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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음주/와인

WINEY @수부니흐

by 개인 척한 고냥이 2023. 3. 1.

지난 수요일에 참석한 해외 직구 와인 모임. 능력자 분이 이탈리아 와인으로만 6종을 엄선했다.

원래 넘나 좋은 와인으로만 구성하면 그 사이에서 비교우열이 발생하기에 원래 매력적인 와인이 제평가를 받지 못하는 일이 왕왕 벌어지므로 프리미엄 와인으로만 구성된 모임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런 라인업이라면 참석 안 하고 못 배기지. 게다가 최근 마셔 보고 싶었던 와인이 2종이나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경험 삼아서라도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번외 편으로 나온 Batasiolo, Gavi de Commune de Gavi Granee 2018. 나는 1시간 정도 늦는 바람에 요 녀석을 제대로 맛보질 못했네. 나중에 맛을 보니 상당히 맛있던데. 예전에 바타시올로 디너에서 맛봤을 때도 상당히 좋았던 기억이 있다.

와인 리스트는 미리 공지했지만 제공은 블라인드로 했다. 한 마디로 싱글 블라인드. 확실히 다른 성격이었던 바롤로는 모두 쉽게 알 수 있었고, 비슷한 품종들 중에서도 일부 와인은 모두가 생각하던 스타일과 비슷해서 어느 정도는 예측이 가능했던 것 같다. 모두 좋은 와인들이었지만, 함께 의견을 나누며 와인을 즐기는 데 집중해서 노트는 그냥 인상을 남기는 정도만 기록했다. 사진도 하나도 안 찍어서 다 남이 찍은 것 ㅎㅎㅎㅎ

 

Luciano Sandrone, Barolo Le Vigne 'sibi et paucis' 2011 

옅은 루비 컬러에 오렌지 림, 처음에는 많지는 않아도 촘촘한 타닌이 제법 살아있어서 수렴성이 상당히 강하게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편안해지는 느낌. 먼지 같은 미네랄에 붉은 꽃, 화한 허브 힌트, 시나몬, 사워 체리, 새콤한 작은 베리 풍미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전체 와인 중 개취 1픽.  

 

 

Luciano Sandrone, Barolo Le Vigne 2006 / 루치아노 산드로네 바롤로 레 비녜 2006

루치아노 산드로네 바롤로 레 비녜 2006(Luciano Sandrone Barolo Le Vigne 2006). 루치아노 산드로네는 동명의 와인메이커가 1978년 바롤로 마을(Barolo di Barolo)을 기반으로 설립한 와이너리다. 그의 집안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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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레 비녜 2006 빈티지를 마신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마신 와인은 그것과 같으면서 다른 와인이다. 레이블 우측 하단에 찍힌 '시비 엣 파우치스(sibi et paucis)'에 주목해야 하는데, 동일하게 만든 레 비녜를 와이너리의 셀러에서(=최적 환경에서 이동 등 스트레스 없이) 추가 숙성해 빈티지로부터 10년 정도 후에 출시하는 버전이다. 당연히 상태가 좋을 가능성이 높고, 실제로 가격과 평가 모두 훨씬 높다.

 

Castello dei Rampolla, Sammarco 2007 Toscana

짙은 검보랏빛에 숙성 뉘앙스가 감도는 가넷 루비 컬러. 약간 탁한 느낌도 들었는데, 그에 걸맞은 진한 부엽토 향과 감초, 담배 같은 향신료 향이 두드러지고 화한 민트 허브가 살짝 곁들여졌다. 그래도 고급스러운 정향 뉘앙스와 함께 검은 베리, 프룬 등 완숙한 과일 뉘앙스가 잘 살아있었고, 둥근 타닌과 신맛의 구조감 또한 좋았다. 스월링을 하면 할수록 뭔가 회춘하는 듯 맑은 과일과 청량한 허브 느낌이 살아나더라는. 시음적기가 살짝 지났거나 힘든 세월을 보낸 와인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상당한 포스를 느낄 수 있었다. 

카스텔로 데이 람폴라는 익숙하지 않은 생산자인데, 키안티 클라시코의 맹주 중 하나로, 삼마르코는 사시카이아(Sasicaia)를 만든 자코모 타키스(Giacomo Tachis)의 손길이 묻은 와인이라고.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산지오베제(Sangiovese), 메를로(Merlot) 블렌딩.

