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을 물고 있는 돌고래.
반지를 물고 있는 송어.
처음에는 저 그림이 링을 물고 있는 돌고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반지를 물고 있는 송어' 전설은 '구스 아일랜드의 마틸다(Goose Island Matilda)'를 마시고 포스팅하려고 검색하다가 알게 되었다. '성녀 마틸다'라고도 불리는 그녀는 작센 백작의 딸로 작센 공작 하인리히의 둘째 부인이 되는데 10년 후 하인리히 공작은 독일의 왕에 즉위한다. 그녀는 다섯 자녀를 두었고 그중 하나가 오토 1세(대제)라고. 그녀는 남편이 죽자 30년 동안 빈민을 구제하고 학교가 딸린 수도원을 세우는 등 자선 사업에 그녀의 전 재산을 사용했다고. 덕분에 신심을 가진 거룩한 왕녀로 기록되었다고. 하지만 이 때문에 자식들과는 사이가 그닥 좋지 않았다고 한다(자신들에게 돌아올 유산을 마구 사용하는 셈이니...).
어쨌거나, 오르발(Orval) 또한 그녀가 세운 수도원 중 하나다.
오르발은 그 수도원에서 만드는 트라피스트 에일(Trappist Ale).
'반지를 물고 있는 송어' 그림에는 그에 엮인 설화가 있다. 미망인이었던 마틸다 백작부인이 실수로 반지를 물에 빠뜨렸는데 주님께 기도를 하자 송어가 입에 반지를 물고 나타났다는 것. 이에 감명받은 백작부인이 "이곳은 금의 계곡(Val d'Or)이구나"라고 외쳤고 그 자리에 수도원을 세웠다. 수도원의 이름인 오르발(Or+Val)은 바로 이 설화에서 유래됐다.
참고로 트라피스트 맥주는 수도원에서 만드는 맥주다. 트라피스트 맥주와 흔히 비교되는 것이 애비 맥주. 예컨대 지난 번에 마신 통젤로(Tongerlo) 같은 것이 수도원의 허가를 득해서 세속 양조장에서 만드는 애비 비어라면, 오늘 마시는 오르발은 수도원 자체 양조장에서 양조하는 트라피스트 비어다. 트라피스트 맥주는 국제트라피스트협회(ITA, International Trappist Association)의 인증을 받아 엄격히 관리된다. 현재 전 세계에 딱 11개만 존재하며 그중 6개는 벨기에에 있다. 오르발 또한 벨기에에 위치한 수도원이다..
트라피스트 맥주로 인증받으려면 아래 조건들을 만족해야 한다.
1. 수도원 안의 양조장에서 수도사의 엄격한 통제에 따라 수도원의 방침대로 양조해야 한다
2. 이윤을 목표로 양조하지 않으며 수익은 공익/자선적인 목적 혹은 수도사의 생활비나 수도원 유지/보수 비용 등으로 사용된다.
3. 양조는 수도의 수단 중 하나이며 부차적인 일일 뿐 수도원으 주 사업이 아니다.
11개 수도원 이름 등 상세 내용은 트라피스트 웹사이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위키피디아나 '살찐돼지의 맥주광장' 블로그를 운영하는 김만제 씨의 책/아티클/포스팅 중에도 관련 내용이 많다.
재료는 정제수, 보리 맥아, 홉, 설탕, 이스트. 병에서 2차발효를 한다. 알코올 도수는 6.2%로 표기되어 있는데 일부에 따르면 7.2%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오르발의 특징은 보통 3-4개의 라인업을 갖추는 다른 트라피스트 비어들과는 달리 요것 딱 하나만 생산한다는 것. 그런데 생산되는 시기에 따라 풍미가 다양하게 변화한다는 평가가 애호가들 사이에 퍼져 있다고 한다.
Orval Trappist Ale / 오르발 트라피스트 에일
KTX 안에서 잔도 없이 마셨기 때문에 컬러도 제대로 못봤고 풍미를 제대로 즐기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맥주가 상당히 독특한 스타일이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브레타노미세스에서 유래한 듯한 꿈꿈한 농가 향, 토양 향에 어우러지는 은근한 홉 향, 강하진 않지만 코어를 형성하는 은은한 과일 풍미. 산미는 강하지 않으며 바디나 구조감도 크고 단단하지는 않다. 하지만 복잡하고 미묘한 풍미가 대단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지나치게 꼿꼿하거나 공격적이지 않고 편안하지만 개성적인 스타일이랄까.
완전한 내 취향. 좋은 잔에 제대로 따라 천천히 즐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보틀 쉐입 조차 마음에 든다. 다음에 꼭 다시만나자.
저녁으로 먹으려던 햄버거를 열차 시간에 쫓겨 결제만 하고 받아오질 못했다. 이런 걸로 저녁을 때우고는... 결국 집에서 라면ㅠㅠ 맥주마저 없었다면 울었을 거야ㅡㅅㅡ;;;
개인 척한 고냥이의 [와인저장고 맥주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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