 부케가 시나몬, 정향 등과 어우러져 마치 곶감, 수정과 같은 느낌을 주는데, 산뜻한 미네랄과 깔끔한 신맛이 올빈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맑고 명확한 여운을 남긴다. 타닌은 부드러워졌지만 구조감은 무너지지 않고 견고하며 은은한 과일 풍미 또한 확실히 살아있다. 와, 이거 아직 10여 년 이상 즐길 수 있을 만하다. 가지고 있는 2015년 빈티지는 정년 퇴직할 때쯤이나 마셔야 할 듯.
타우라시는 알리아니코(Aglianico) 품종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와인인데, 사실 허용된 레드 품종을 15%까지 블렌딩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스트로베라르디노를 비롯한 주요 생산자들은 알리아니코 100%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숙성은 일반급 3년 이상(오크 숙성 1년 이상), 리제르바 4년 이상(오크 숙성 18개월 이상)이다. 마스트로베라르디노는 타우라시 DOCG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 지역의 터줏대감으로, 이탈리아 최상급 생산자 연합인 그란디 마르키(Grandi Marchi)의 멤버이기도 하다.
고기가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추가한 안심 스테이크.
굽기가 완벽하다. 가니시도 소박하지만 딱 좋아하는 것들로만 구성돼 있고.
입가심으로 맛있는 모스카토 한 병.
디저트(?)로 곁들인 고르곤졸라 피자 좋았음^^;; 도우는 제품을 쓰시는 것 같은데 거슬리지 않고 맛있는 이유는 뭘까...
즐거웠던 와이니 모임. 수부니흐는 분기당 1회 정도는 가 줘야 할 것 같다.
20230110 @ 수부니흐(연남동)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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