 

티냐넬로... 는 심지어 레이블도 찍지 않았네;;;

Tignanello, 2012 Toscana

검붉은 베리와 체리 풍미에 은은한 민트와 시나몬 힌트. 전반적으로 섬세하지만 꽉 짜인 인상이다. 입에 넣으면 촘촘하지만 매끈한 타닌과 신선한 산미를 타고 검붉은 베리 풍미가 영롱하게 드러난다. 와, 이건 뭐 누가 마셔도 맛있는 와인. 아직 어린 느낌이 확연한데도 윽박지르지 않으면서도 강한 포스를 드러낸다. 길고 편안한 여운까지 훌륭한 와인.

외려 단점이라면 너무 부잣집 도련님 같이 말끔한 느낌이 아닐까 싶기도. 이날의 절대평가 1픽. 나름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해서 10만 원도 안 하던 비교적 저렴했던 시절에 왜 안 마셨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감히 '가성비 슈퍼 투스칸'이라고 할 만한 녀석인데, 최근엔 가격이 넘나 오르고 있어서...ㅠㅠ

 

 

213. 산지오베제(Sangiovese)

지역, 품종 등 특정 테마를 선정해 개괄하고 추천 와인을 함께 소개하는 와인21의 기획 연재물 와인21's PICK. 직전에 진행된 키안티 클라시코 기획 연재와 연계할 겸 산지오베제 품종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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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기사에 간단히 소개한 적이 있지만, 티냐넬로는 참 특이한 슈퍼 투스칸이다. 피에로 안티노리(Piero Antinori)는 사시카이야를 탄생시킨 사촌 마리오 인치사 후작(Mario Inchisa della Rochetta)과는 다른 방식으로 슈퍼 투스칸을 만들어냈다. 보르도 품종을 메인으로 하는 대신 산지오베제를 중심으로 보르도 품종을 블렌딩 한 것이다. 그리고 당시 키안티 클라시코 와인에 반드시 포함해야 했던 화이트 품종을 사용하지 않았다. 와인 숙성에 최초로 225리터 프렌치 오크를 도입한 것 또한 포인트. 키안티 클라시코 생산지역 안에 있던 테누타 티냐넬로로서는 키안티 클라시코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면서 혁신을 이룬 셈이다. 결국 티냐넬로는 아이러니하게도 키안티 클라시코의 품질 향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71년이 첫 빈티지.

 

Tenuta Greppo Biondi-Santi, Brunello di Montalcino 2011

아래가 비칠 정도의 밝은 루비 컬러와 페일 림. 딸기, (검)붉은 체리, 붉은 자두 풍미가 은은하면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잔잔하게 코팅하는 타닌과 제법 강한 산미가 견고한 구조감을 형성한다. 산뜻한 인상의 미디엄풀 바디 와인으로 미네랄 뉘앙스가 매력적인 여운을 선사한다. 예전에 테이스팅 했을 때는 상당히 강렬한 인상이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는데, 찾아보니 강렬하다기보다는 섬세한 스타일에 복합적인 풍미가 드러났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내 타입의 와인인데, 가격이 워낙 내 타입이 아니다-_-;;; 게다가 최근엔 이 가격이면 평가가 더 높은 BdM들이 많다 보니...

 

비온디 산티(Biondi-Santi)는 검붉은 베리와 가죽 뉘앙스를 겸비한 복합적인 풍미를 드러내며, 풍성한 질감과 충분한 타닌을 지닌 몬탈치노의 산지오베제 그로쏘(Sangiovese Grosso)의 장점을 극대화해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와인 스타일을 정립한 와이너리다. 그들은 브루넬로의 특징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천천히 침용 및 발효한 다음 커다란 슬라보니안 오크통에서 몇 년, 병입 후 다시 몇 년에서 몇십 년의 긴 숙성을 거쳐 강건하고 묵직한 와인을 만들어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비온디 산티의 와인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몬탈치노의 생산자들이 그들의 방식을 따르면서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198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으로 떠올랐다.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산지오베제 품종만을 사용해야 하며 오크통에서 최소 2년, 병입 후 최소 4개월 숙성 후 빈티지로부터 5년째 되는 해부터 출시할 수 있다. 리제르바의 경우 최소 오크 숙성 기간은 같으나, 병입 후 6개월 이상 숙성하여 6년째 되는 해부터 출시할 수 있다. 로소 디 몬탈치노(Rosso di Montalcino)는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어린 동생 격으로, 똑같이 산지오베제 100%로 만들지만 1년 숙성 후 바로 출시할 수 있다. 

 

Valdicava, Brunello di Montalcino 2004

짙은 검자줏빛 컬러에 아주 살짝 탁한 느낌. 코를 대면 바이올렛 등 향긋한 꽃향과 함께 시나몬 같은 스위트 스파이스, 잘 익은 블랙베리, 프룬 등 검은 과일 풍미가 진하게 드러나며, 토스티, 낙엽 같은 뉘앙스가 곁들여진다. 입에 넣으면 생각보다는 조금 거친 느낌이지만, 건포도 같은 말린 과일 느낌이 들 정도로 진하게 드러나는 과일 풍미가 나름의 매력을 드러낸다. 지금이 절정이라는 느낌.

진한 풍미와 약간의 거친 인상 때문에 다들 요게 비노 노빌레가 아닐까 하고 짐작했는데, 발디카바였다;;; 미리 빈티지를 봤으면 그런 오해는 안 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냥 와인 이름만 보고 빈티지는 주목을 안했... 근 몇 년 전에 마셨던 리제르바급 마돈나 델 피아노(Madonna del Piano)는 좀 더 섬세하고 붉은 과일 풍미가 많이 드러났던 것 같은데.

발디카바(Valdicava)는 1953년 브라만테 아브루쩨세(Bramante Abbruzzese)가 몬탈치노의 고원지대인 몬토솔리(Montosoli)에 설립했으며, 초기에는 비온디 산티에 포도를 공급했다. 1968년부터 병입을 시작했고 1977년 몬탈치노 최초로 싱글 빈야드 와인을 출시했다. 1987년에는 손자 빈센조(Vincenzo)가 참여하며 품질이 극적으로 올랐고,  몬탈치노에서도 손꼽히는 와이너리 중 하나가 되었다. 발디카바는 전통적인 방식과 프렌치 바리크 등을 사용해 숙성하는 모던한 방식을 균형 있게 사용하여 즉시 음용성과 장기 숙성력을 겸비한 와인을 만든다는 평을 받고 있다.  

 

Avignonesi, Vino Nobile di Montepulciano 'Poggetto di Sopra' 2016

시나몬 캔디 같은 스위트 스파이스와 화한 허브, 붉은 자두 같은 과일 풍미가 매끈하게 드러난다. 입에 넣으면 확연히 어린 느낌. 산미는 높지 않은 편이며 뭔가 이국적인 과일과 함께 백도 같이 달콤 시원한 풍미가 드러나며, 약간의 유산 뉘앙스가 곁들여진다. 섬세하고 산뜻하면서도 구조감이 명확한 와인. 조금 더 익으면 더욱 복합적인 풍미를 드러낼 것 같기도.

참석자 중 가장 많은 3명이 이 와인을 1등으로 뽑았다. 개인적으로는 루치아노 산드로네, 티나넬로, 비온디 산티에 이어 4픽이지만 상당히 흥미로웠던 와인인 건 확실하다. 

아비뇨네지는 몬테풀치아노의 맹주 중 하나. 1974년 팔보(Falvo) 형제가 와인 저장고를 포함한 오래된 건물을 인수한 후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와이너리를 설립했다. 2009년 프랑스 출신 버지니 사베리(Virginie Saverys)가 인수했으며, 예전과 같이 프리미엄 와인들을 생산하고 있다.

 

주최자의 도네이션 와인, Alberelli di Giodo, Sicilia Carricante 2020. 최근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지오도가 시칠리아 에트나(Etna)에서 만든 화이트인데, 나는 프리미엄급 소아베가 아닌가 했다. 상당히 맛있었지만, 노트는 적지 않음.

 

M. Chapoutier, Rivesaltes 1982. 요건 내가 도네한 와인인데, 생각보다 임팩트나 복합미가 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실 만했다. 추가 숙성한다고 뭔가 많이 변화할 것 같지는 않지만 변질되지 않고 추가 보관은 가능할 것 같으니, 남은 한 병은 나중에 천천히 공들여 마셔봐야겠다.

 

언제나 훌륭한 수부니흐의 음식들. 이 집의 가격대에서 낼 수 있는 최상의 음식이 아닌가 싶다. 정말 대화에 집중하느라 와인 사진도 음식 사진도 안 찍어 놓은 게 아쉬울 뿐.

 

사전 예약이 필요한 비프 웰링턴은 반드시 잡숴 줘야 하는 메뉴.

 

와인들도 훌륭했지만, 사람들과 나눈 의견과 이런저런 대화들, 훈훈한 분위기가 더욱 기억에 남는 모임. 다음에 또.

 

20230221 @수부니흐(연남동)
개인 척한 고냥이의  [ 알코올 저장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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